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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준 May 09. 2024

동굴 속에 스스로 갇히기

나는 과연 안전한가?

공황발작 이후 나는 자발적으로 나만의 동굴을 만들었다. 무의식적으로 위기를 감지했던 것 같다. 최소한의 사회생활을 빼고는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아이 등하교 같이 꼭 해야 하는 일정 빼고는 나의 흔적은 제로에 가까웠다. 가족, 친구들도 멀리하고 좋아하던 식당, 카페 등에도 가지 않았다.


나에게 불행인 건지 다행인거지 공황발작 직후 한 공모전에서 대상을 받게 됐다. 전업작가를 꿈꾸며 글쓰기에 매진하던 중에 단비 같은 소식이었다. 나는 이것을 빌미로  쉽게 나만의 동굴을 만들었다. 공모전을 목표 혹은 핑계로 집안에 갇혀 글만 썼다. 더 큰 성과를 내고 싶다는 욕망에 사로 잡혀 각종 공모전에 도전했다.


나는 지금 목표가 있으니까 사람을 멀리하는 거라고 나 자신을 속였다. 심지어 아이 등하교 시간에 동네 엄마들 조차 만나는 것이 부담스러워 5분도 안 되는 거리를 차를 타고 이동했다. 나의 변화에 친하게 지내던 동네엄마들이 의아해했다.


"요즘 왜 이렇게 얼굴 보기 힘들어?", "요새 무슨 일 있어?", "왜 모임에 안 나와?", "놀이터서 좀처럼 볼 수가 없어", "보고 싶어".... 가끔 마주치는 동네 지인들이 내 소식을 궁금해했다. 매일같이 놀이터가 만남의 장이었는 데 극단적으로 두문불출하니 내 소식이 궁금할 수밖에.


나는 "요즘 하는 일이 있어서", "공모전 하나가 돼서 요즘 다른 것도 도전해 보고 있어", "다시 글 쓰는 중이라서 요즘 바빴네" 등의 답으로 만남을 피했다. 괜히 뭐 있어 보이게 포장해서 내 근황을 알렸다. 반은 사실이기도 했기에 바쁘다는 핑계로 주변을 멀리했다.


어느 날 아이가 말했다. "엄마 나 밖에서 놀고 싶어. 요즘 맨날 왜 집에만 있어?"


마음이 쿵 내려앉았다. 몇 개월을 공모전 준비를 핑계로 아이와의 외출을 안 했으니 얼마나 답답했을까. 한 창 놀아야 할 아이를 방치하고 있었다. 당장 나가서 사람들 틈에 어울리고 싶었지만 몸은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사실 사람들하고 섞이는 게 무서웠다.


'내가 또 사람들 앞에서 쓰러지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이 기본적으로 내 머릿속에 박혀버렸다. 사람들을 마주하는 것이 버겁고 두려웠다. 나중에 알게 됐는데 이것은 전형적인 '광장공포증' 증상이라고 한다. 광장공포증이란 광장이나 공공장소 등을 기피하는 증상이다. 불안장애의 일종으로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상황, 장소에서 극도의 공포를 느낀다고 한다. 광장공포증 환자의 대다수가 공황장애를 동반한다고 한다.


나는 공황발작 이후 사람 많은 곳에서 내가 또 쓰러질 수 있다는 공포에 사로잡힌 것이었다. 그래서 본능적으로 사람이 많은 곳을 피하고 있었다. 특히 놀이동산 줄 서기, 공연장처럼 많은 사람들 속에서 내가 갑자기 공황 증상이 올 때 빠르게 숨을 곳이 없다는 것이 큰 공포였다. 그래서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공간이나 상황을 자연스럽게 제한을 두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전업주부였기에 집이란 공간에 숨기가 좋았다. 직장인들처럼 출퇴근을 하는 것도 아니었기에 내 생활을 단조롭게 하기는 어렵지 않았다. 이것이 나를 더 병들게 만들었다. 숨기 좋은 환경에서 서서히 나는 더 망가지고 있었다. 흔한 일상이 더 이상 당연한 것이 아니라 마트 장보기 같은 단순 외출도 힘겨워진 것이다.


아이가 아파서 소아과에 간 적이 있는 데, 한 여름도 아닌데 땀이 줄줄 났다. 우리나라 소아과는 항상 오픈런을 해야 하고 발 디딜 틈 없이 사람이 많다. 한 시간 대기는 일도 아니다. 아이가 아파서 어쩔 수 없이 소아과는 가야겠고, 나는 죽을 맛이었다. 불안에 휩싸여 참을 수 없을 때는 화장실에 들락거리며 명상을 했다.


소아과, 놀이터마저 가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을 때 병원에 가야겠다고 처음 생각했다. 나로 인해 나만 망가지는 것이 아니라 사실 아이도 망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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