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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오도 Aug 04. 2021

서울지검 1146호에서 있었던 일

이십 대가 된, 용주골 그 방의 아이에게

월드컵과 ‘붉은 악마’로 기억되는 2002년은 한국 인권사에 있어서도 뜨겁게 기록될만한 해였다. 인권운동가들의 오랜 투쟁의 산물이며, 김대중 대통령의 공약이기도 했던 ‘국가인권위원회’가 2002년 4월 조사를 시작하면서 어둠 속에 묻혀 있던 인권 문제들이 광장으로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국가보안법, 사형제, 호주제 폐지와 같은 인권위가 해결해야 할 정책 사안과 함께 개인들의 인권침해 진정도 한두 달 사이에 수천 건이 접수되었다. 초보 조사관이던 내게도 200건이 넘는 진정사건이 배당되었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사건기록과 씨름했지만 워낙 오래 묵은 사안들인지라 인권위법 상 구제 가능한 사건들은 많지 않았다. 인권위에 마지막 희망을 걸었던 사람들의 실망과 원성이 커져 갔고 처음부터 인권위를 눈엣 가시처럼 생각했던 일부 언론은 벌써부터 인권위 무용론을 언급하기 시작했다.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한 아이에게 달리기를 요구하는 식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대형 인권침해 사건이 터졌고 인권위의 존재의 의미가 새삼 크게 알려지게 되었다. 월드컵의 열기가 가시고 무교동 거리의 은행나무가 노랗게 물들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2002년 10월 23일, 스스로 인권의 보루라고 자부하던 검찰의 심장부, 서울지검에서 조사를 받던 피의자가 고문으로 사망하는, 믿을 수 없는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인권 대통령’의 시대였고, 광장의 자유로움을 만끽하며, 고문 같은 구시대 유물이 자리할 곳은 없다고 믿었던 국민은 큰 충격에 휩싸였다.


대검찰청은 즉시 감찰 조사를 시작했으나 담당 검사와 수사관들은 죽은 피의자가 난동을 부리고 자해를 시도해, 말리느라 몇 대 때리긴 했지만 사망에 이를 정도는 아니었다는 주장을 폈다. 어느 순간부터 사망자가 조직폭력배의 일원이었고, 살인 혐의를 받고 있었다는 보도들이 쏟아졌다. 수사 책임자였던 서울지검 강력부 H 검사에 대한 동정론도 부각되었다. 열정과 소신을 가지고 정의를 위해 노력해온 검사가 ‘우연한 사고’ 때문에 추락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런 여론의 흐름 속에 대검찰청 감찰실은 서울지검 강력부 8급 수사관 2명과 파견 경찰관 경장 1명을 ‘특정범죄 가중처벌법상 독직 폭행치상’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하면서 조기 수습에 들어갔다. 기존의 많은 국가폭력 사건들이 그랬듯이, 검찰 심장부에 벌어진 또 하나의 사건이 셀프수사의 결말을 통해 그렇게 조용히 마무리되어가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그때 ‘그런 일을 하라고 만든’ 국가인권위원회가 등장했고 단순 구타 사망사건으로 마무리될 뻔한 사건의 진실이 점차 세상에 드러나게 되었다.


사망한 J 씨와 ‘공범’으로 조사받았던 사람들의 진술, 진찰기록, J 씨에 대한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부검 결과(광범위한 자상에 의한 속발성 쇼크 및 외상성 지주막하 출혈) 등 11층 특별조사실에서의 고문과 가혹행위 증거들이 인권위 조사과정에서 계속 확인되었다. J 씨 등은 불법체포 상태에서 특별조사실로 끌려갔고, 반나체로 수갑이 채워져, 칠흑같이 어두운 조사실에 상당 시간 갇혀 있었다. 이런 상태라면 대부분의 사람은 물리적 폭력이 없더라도 극심한 공포심과 수치심을 느낄 수밖에 없다. 이후 수사관들에 의한 무차별 폭력과 성기와 고환을 잡아당기는 성고문, 양다리를 얼굴로 꺾고 엉덩이에 올라타는 등 가혹행위가 이어졌다. 일부 물고문의 흔적도 확인되었다. 가혹행위 혐의를 강력히 부인하던 수사관들이 인권위 조사 중에 일부 가혹행위를 ‘자백’ 하기도 했다. 윗분 시키는 일을 ‘늘 해오던 대로’ 했을 뿐인데 자신들만 가해자로 몰리게 되었다며 억울해했다. 강도 높은 감찰 조사 등을 받던 수사관들은 추궁은커녕 공감 어린 태도로 자신들의 변명을 끝까지 들어주던 인권위 조사관들에게 조금씩 속마음을 털어놓으며 후련해했다. 인권위 조사가 시작되면서 여론이 흐름이 크게 바뀌었고 결국 H 검사와 관련 수사관 8명 전원이 고문 및 폭행 치사 혐의로 구속되었다. 수사 검사가 수사상의 잘못으로 구속된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서울지검 직권조사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두 가지 장면이 있다. 하나는 서울지검 1146호 특별조사실 현장조사를 갔을 때의 일이다. 특별조사실은 1992년 유서대필이라는 누명을 쓰고 강기훈 씨가 고문을 받았던 곳이기도 하다. 우리를 안내했던 검찰 관계자는 ‘기밀시설’인 특별조사실이 외부에 공개되는 것은 역사상 처음이라고 설명했다. 11층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여러 개의 철문을 통과한 후 도착한 특별조사실은 좁은 복도를 가운데 두고 5~6평의 7개의 방이 마주 보고 있었다. 방마다 간이침대 1개와 책상, 화장실에는 작은 세면대와 변기가 있었다. 창문은 없었다. 쇠락한 도시의 모텔방 같은 모습이었다. 인권위 방문에 대비해 잘 청소된 상태였다. 낡은 형광등에는 먼지 하나 없었다. 나는 어차피 조사해도 별거 나올 것이 없다는 태연한 눈길의 검찰 관계자들에게 둘러 싸여 애써 태연한 척했던 것 같다. 그러다가 우리는 침대 매트리스 깊숙한 곳에서 구타 도구로 사용된 것이 분명한 50센티 길이의 경찰봉을 찾아냈다. 완벽할 정도로 깨끗하게 청소된 현장에서, 대검 감찰부의 현장검증에서도 발견되지 않았던 방망이가 인권위 초보 조사관들 앞에 나타났던 것이다. 마치 그동안 11층 특별조사실에서 벌어졌을 무수한 불법 수사의 진실을 밝혀 달라고 누군가 일부러 가져다 놓은 것처럼.


두 번째 장면은 가혹행위 피해자의 가족을 면담하러 갔을 때의 기억이다. 파주 용주골의 허름한 유흥업소에 딸린 방에서 피해자의 노모와 다섯 살 정도의 남자아이가 살고 있었다. 잡동사니들이 널려 있는 좁은 방은 어둡고 환기조차 되지 않았다. 노모와 이야기를 나누는 내내 아이는 없는 듯 조용히 흰 도화지에 기하학적 무늬를 그리며 놀았다. 노모는 체포 상황에 대해 대체로 아는 것이 없었고 그저 잘 부탁드린다는 말, 손주를 어떻게 키워야 할지 막막하다는 말만 했다. 이후 조사관으로 일하면서 나는 유사한 장면을 숱하게 목격했던 것 같다. 많은 인권침해의 피해자들이 비슷한 모습으로 살고 있었다.


이 글을 쓰면서 H 검사가 1심에서 고문 및 폭행치사를 공모하고 방조한 혐의로 징역 3년을 선고받으나 대법원에서 형량이 반으로 줄어들어 1년 6개월의 징역을 선고받았다는 것, 그리고 몇 년 뒤 사면된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책으로 펴냈고 영화 ‘검사외전’의 주인공 검사로 세간에 알려졌다. 여러 뉴스와 기사가 대법원 판결에 따른 실체적 진실과는 사뭇 다른 주장들을 피력하고 있었다. 그러나 어디에도 사망한 J 씨나 다른 피해자들에 관한 소식은 없었다. 2020년 국정감사에서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이 서울지검 사건을 검사가 ‘사람을 패 죽인 사건’이라고 표현했다가 여당 의원들의 사과 요구를 받았다는 기사도 검색되었다. 이 역시 그 표현의 품격 없음을 문제 삼았을 뿐 고인의 명예에 관한 것이 문제가 되었던 것은 아니었다. 인권침해 가해자들의 말은 학연, 지연, 학벌, 돈이나 권력으로 만들어진 성능 좋은 마이크를 통해 세상에 울려 퍼지지만 마이크가 없는 피해자들의 웅크린 말은 들리지 않는다. 서울지검 사건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대통령의 사과와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이 물러나야 했던 충격적인 인권침해 사건이었음에도  가해자들은 이런저런 사유로 짧은 형을 살고 풀려났고, 그 이후 피해자들의 삶에 관해서는 아무도 모르는 사건이 되고 말았다. 그 당시 우리가 조금 더 용감했고, 조금 더 유능해서 11층 특별조사실에서 조사받았던 사람들을 전수 조사할 수 있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생각했다. 서울지검 고문 사건 조사 경험을 일종의 무용담처럼 자랑스럽게 생각해 왔었는데 글을 쓰다 보니 후회되고 부끄러운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인권위가 어느새 스무 살이 된다. 용주골 그 방의 아이도 이십 대의 청년이 되었을 것이다. 인권위는 이제, 충분히 더 유능해지고, 용감해질 나이가 되었지만 어쩐지 20년 전 그만큼도 자기 역할을 해 내지 못한다는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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