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살롱 Mar 31. 2020

혼자 있는 시간의 힘

사람은 외로울 때 자란다

더는 청춘도 아니고 그렇지만 중장년이라는 단어는 낯선 마흔.

마흔이 되면 안다.

다 주어지지 않는 삶. 아등바등 살아야 겨우 평범에 닿는 정도라는 걸 눈치챈다.

'지금까지는 다 연습이야'라고 낭비할 젊음이 얼마 남아있지 않음을 안다.

게임을 하려고 바꾼 동전이 몇 개 남지 않았음에 한 판에 힘이 더 들어간다.

그러다 어떤 날이 찾아온다.

이룬 것이 없는 듯한 나를 가만히 안아주고 싶은 날.

쏟아지는 눈물과 함께 고여있던 감정의 둑이 터진다.


모임도 취소되고 공연장도 도서관도 문을 닫아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진 코로나19 시국의 요즘. 자연히 집 책장이 도서관이 되어버렸다. '책은 연장이야. 필요한 때 꺼내 읽는 게 독서야.'라며 사고 나서 푹 묵힌 책을 읽는 날들이다. 그날 밤은 문득 일본 메이지대의 사이토 다카시 교수가 쓴 <혼자 있는 시간의 힘>이라는 책에 손이 갔다. 자기계발서라곤 통틀어 집에 열 권이 될까 싶은데 용케 그중 한 권을 차지한 5년 전 베스트셀러였다. 잠자리에 20~30분만 읽고 자야지 하고 집어 들었다가 완독을 해버리고 나니 새벽 4시. 불을 끄고 눈을 감았는데 갑자기 주체할 수 없이 눈물이 쏟아지는 것이다. 그리고 마음속에 한 마디가 떠올랐다.

'이룬 것이 없는 나를 안아주고 싶어'

2년여 동안 계속 알 수 없는 감정에 시달렸는데 그 정체를 깨달았다. 공허. 그 눅눅한 무력감은 공허였다. 계절이 바뀌어도 일하기 싫고 희망도 없고 재미도 없었다. <나의 아저씨>에 나오는 이선균의 대사처럼 성실한 무기징역수처럼 살아지니까 살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걸 깨달은 새벽, 취하지도 않았는데 한참을 울었다.  


혼내는 사람도 나고 주눅 든 사람도 나

나 때는 말이지, 직업을 자아실현의 장이라고 배웠다. 직업과 일을 통해서 자아를 실현해야 하며 '수신제가 치국평천하' 유교사상에 입각하여 널리 이름을 떨치는 것이 성공이자 제일가는 효도라고 배웠다. 나라가 매년 경제성장률이 10%를 찍으며 미래에 기대감이 차있을 때 청소년기를 지나왔기 때문에 기존 질서에 반항하는 정서도 그다지 없었다. 대학을 다닌 90년대 후반은 다양한 문화가 풍성하게 공존하며 아날로그와 디지털이 교차하던 시기라 우리는 기성세대와 신세대를 양쪽으로 이해할 수 있는 브릿지 같은 존재면서 사회에 긍정적인 세대였다. 그런데 늘 들으며 컸던 그 기준으로 마흔이 된 스스로를 바라보니 대강은 모범생의 범주 안에서 살아왔는데도 뭐 하나 제대로 해놓은 것이 없었다. 20대에는 20평대에 살고 30대에는 30평에 살고 뭐 그런 줄 알았던, 반지하도 옥탑방도 본 적 없던 지방도시 출신이었다. 40대가 되었네? 40평대에 사니? 그럴 리가. 억대 연봉 찍고 막 TV에 나오고 잘 나가니? 그럴 리가. 나오면 들어가고 싶고 들어가면 나가고 싶은 회사와 몇 번씩 밀당을 반복하며 이직을 하다 지금은 거리가 또 멀어졌다. 회사가 태양이라면 지구에 살다 목성쯤으로 옮겼다가 해왕성 정도로 이사했다. 결혼도 임신, 출신, 육아도 안 했으니 진짜 이 세상에 무엇을 하러 왔지? 하고 나의 쓸모에 대해서까지 생각이 아득하게 뻗어나갈 만하다.

열심히 일하던 20, 30대쯤에는 '20대에 꼭 해야 할 00가지' 같이 인생을 야물딱지게 살아가는 데 필요한 족집게 과외 같은 책이 유행이었다. 그런데 요즘은?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며 애쓰지 말고 내려놓아도 된다는 위로의 책이 유행이다.

희망의 상실은 절망이 아니고 공허였다. 절망할 만큼 실패한 적은 없지만 용감한 적도 없었고 고민을 하나 안 하나 결과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는 걸 안 뒤론 고민은 줄었지만 마음이 편해지지도 않았다. 왜냐하면 내재화된 세상의 기준을 아직도 내 기준으로 갖고 살아가고 있었으니까. 결국 혼내는 사람도 나고 주눅 든 사람도 나였다. 계속 이런 식이면 노력이 부족하고 거기에 미치지 못하는 나 자신과 앞으로도 잘 지내기 힘들어질 텐데...

이룬 것이 없는 듯한 나를 가만히 안아주고 싶어 졌다. 백조가 아니라 오리 새끼였음을 안 뒤에도 꾸준히 털을 고르며 관리하고 싶은 나. 삼단 발사 로켓처럼 과거의 나를 분리하면서 내일은 다른 곳을 향해 가고 싶은 나. 그런 나를 가만히 안아주고 싶었다.


사람은 혼자 있는 시간에 자란다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 가면 무대에 바이올리니스트 장영주가 홀로 바이올린을 켤 때나 노부스 콰르텟 네 훈남이 현악 사중주를 연주할 때나 조성진이 베를린 필과 피아노 협주곡을 협연할 때나 서울시향이 대편성으로 말러 교향곡을 연주할 때나 연주자 숫자와 관계없이 언제나 무대에 꽉 차 있는 에너지를 느끼곤 한다.


혼자 있는 시간의 힘


특히 오케스트라의 무대에서는 콘서트마스터가 '라' 음을 내며 악기들이 저마다 조율하는 순간부터 저 모든 연주자들이 홀로 고뇌하며 연마했을 무한히 고독한 시간이 피부로 전해져 온다. 다부지게 스스로를 몰아붙이며 더 높은 경지로 올라가고자 열망한 시간. 그 모든 혼자의 시간이 합쳐져 만드는 위대한 음악에 압도된 나는 볼과 손바닥이 뜨거워질 때까지 박수를 치고 돌아온다.

그림의 경우는 그 힘을 느낄 때가 조금 다르다. 미술관에서 한 작품씩 스치며 하는 감상은 괜찮은데 작품이 세 점 이상 있는 방에서 일을 하거나 회의를 하면 잘 안 풀린다. 어질어질하며 작가가 작품에 쏟아부은 시간과 작품이 뿜어내는 기에 눌리는 듯한 느낌이 종종 든다. 어느 것이나 몰입의 순간이 누적된 결과이리라.


혼자 있는 한밤 나를 사로잡은 감정이 공허였음을 깨달았을 때, 동시에 알 수 있었다. ‘이 감정이 선물처럼 와주었으니 나는 이제 노를 젓고 나아갈 수 있어. 수심을 알았으니까 바닥을 짚고 저을 수 있어.’

깊은 공허감에서 빠져나와 슬픔을 극복한 사람만이 갖는 성숙함, 이해심, 포용력. 그것들이 어우러져 아름다운 향기를 가진 사람이 어른이겠지.

혼자 있는 시간은 나만의 사고방식의 틀을 만들어준다. 인생의 희로애락을 깊이 느끼며 그 안으로 한 발짝 더 들어가는 일. 인생의 전환기를 맞은 마흔 이후에도 성장은 계속된다. 언젠가 엄마는 내 앞에서 친구와 통화하며 그랬다. "애들은 안 볼 때 자라더라고." 엄마, 마흔이 넘은 딸이 아직 혼자서 자라고 있어.

이전 04화 일상의 레드카펫을 즐겨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