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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감 Jul 10. 2022

첫 템플스테이와 수덕사.

가장 어두운 순간에 비로소 보이는 것이 있다.




  힐링이란 무엇일까. 나를 둘러싼 일상에서 벗어나는 것은 여정이고 편안한 것은 쉼이고 그 잠시간의 설렘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오히려 아쉬움보다 어딘지 울적함이 느껴지는 이 기분이 과연 힐링일까. 상처를 치료해 줄 사람 어디 없나. 그러던 중 지난 금빛 열차 코스에서 스치듯 보았던 예산의 '수덕사'가 떠올랐다. 아무런 일정 없이 절에서의 하루를 보낼 수 있어 일정의 부담이 없고 절 입구도 산 초입이라 멀지 않고 바로 밑에 대형 프랜차이즈 카페와 편의점과 더덕구이 맛집을 보유하고 있는..! 이 속세와 근사한 콜라보를 선보이는 수덕사는 주저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심신수양의 공간에서 머무는 것은 색다른 경험이 되어줄 테다. 예약하려고 보니 1박에 저녁과 아침까지 주는데 숙소도 독채고 심지어 가격도 너무나 합리적이었다. '이것이 부처님의 자애로움이구나.' 결제까지 일사천리로 마무리하며 또 한 번의 금빛 열차에 몸을 실었다.  





입구에 도착하자마자 내가 상상한 모든 것이 하나씩 이루어지고 있었다. 더덕구이는 맛있었고 늘 마시던 카페의 커피를 즐길 수 있음에 감사하며 카페인을 흡입하고 편의점에서 온갖 간식거리를 야금야금 씹으며 도착한 템플스테이 숙소의 외관은 한옥으로 아름다웠으며 그 안에는 현대식이라 모든 것이 쾌적했다. 초가을의 산은 바람은 청량했고 하늘은 드높았으며 환기를 위해 열어놓은 문 사이로 들어오는 바람에 스치는 나뭇잎 소리는 근사할 따름이었다. 그래서 낮잠을 잤다. 사실 상상 속에선 이 시간은 원래 절을 가볍게 둘러보곤 숙소로 돌아와 마루에 앉아 집에 100만 년째 묵혀둔 소설을 읽는 시간이었지만 모든 조건이 나를 낮잠으로 이끌고 있었다. 마지못해 침구에 기댔더니 순식간에 2시간이 흘러갔다. 엉금엉금 기어 나와 잠을 깨고자 앉아 있던 마루에서는 그 어떤 소음도 들을 수가 없었다. 너무 고요했다. 현대인에게는 가장 필요하지만 그만큼 익숙하지 않은 정적의 시간이었다. 덕분에 온전한 시간의 흐름을 느낄 수 있었다. 늘 시간은 견디거나 아쉬운 존재였는데, 여기선 고스란히 그 흐름을 느낀 덕분일까. 1분 1초가 충만한 탓인지 제법 오랜 시간을 앉아 있었던 거 같은데도 시간은 고작 30분 남짓 흘러갔을 뿐이었다. 곧 있으면 저녁을 위한 타종이 시작될 참이다. 서둘러 절을 둘러보기 위해 걸음을 옮겼다.


한참 걸음을 옮기다 보니 스님들을 만나 뵙게 되었는데 자정 너머 있을 새벽예불에 참여해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하셨다. 모든 것이 잠드는 시간에 정성껏 기원하는 시간. 냉큼 절을 둘러본 뒤, 절에서 제공하는 맛있는 저녁을 먹고 (발우공양은 생략하는 융통성 있는 절이다.) 이른 잠자리에 누웠다. 숨소리가 들릴만큼 고요했고 빛 한 점 없기에 빠르게 잠에 들 수 있었다.


약 5시간이 흐른 뒤, 고요를 깨부수는 휴대폰 알람 소리에 눈을 떴다. 기상이라는 단어가 낯선 시간에 졸린 눈을 비비고 비척비척 걸어 나갔다. 곳곳에 가로등이 있었지만 빛이 닿지 않는 부분은 커다란 나무의 형태조차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깊은 어둠이었고 예불을 드리는 대웅전에 다가갈수록 그 불빛조차 멀어져만 갔다. 신성한 시간에 감히 정신을 못 차리고 스님들만 드나들 수 있는 출입구와 자리를 탈하기를 수 차례, 겨우 나의 자리를 찾을 수 있었다. 외부의 불빛도 없거니와 대웅전 안에는 일렁이는 초만 켜져 있어 익숙지 않은 조도에 마치 과거로 돌아간 듯한 기분이 들었다. 방해만 되지 않겠다는 일념으로 졸음에 무너지는 눈을 굴리고 있던 중 어렴풋한 빛 속에서도 그 위압감을 드러내는 부처님을 문득 마주했다. 적막 속 타종소리가 울리자 심장이 댕그렁 함께 울렸고 어쩐지 내비쳐 본 적 없는 나의 심연을 부처님 앞에 꺼내놓아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기도소리를 따라 나도 내면의 오만가지 것들을 다 읇조리며 내뱉기 시작했다. 웃기게도 나는 고할 것도 참 많았고 바라는 것도 참 많았다. 이 분위기가 그러한지 이 시간에 기상을 해서인지 예불이 진행될수록 마치 거대한 의식을 치르는 것처럼 몽롱한 의식 속에서 깊은 새벽의 예불을 함께했다. 


나서는 길, 사사롭게 나를 채웠던 잡념들이 비워진 듯한 기분에 새벽의 묵직한 공기 속에서 정신만은 또렷했다. 이대로 숙소에 돌아가기 아쉬워 대웅전 앞에 위치한 큰 나무 밑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리 높게 위치한 곳이 아님에도 늘 올려다보아야 했던 하늘이 이곳에서는 별무리와 함께 수덕사를 둘러싸고 있었다. '아름답다' 이 절이 마치 우주 한가운데 떠있는 것만 같았다. 한참을 감상하고 있으니 새삼 내가 머무는 도심은 너무 밝았다. 저 어두워야 보이는 별들이 낮이라고 빛나지 않았을까. 이러니 일상의 반짝이는 순간들을 못 보고 단조롭다 여기진 않았을까. 살아가는 것들은 모두 빛이 난다고, 나 자신도 마찬가지 일터인데 어느 순간 더 밝은 것만을 쫒으며 나를 빛나지 않는다 여겼나. 어둠 속에서 형형히 나를 바라보던 부처님이 떠오른다. 과연 깨달음을 주셨구나. '넌 빛나는 존재'라고 노랫말 속에 자주 등장하는 것에는 이유가 있다는 것을 이렇게 배운다. 위로와 격려 때론 칭찬이라 생각했지만 지금 보니 그냥 참의 명제다. 새벽 공기가 상쾌해지기 시작했다. 색다른 힐링 성공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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