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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인시 Dec 06. 2023

죽음이 유일한 구원이므로


내 방 안 땅 마저 발에 찬 겨울 창문을 젖혀 힘껏 여낸다.


끊임없이 떠올린다 페트라의 암산 정상까지 찌는 듯한 더위에 근처에서는 피비린내가 나는 숨결을 몰아쉬는 당나귀들에 날카롭고 회초리가 살에 닿으면 여지 없이 피부가 찢어 열리어 피가 쪼르르 흐르는 모습을 운전하다 생각한다. 웃으며 갈고리질을 하는 아이들! 사람들! 자기 전에 생각한다. 잠들지 못하는 밤중 생각한다.


잠깐 잠이 들어 눈을 뜬 새벽이다. 새벽 같이 일어났을 페트라의 당나귀들은 지옥의 어제와 같은 오늘을 살아낼 것을 사해에서 생각한다.


견딜 수가 있나? 견뎌도 되는 것인가? 아픈 현실을 알면서 가슴 아파하지 않고 살아가기 위해 집단이 아닌 개체를 떠올린다. 내가 보고, 듣고, 알았던 모든 야만적인 일이 가해진 피해의 생명들을 생각하지 않고 하나의 짧은 생을 떠올린다. 그 생은 격정적으로 처참하고 빠르게 마감된다. 이 중 오로지 다행인 것은 빠르다는 점이다. 마감하자 육체는 꺼진다. 세계는 혼에게 고통을 주지 못한다. 사회가 착취하고자 하는 것을 혼은 가지지 않는다. 개체의 삶은 짧은 바 모두에게 위안이 된다.


죽음이 유일한 구원이므로라 함은,

죽음예찬적인 것이 아니다. 죽음을 모르기에. 다 하지 못한 삶을 말하기에.

죽음 이후가 윤회라면, 불완전한 삶이 이를 반복하게 만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사후의 세상이란 어떤 곳, 것인지 알지 못하므로.


08.22.2019

찌는 더위에, 좁고 가파른 암벽을, 암벽 정상쯤 경치가 아주 좋은 곳에 위치한 편의점에서 팔려나갈 물통들을, 온몸 가득 싣고, 아니면 관광객을 싣고, 걸음이 늦어질라치면 '양발을 모아 옆구리를 발길질하세요!' 관광객에게서, 회초리와 갈고리를 '주인'에게서, 피비린내 나는 콧김을 뿜으며, 내 옆을 걸어가던, 죽으면 얼마얼마 정도에 쉽게 대체 된다던, 그게 싸다던, 당나귀들을 떠올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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