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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칠성상회 Mar 24. 2024

이번 봄에 사랑하는 것들

그리고 사랑하고 싶은 것

어둑시근한 일요일 오후, 오랜만에 복동이 없이 커피를 마시러 나선 길이다.


“커피가 좀 다크해졌어요. 싱겁다는 말씀을 많이 하셔서요. “

“… 전 커피 맛은 잘 몰라서 괜찮은데, 알고만 있을게요.”


두껍고 동그란 안경알 너머 사장님의 씩씩하고 친절한 눈빛. 뻔질나게 드나들지만 더 다가서지 않는 알맞은 온도의 환대. 늘 그렇듯 카페 안과 밖 모두 인적은 드물고, 곧 작은 빗방울들이 투두둑 통창을 때린다. 다크하다는 커피가 입에 맞게 구수하다는 생각을 하며 창 밖을 한참 내다본다.


삼월도 중반을 넘어서는 이 즈음에 내가 눈으로 찾고 있는 것은 깨끗한 아이보리빛의 목련과 버드나무의 물기 어린 새 잎들이다. 점점 부예지는 들판을 둘러보다가 문득 가슴이 조여 작은 탄성 같은 한숨을 내뱉게 될 때. 그 곳에는 환하게 빛나는 목련의 황홀하고 애잔한 한 시절이나, 갓난쟁이의 머리칼같이 부숭부숭 부풀어 오르는 버드나무가 있었다. 이 풍경이 나에게 봄이었음을 이제야 알았네. 알아주는 이 없어도 혼자 기쁘다.


며칠 전부터 앞니 빠진 자리가 아프다고 하더니 복동이의 새 앞니가 나오고 있다. 엑스레이로 봤을 때 상당히 컸던 고 녀석이다. 하얗고 오돌도돌한 것이 하루가 다르게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나는 아침저녁으로 이 해봐. 아 해봐. 자꾸 시키며 복동이의 새 영구치를 감상한다. 신비롭고, 대견하고, 귀엽고, 뭉클한 뭐라 말할 수 없이 엄마 마음을 벅차게 하는 내 아가의 커다란 새 앞니. 이걸 감상할 때의 느낌을 글로 적고 있자니 또 가슴이 뛴다. 벙싯 부푸는 목련을 볼 때처럼, 보드라운 연둣빛의 버드나무를 마주했을 때처럼.


아주 바쁜 일은 지나고. 매섭던 날도 풀리고. 나는 또 올해를 어떻게 살까 시답잖은 고민도 품어볼 만한 여유가 좀 생겼다. 서른 한 살이나 마흔 한 살이나 갈피를 못 잡는 것은 매한가지인걸 보니 쉰 한 살이 되어도 똑같은 걸 고민하고 있을 내 모습이 훤하다. 남몰래 품었던 야망은 나날이 쪼그라들지만 스스로에게 떳떳하고 싶은 욕심은 점점 커진다. 대단한 성취가 없어도 순한 마음으로 읽고 생각하고 적고 배우며 살고 싶다. 그래서 그 누구보다도 내가 내 맘에 쏙 들었으면 좋겠다. 지난한 일일 것을 알기에 가슴이 다른 이유로 다시 조여 와서, 숨을 한번 크게 들이쉬었다 뱉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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