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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 슬 Nov 12. 2018

며느리의 일기장 28

이번 복날에 뭐 사줄거니?

 복날을 앞두고 시댁에 방문할 일이 있었다.

가족들과 모여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아버님께서 혼자 낚시에 가신다고 하시기에 남편과 내가 따라나서기로 했다.

낚시 용품을 챙기며 이런저런 얘기를 하던 중, 시어머니께서 말씀하셨다.

"이번 복날에 뭐 사줄 거니?"


 갑자기 뭐 사줄 거냐는 질문에 당황스러웠지만 가족끼리 식사하시고 싶으셨나 보다 생각하고 여쭤봤다.

"어머니 뭐 드시고 싶으세요?"

"글쎄... 복날이니까 너네가 사주고 싶은 거 말해라."

"그럼 복날이니까 삼계탕 어떠세요?"

시어머니께선 내 말을 듣자마자 표정을 굳히시며 말씀하셨다.

"삼계탕?"

"어머니 삼계탕 싫어하세요? 평소에 백숙 좋아하셔서 삼계탕 말씀드린 건데. 아니면 다른 것도 좋아요! 복날이니까 삼계탕 떠오른 거예요."라고 말씀드렸다.


 시어머니께서는 뭔가 하시고 싶으신 얘기가 있어 보이셨지만 하지 않으셨다.

그리고 우리는 삼계탕을 먹으러 가기로 약속했다.

약속한 당일, 시어머니께서는 또 지인을 모셔왔다.

이젠 놀랍지도 않았다.

삼계탕을 드시고는 말씀하셨다.

"이번에 너네가 삼계탕 사줬으니까 말복 때에는 아버지가 소고기 사주신다고 하신다."


 처음에는 그냥 "아! 아버님 감사합니다."하고 대답했는데, 시어머니께서 한참 뒤에 하시는 말씀을 들어보니 그날 우리가 사드려야 했던 건 삼계탕이 아니라 소고기였다.

그래서 삼계탕 사드린다는 말에 '고작 그거 사주냐?'라는 표정으로 대답하셨었나 보다.

시어머니와의 대화는 늘 뭔가 찝찝했다.

늘 스무 고개하듯이 속내를 맞춰야 했었고, 그걸 못하면 난 눈치 없는 며느리가 되어야 했다.


 뭐, 결론적으로는 말복에 시댁은 우리를 빼고 소고기를 드시러 다녀오셨다.

추후에 알고 보니 이런저런 핑계로 우리한테는 연락을 안 하시고 가족끼리 다녀오셨다.

이젠 그냥 그러려니 했다.

김장을 하셔도 아가씨 남자친구 댁에는 보내주고, 우리 친정엄마는 드릴 게 없다며 전혀 위화감이 들지 않는 표정으로 미안해하셨으니까.

항상 나와 내 친정은 뒷전이었으니까.


 시댁의 시집살이 놀음에 나는 초등학교 시절로 돌아간 것 같았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유치한 행동으로 무리에서 배제하고 따돌리는 것.

먹을 거 하나로도 사람을 차별하는 것.

뒤에서 이간질하고 내가 하지 않은 행동에 대해서도 비난을 받는 것.

내가 정작 그 행동을 했는지, 안 했는지는 중요하지 않고 그저 가십거리가 필요한 것.

난 시댁에서 딱 거기까지였다.

심심풀이 땅콩의 가십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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