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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지비 Apr 09. 2024

매일 같은 일상에서 스쳐지나갔던 사람을 기억하나요

서점 남자

시간이 되면 서점으로 향한다. 은밀하고 비밀스럽게(라고 생각하는데 아니려나. 내가 먼저 말하지 않았는데 누군가 알아챘다면 착각일 수도 있겠다.) 서점으로 가지 않는 척을 하며 서점으로 곧바로 직진한다. 걸음을 빠르게 걷는다.


분 단위로 주어지는 쉬는 시간. 휴게실에 들어오자마자 잽싸게 개인 사물함 문을 열어 챙겨온 책을 넣어둔 쇼핑백을 빠르게 꺼내고 누가 말을 걸새랴 서둘러 밖으로 나온다. 1시간의 점심 시간은 왔다 갔다 화장실까지 들르고 나면 1시간이 채 조금 되지 않는 시간이 된다.




아마 근처 어디를 가도 지도를 검색해보면 근방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그 친숙한 대형 서점은 내가 일하는 곳 근처에도 나와서 1분 거리 이내에 있다.

그 곳에는 무료로 개방된 공짜 테이블이 있다. 서점 가운데 가로로 길게 늘어진 나무 책상에는 각자 다 다른 모양으로 책을 잡고 앉아있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테이블로 곧장 직진해 늘 높은 확률로 안전하게 자리를 차지한다.(주말에는 자리가 없을 확률이 높은데 그럴 땐 그냥 땅바닥에 앉아서 읽는다. 좀 앉아있으면 허리가 시려온다.)




며칠 전부터 눈에 띄기 시작한(그저 눈에 띄기 시작한) 서점 직원 남자가 있는지 잠깐 의식한다. 주 5일 비슷한 시간에 찾아와 앉아있는 나를 저 직원도 혹시 나를 조금이나마 의식을 하고 있기는 할까. 나를 알기는 할까. 아니면 나처럼 모르는 척을 하고 있을까. 그것도 아니면 전혀 모르고 있을까.


몇 번 그런 생각을 혼자서 잠깐 하다가 말던 요즘. 며칠 아침 일찍 출근을 했었던 날이다. 비워진 박스를 정리해 지하에 내려가 버리고 오는 일을 맡고 있는 직원이 쉬던 날이었다. 대신해서 내가 내려가게 됐는데 처음 내려가본 그 지하 주차장에서 그 서점 남자를 또 마주쳤다.(눈은 마주치지 않았으니 내가 발견했다고 보는게 맞을 수도 있겠다.) 절대 대놓고 쳐다보지는 않겠다는 나의 나름의 굳건한 (이것이 자존심인 것인지 무엇인지 모를 요상한)의지로 그 사람이 저기 있다는 사실만 확인하고 지나쳐 간다.




각자 같은 건물 안으로 들어가 각자 비슷한 시간에 출근을 하고 각자의 일을 한다. 그는 내가 일하고 있는 장소를 출퇴근 할 때 지나쳐 갈 뿐이고,(어느 날 어김 없이 옷을 개다가 고개를 들었었는데 또 나만 그를 봤었다.) 나는 책을 읽으러 그가 일하는 곳을 찾아 간다.




문득 이 상황을, 별다른 사건 없이 늘 똑같이 안전한 듯 불안전한 듯 흘러가는 것 같은 이 일상에서, 갑자기 누군가를 의식하고 인식하고 있는 지금 이 상황을, 이 사람을 기억해두고 싶어졌다. 곧바로 핸드폰 메모장을 켰다.


아, 그러고 보니 한 사람을 더 기억하고 있었다. 알랭 드 보통 의 <불안> 을 읽으시는 할아버지. 중간 쯤 되어보이는 진도에서 책을 펼쳐둔 채 꾸벅꾸벅 졸고 계시던 기억부터 먼저 나는 그 할아버지는 그러고 보니 요즘 마주치지 않은지 꽤 됐다. 역시나 나만 알고 있는 상황이다. 그 할아버지도 내가 일하고 있는 매장 앞을 지나쳐 서점으로 가는 모습을 스치듯 분명하게 본 기억이 난다.


'보세요. 저도 그 책을 읽고 있어요.' 따라서 샀다는 나만 아는 비밀을 은밀히 옆에서 티내는 것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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