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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오도 Oct 23. 2021

춤 출수 있어야 인권이다

문화 향유 

아프리카 세네갈에는 ‘에콜 데 사블’(Ecole des Sables)이라는 세계적인 무용학교가 있다. 그 학교 프로그램 중에는 절대로 소리를 내거나 말을 해서는 안 되고 춤을 출 때도 음악을 틀지 못하는 묵언 과정이 있다고 한다. 묵언을 지키며 일주일 동안 춤을 추다 보면 불현듯 신비로운 악기 소리가 귀에서 조금씩 들린단다. 그 악기 리듬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분명해져서 묵언 중이라는 사실을 잊고 음악에 빠져드는 신비한 경험을 하게 된다고 했다. 무용수들의 지도자는 그 신비한 현상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우리 모두의 마음에는 각자의 악기가 있고 그 악기의 연주곡이 마음에 항시 흐릅니다. 우리가 평소에 그 소리를 듣지 못하는 것은 다른 더 큰 소리 때문이죠. 귀 기울이면 누구나 마음의 악기 소리를 들을 수 있어요” 


춤 선생님한테서 듣는 이런 이야기는 그의 춤만큼이나 매혹적이다. 우리가 아프리카 춤을 배우는 화요일 저녁이면 몸땀휴 (인권위 직원들의 운동 장소)에는 강한 비트의 아프리카 음악으로 터질 듯하다. 우리의 춤 선생 다니엘은 아프리카 베냉에서 온 세계적인 무용수이다. 우리 같은 초보들이 모실 수 있는 지도자가 아닌데, ‘좋은 일 하는 분들’의 몸과 마음이 춤으로 건강해졌으면 좋겠다며 춤 동호회의 초빙에 기꺼이 응해주었다. 인권 업무를 한다는 이유로 과분한 지지와 사랑을 받을 때가 많다. 


우리의 춤 동호회의 역사(?)를 듣는 사람은 두 번 놀란다. 춤과 조사관이라는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조합과 우리가 재즈와 살사, 아프리카 댄스까지, 코로나로 잠시 휴지기를 갖기 전까지 10여 년 가까이 춤을 배우고 있다는데 우선 놀란다. 그것도 오리 엘비스나 다니엘과 그의 아내 권이은정 같은 세계적 무용수를 스승으로 모시고! 두 번째로 놀라는 것은 우리의 멋진 춤을 보고 난 후이다. “아.. 아니.. 그런데.. 정말 십 년 넘게 춤을 추신 거, 그, 그거 정말입니까? 하하하” 아, 왜들 그렇게 놀라시는지.. 아무튼 우리의 춤 실력은 상상에 맡기고 싶다. 


독일의 예술가를 위한 프로그램에 대해서 들은 적이 있다. 예술가들은 숲으로 둘러싸인 대저택 ‘빌라 마시모’에서 1년 동안 우아한 숙식을 제공받으며 조건 없이 원하는 창작 활동을 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런 곳에서라면 공인된 예술인은 되지 못하더라도 누구나 아티스트의 시간은 살 수 있을 것 같다. 언젠가 최영미 시인이 호텔의 전망 좋은 방을 1년 동안 쓰게 해 주면 호텔 홍보대사가 되겠다는 제안을 했다가 구설수에 올랐던 적이 있다. 그 기사를 보면서 최영미 시인이 그 특급호텔에서 ‘빌라 마시모’에서 살 듯 1년을 보내고 싶었던 것 같다는 생각을 했었다. 평범한 내게 만약 그런 기회가 주워진다면, 무엇을 하며 1년을 보낼까? 아, 그냥 상상하는 것만으로 행복하다


한 나라의 인권의 수준을 가늠하는 다양한 지표들이 있다. 미국 서부의 한 도시는 강물로 회귀하는 연어의 수를 인권의 지표에 넣는다. 연어가 회귀할 수 있는 강이 있는 도시라면 사람이 살기도 좋은, 인권 도시가 분명할 것이다. 나에게 인권지표를 개발하라고 한다면, 숙식 문제를 걱정하지 않는 시인의 수와 막춤일망정 일주일에 한 번 이상 춤을 추는 사람들의 숫자를 여기에 포함시키고 싶다. 이러한 권리를 ‘표현의 자유’라든지 ‘문화 향유권’ 같은 거창한 말로 설명하지 않고 ‘걱정 없이 춤추고 시를 쓰며 살 권리’라고 표현한다면, 인권이 얼마나 쉽고도 다정하게 들릴까? 인권위법의 인권의 정의 역시 이렇게 쉽게 고치고 싶다. “시를 쓰는 것이 인권이다. 춤출 권리가 인권이다” 인권위법을 내 마음껏 고칠 수는 없지만 대신 마음껏 춤을 출 권리가 우리에게 있다. 몸땀휴가 아프리카 초원인 듯 춤을 추는 이유이다. 춤추는 이유가 너무 거창한가? (그래서 춤 실력이 늘지 않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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