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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오도 Oct 11. 2020

아들의 치킨집 알바를 만류한 이유

타인의 고통

인생 첫 아르바이트를 앞두고 아들이 기대에 부풀어 있었지만 나는 아르바이트하게 될 곳이 치킨집 주방이라는 얘기에 덜컥 겁부터 났다. 기름으로 튀기기면 어쩌나, 화재 위험은 없을까, 기름 연기가 몸에 그렇게 안 좋다는데… 나쁜 상상이 먹구름처럼 몰려들었다. 인생 첫 아르바이트를 앞두고 신이 난 녀석에게 필요한 거 있으면 엄마가 사 줄 테니 아르바이트하지 말라고 말해버렸다. 경험이 중요하다가 강조할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엄마가 다 사 줄게’라니…. 진정 내가 바로 헬리콥터 맘이 아닌가. 이 말에 아들은 나를 꼰대 취급했다. 얼마나 어렵게 구한 아르바이트인데 무조건하지 말라며 알아서 한다고 선언한다. 구구절절 옳은 말이나, 그래도 나는 걱정되고 불안하다.


토요일 밤에 처음 일을 하고 온 아이가 풀이 죽어 보였다. 이틀 동안은 무급 인턴으로 일을 배우는 거라고 했다. 치킨집 아르바이트생이 이틀이나 무급 인턴을 하는 것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지만 입을 꾹 다물었다. 다섯 시간 동안 생닭 손질하고, 닭 튀기고, 설거지하고, 주문받고, 그냥 시키는 그거 다 하는데, 아르바이트생이 혼자라 바빠 죽다 살았단다. “근데 엄마 정말 더워. 주방에 에어컨은커녕 환풍기도 없어. 덥기도 하지만 기름 정제할 때는 진짜 조심해야 할 것 같아” 아니 무슨 최저임금 아르바이트생이 기름까지 정제시킨단 말인지. 그냥 커피숍이나 편의점 같은 곳으로 옮기라고 했더니 세상 물정 모른다는 눈길로 쳐다봤다. 그런 곳은 구하기도 어렵지만 힘든 건 마찬가지라고 했다.


남의 집 아이들이 일하는 거 보면 측은하면서도 기특하다, 철들었다 그래 놓고 막상 내 자식이 일한다고 하니, 고층빌딩 유리창을 닦는다는 것도 아니고, 공사장에 나간다는 것도 아닌데, 내 기준으로 고작 몇 푼 벌겠다고 그 고생을 하냐면서 만류하는 나. 울 아들이 하지 않더라도 누군가 그 일을 해야 할 텐데. 그나마 그런 자리도 경쟁이 심해서 겨우 구했다고 하지 않던가? 생계형 아르바이트생에게는 이런 고민은 사치에 불과할 텐데, 라는 생각에 이르자 얼굴이 화끈거렸다. 늦은 밤 컴퓨터를 켜고 태안화력발전소에서 비참한 죽음을 당한 고 김용균 씨와 그의 엄마 김미숙 씨에 관한 기사들을 찾아 읽었다. 김용균 씨뿐 아니라 간단한 검색으로도 일하다 사고로 죽은 ‘남의 집’ 자식들의 이야기가 넘쳐났다. 회사의 기본적 안전조치 미흡 때문에 죽는 사람이 해마다 이천 명이 넘는다는 믿지 못할 수치들을 읽었다. 안전조치를 하는 비용보다 사람 목숨 값이 싼 나라에서 '남의 집' 자식들은 그렇게 죽어가고 있었다.


 김용균 씨의 엄마 김미숙 씨는  이상의 죽음은  된다며 바람 부는 광장에  있었다. 남의 자식의 죽음이라도 막겠다는 김미숙 씨의 검디검은 눈동자가 아득해 보였다. 그가 보냈을  없는 불멸의 밤처럼 깊고도 검었다. 그의 어쩔  없는  마음은 정녕 얼마나 어쩔  없는 것이었을까. 위험한 곳에서 노동하는 청춘들과 그들을 지켜볼 수밖에 없을 수많은 김미숙 씨의 고통이, 인권으로 밥벌이하는 내게도 여전히 타인의 고통이며 연민의  자락 끝에 있음을 부끄럽게 깨닫는 밤이었다.


다음날, 아들은 종일 생각했는데 치킨집 부엌은 너무 위험할  같다며 아르바이트를 그만두겠다고 말했다.  입에서 잘했다는 말이 저절로 나왔다. 진은영 시인의 말처럼 ‘연민은 정오의 그림자처럼 짧고나의 ‘수치심은 오후의 그림자처럼 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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