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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오도 Oct 23. 2021

죽은 이의 거짓말

진실

특수 제작된, 초대형 밀짚모자를 쓰고 나타난 민원인을 만난 적이 있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독극물 공격을 막기 위해 지름이 1m가 넘는 모자를 쓰고 다녀야 하고, 집 밖에서는 물이나 음식조차 마음대로 먹을 수 없다고 했다. 이런 치밀한(?) 공격은 정부 기관이 아니면 할 수 없을 것 같다며 가해자를 찾아 달라는 호소였다. 전형적인 망상장애 증상이라는 생각이 들었으나, 우선 진지하게 이야기를 들어주고 가족과 상의해 보라고 권했다. 그러자 그는 사실은 아내가 1층에서 기다리는 중이라면서 당장에 올라오라고 해서 함께 만나 보자고 했다. 잠시 후 조사실로 들어온 그의 아내를 보고 나는 말문이 막혀버렸다. 아내 역시 모양도 형태도 똑같은 대형 모자를 쓴 상태였고, 남편 말이 전부 사실이라면서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아닌가? 아는 척을 하면서 가족과 상의해 보라고 권했던 내가 무색해지는 순간이었다.


이런 비슷한 유형의 진정사건이 꽤 많은 편이다. 물론 인권위법은 명백한 거짓이거나 이유가 없는 경우에 조사를 하지 않고 사건을 종결할 수 있는 규정이 있지만(이를 ‘각하’라고 한다), ‘명백한 거짓이거나 이유’가 없는 근거를 당사자에게 설명하는 것이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나는 죽도록 힘든데 인권위가 무슨 근거로 진정 내용이 거짓이라고 하는 겁니까?”라고 따지는 당사자에게 “상식적으로 이해했을 때 그렇게 판단됩니다.”라고 설명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종종 ‘명백한 거짓이거나 이유가 없는 경우’라고 하는 대신에 ‘조사 결과 증거가 없는 경우’에 해당하여 사건을 종결한다고 설명하기도 한다. “당신의 진정 내용이 이유가 없는 것 같습니다.”라고 말하는 대신 “조사를 해 봤지만, 가해자가 인권침해를 했다는 증거를 찾지 못했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진정인과의 불화를 피하기 위한 차선책으로서 ‘거짓말’을 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증거를 찾지 못했다는 것도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다.


조사를 하면서 다양한 색깔의 거짓말을 만난다. 이득을 챙기고 남을 해치려는 악의적 거짓말 말고도 밀짚모자 가족처럼 ‘특별한 거짓말’도 있고, 기억의 왜곡이 만드는 결과적 거짓말도 흔하다. 어떤 사람들은 “내가 똑똑히 보았다”라고 하면서 자신의 기억과 CCTV나 녹음 내용과 다를 때, 불완전한 기억을 의심하기보다는 기록이 조작되었다고 주장했다. 인간의 불완전한 기억에 자기기만이나 우연한 상황까지 겹치면 ‘거짓말’과 ‘틀린 말’의 경계는 더욱 모호해진다. 조사관 경력이 길어질수록 이해관계자의 말이 아무리 진실해 보여도 그 말을 뒷받침할 명확한 증거부터 생각하게 되었다. 피해자에게 증거에 관해 물으면, 자신을 믿지 않는 조사관에게 실망하면서, 때때로 화를 내기도 한다. 그들에게 인간 기억이 얼마나 불완전 하고, 모순적인지 일일이 설명하기는 쉽지 않다.


그동안 마주했던 여러 다양한 색깔의 ‘거짓말’ 중에서도 나를 가장 충격에 빠트린 사건이 있었다. 건물주 어머니의 실종 사건을 수사하던 경찰은 사건을 살인사건으로 전환하고 실종자의 아들을 긴급 체포했다. 그의 아내도 살인의 공모자로 수사 선상에 올랐다. 수사가 계속되는 상황에서 아내가 수사 중에 허위자백을 강요당했다며 인권위에 진정을 냈다. 경찰 수사가 사실이라면, 천륜을 저버린 끔찍한 사건이 되겠지만 만약 아내의 말이 사실이라면 세상 억울한 누명을 쓴 경우였다.


수사기록 일부를 입수해서 살펴봤는데, 여러 정황 증거가 부부의 살해 혐의를 의심하게 했다. 그러던 어느 아침, 아내의 동생이 내게 전화를 했다. “누나가 어젯밤에 집에서 목숨을….” 동생은 누나가 남긴 유서를 사진으로 찍어 보내면서 억울함을 꼭 밝혀달라며 울었다. 테두리에 꽃그림이 인쇄된 편지지에는 부모와 동생에게 자신은 살인사건과 무관하다고, 억울하다고 쓰여 있었다. 남편의 죄를 대신해서 사죄하는 마음으로 먼저 간다고 미안하다고 했다. 그리고 자신이 키우던 고양이를 걱정하면서 잘 돌봐달라고 몇 번이나 부탁하는 말을 남겼다. 나는 무엇보다 죽음을 각오하면서 남겨질 작은 고양이를 걱정하는 사람이 살해의 공모자가 될 수 있을까를 생각했다. 정말 그녀는 허위자백을 강요당했고, 억울한 누명을 벗을 수 없을 것 같은 공포에 극단적 선택을 한 것일까? 죽음을 각오하면서 가족에게 남긴 유서에도 ‘거짓말’을 쓸 수 있을까? 꽃 편지지에 볼펜으로 꾹꾹 눌러 쓰인 마지막 말과 그녀를 공범으로 가리키는 수사기록들 사이에서 길을 잃은 느낌이 들었지만, 마음은 마지막 떠나는 자의 말의 무게 쪽으로 점점 기울어지고 있었다.  


친족 살인사건을 맡아 정신없는 경찰 수사팀에게 진술서를 요구했고, 진행 중인 수사서류를 전부 제출받아 살펴봤다. 언론에는 새로 나온 증거들이 연달아 보도되었다. 포렌 식으로 살려낸 아내의 컴퓨터에서는 살인 방법을 수없이 검색했던 기록이 발견되었다. 남편과 함께 시체 유기 현장에 있었다는 증거도 계속 확인되었다. 그녀의 남편은 아내와의 공모 살인을 주장하면서 사체가 묻힌 장소를 자백했다. 아내의 사망으로 그녀에 대한 수사는 중단되었지만, 이후의 수사를 통해 드러난 내용으로 볼 때 아내는 어떤 식으로든 살인에 가담한 것으로 보였다.   


결국 이렇다할 인권침해의 혐의점이 발견되지 않은 채 사건은 종결되었다. 그러나, 그녀의 유서 속에 진실이 있다고 믿었던 나는 대 혼란에 빠졌다. 수많은 정황 증거들이 아내의 살인 가담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였던 만큼, 유서에 거짓을 썼다는 사실에 상당히 충격을 받았다. 죽음을 각오한 마당에 거짓말까지 한 이유를 이해할 수 없었다.


사건 발생 시점으로부터 십 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 이 사건을 떠올려 글을 쓰고 난 뒤, 우연히도 이 사건을 다룬 공중파 방송의 한 시사교양 프로그램을 보게 됐다. 십 년 만에 혹시나 새로운 진실을 알게 되는 것은 아닐까 싶어 흥미롭게 지켜봤다. 그러나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새롭게 밝혀진 사실은 없는 것 같았다. 다만 죽음으로 사건 수사가 중단된 아내의 살인 가담 정도를 바라보는 두 전문가의 의견에는 차이가 있었다. 아내가 살인의 배후였을 가능성을 높게 추론하는 쪽은 수사와 재판 결과에서 드러난 여러 증거를 제시하면서, 단순 가담을 넘어 모든 범죄 과정에 관여했으리라 판단했다. 다른 쪽은 남편의 주장이나 정황 증거 만으로는 죽은 사람을 주범으로 판단할 수는 없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두 전문가의 의견 중에 어느 쪽이 더 진실에 가까운지는 알 수 없다. 무기수로 징역을 살고 있는 그녀의 남편만이 그 진실을 알 것이다. 어떤 것이 진실이든 궁극적으로 유서의 내용이 거짓이었다는 점은 달라질 것이 없었다.


여전히 나는 많은 질문을 품고 있다. 죽음이라는 극단적 선택 앞에서 무엇을 두려워하며 거짓말을 했던 것일까? 인간이라면, 마땅히 진실을 밝히고 사죄했어야 하지 않았을까? 아니, 오히려 인간이라서 그런 거짓말이 가능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시어머니를 죽음에 이르게 한 잔인무도함과 남겨질 고양이를 걱정하는 마음이 공존하고, 죽음으로 거짓말을 지키려는 헛된 마음을 품는 존재가 인간 말고 이 우주에 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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