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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칠성상회 Nov 18. 2021

그래도 너는 사랑받아 마땅한 아이

나는 초등학교 교사다. 올해 구월에 복직을 하여 열 살 배기들의 담임이 된 지 세 달 차.  그리고 이제 써 내려가고자 하는 것은, 내 기력을 소진시키는데 일가견이 있는 한 친구에 대한 이야기이다.


할머니의 넘치는 사랑 속에서 자라난 응석받이, 게임에서 진다 싶으면 발을 구르며 때려치우겠다고 말하는 관심꾼, 수업 중 말 끊기 대장, 그리고 떠오르는 제 의식의 흐름을 말해야 직성이 풀리는 녀석 , 연필과 지우개는 왜 너의 것만 자꾸 부러지고 없어지는지 알 길이 없는 친구.


어린이들이라도, 아니 어릴수록 사회성이 덜 발달한 친구는 기가 막히게 알아챈다. 그리고 또래와 다름을 이상하게 생각하다가 싫어하게 되는 수순을 밟는다. 위와 같은 이유로 이 녀석은 왕따이거나 아니거나의 경계를 하루에도 무수하게 넘나들고 있었고 내 관심의 매우 큰 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오늘 아침, 나는 이 친구가 체험학습 가는 버스에 타지 않았다는 걸 미처 발견하지 못하고 버스를 출발시키는 실수를 저질렀다. 전화기 너머로 들리는 교감 선생님의 목소리, 그 반 학생 한 명이 버스에 못 타고 학교에 남아있다는 말에 나는 등골이 서늘해졌다.


운전하시는 선생님께도, 교문에서 기다리고 계실 관리자분께도 죄송하다는 말을 연발하며 차를 돌려 아이를 태웠다. 버스에 올라탈 때에 아이의 눈가는 조금 젖어있었고 어디에 있었냐고 묻는 내 목소리에는 날이 서 있었다. 어째서 너는 나를 이렇게 곤란하게 만드냐는 힐난의 날이었다.


그렇지만 곰곰이 벌어진 일을 돌이켜볼수록, 사과는 교감 선생님께 해야 할 것이 아니었다. 몇 안 되는 학생들의 숫자를 세지 않고 출발을 시킨 것은 나였다. 내가 제일 먼저 헤아려야 했던 것은, 내 실수에 대한 관리자의 의중보다, 덩그러니 남아 그토록 기다렸던 체험학습에 못 가게 된 절망감을 맛봤을 녀석의 마음이었다.


버스가 떠나버렸을 때 기분이 어땠냐고, 그래, 그랬었겠다고, 선생님이 미안했다는 말을 전했다. 그런 나에게 당근 스틱을 한 개 쥐어주며 녀석은 말했다.

"선생님, 저 아래 귀여운 동물들이 진짜 많단 말이에요. 기니피그도 있고, 토끼랑 돼지도 있어요. 선생님도 꼭 간식 한번 먹여 줘 봐요."


말랑이라는 이름의 강아지를 꽤 사랑하며 키우는 이 친구는 귀여운 동물들로 가득한 공간이 주는 행복에 취해 오전의 당혹감은 자취도 없이 떨궈낸 상태였다. 행복의 정점은 카페에 데리고 가 전날 스스로 골랐던 메뉴, 핫초코를 손에 들려주었을 때였다. 첫 모금을 맛본 직후 녀석의 두 눈매는 감동에 겨워 여덟 팔자와 비슷해졌고 만화에서 막 튀어나온 것처럼 눈동자가 반짝거렸다.


그런데 이 얼굴이 어쩐지 나로 하여금 서운한 눈물로 조금 반들거렸던 아침의 그 표정을 떠올리게 했다. 결국 아이다. 공부보다 뛰어노는 게 좋고, 동물을 무척 사랑하고, 엄마가 늘 보고 싶고, 내 말에 귀 기울여 주는 사람이 고픈 아이다.


인라인을 허락해주었던 어느 날엔, 나에게 인라인 신는 방법을 알려주고 바들거리는 선생님의 손을 잡아주겠다하여 나를 기막히게 했었다. 삼십 킬로그램도 채 나가지 않을 가볍고 작은 이 친구, 자신의 놀이 시간을 털어 남을 챙기는 일은 열 살에게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반에서 혼자만 하고 싶어 하던 뜀틀을 맘껏 넘어보라고 세팅을 해줬던 날, 땀을 뻘뻘 흘리며 뜀틀을 날개단 듯 넘나들던 네 눈빛이 꼭 오늘과 같이 반짝였었다. 녀석과 둘이 낑낑대며 도구를 다시 창고로 나르는데 마주 보이는 그 얼굴, 아무런 구김이 없이 맑았다. 그리고 기억이 났다. 늘 움츠리고 있던 너를 오늘은 내가 좀 웃게 만들었다는 그 기뻤던 마음이.


그러나 남은 학기 동안 아마 너를  너른 품으로 감싸주지 못하고, 다른 친구들과 다르게 행동한다는 이유로 역시 또 꾸중하게 되리라는 생각을 하며 다시 마음이 불편해진다. 어른이라는 표를 달았으므로, 너에게 바른 습관을 만들어줘야 하므로, 다른 친구들과 비슷하게 만들어주어야 무시당하지 않겠기에.


너를 꾸짖을 이유는 너를 사랑해주어야 할 이유보다 많고도 간단하다. 반면, 너를 품어주어야 하는 까닭을 찾으려면 기억을 살펴서 끄집어내는 품을 들여야 한다. 게다가 그것들은 쉽게 드러나지 않아서 담임교사인  나만 어렵사리 알 수 있는 것들이다. 어쩐지 미안하고 착잡하다.


그래서 나는 너의 아이다움, 천진난만하여 사랑스럽던 순간을 떠올리며 적어본다. 네가 너답게 단단하게 크는 데에 선생님의 이 몇 조각의 지지가 조그마한 보탬이 되기를.  학교에서 머무는 시간 동안 내가, 그리고 누구라도 너를 한 번이라도 더 쓰다듬어줄 수 있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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