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와 내가 좋아하는 음식점이 있다. 그곳은 장인이 만들어 낸 돈가스를 먹을 수 있는 곳이다. '장인'하면 떠오르는 형용사는 '고집스럽다', '괴팍하다', '불친절하다'이다. 그런데 그곳의 장인은 부드러움이 느껴진다. 그곳은 기다림의 미학도 느껴진다. 왜냐하면 돈가스를 먹으려면 최소한 15분을 기다려야 하기 때문이다.
'15분? 뭐 그정도야 기다릴 수 있지'
그런데 앉아있다보면 생각보다 15분이라는 시간은 길다. 다른 음식점은 주문 실수가 없다면 길어야 10분안에 음식이 나온다. 5-7분 이라는 차이는 생각보다 크다. 10분이라도 해도 3/1 이라는 시간을 더 기다려야 먹을 수 있다.
처음 방문했을 때, 식당에는 아내와 나 둘밖에 없어서 바로 앞에서 조리 과정을 볼 수 있었다. 시간이 점점 흐르고 다 튀긴 돈가스를 튀김기 옆에 올려 놓고 장인은 다른 작업을 하고 있었다.
'뭐지? 왜 음식을 주시지 않는거지. 잊어버리셨나?'
이런 고민을 5분정도 하다 아내에게 음식을 잊어버리신거 같다고 중얼거렸다. 역시 장인은 예민하셔서 나의 목소리를 들으셨다. 그리고 다가오셔서 설명하셨다.
"돈가스를 튀기고 예열하는 시간이 5분 필요해요. 그래야 정확한 맛을 느끼실 수 있어요."
"아.. 네 알겠습니다."
5분이 지나고 일본 특유의 정갈한 느낌의 한 상을 받게되었다. 깨끗해 보이는 돈가스, 싱싱해보이는 채소, 슴슴하면서 고소함이 느껴지는 된장국, 짭지도 달지도 않은 적절한 단무지와 샐러리 그리고 무엇보다 수분과 찰기가 적절한 밥. 한눈에 보아도 범상치 않음을 느낄 수있었다. 입에 침이 고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장인의 설명.
"바로 소스를 찍어드시는 거 보다 소금과 와사비를 얹어서 드셔보세요. 돈가스를 잘 느끼실 수 있어요."
"오!! 감사합니다."
핑크색으로 보이는 소금은 엄지로 누르면 딸깍하고 적절한 양이 나오는 긴 통에 담겨있었다. 소금조차 싱싱한 느낌을 받았다. 그렇게 장인의 설명대로 소금과 와사비를 얹고 한입 배어 물었다. 그때의 느낌은 잊지 못한다. 그리고 주변 분들이 그렇게 그 집 돈가스가 맛있어? 라고 물을 때, 나는 언제나 동일하게 말한다.
"그곳 돈가스는 맛있다는 표현은 적절하지 못해. 돈가스에서 장인의 시간이 고스란히 느껴져. 꼭꼭 씹을때마다 느껴지는 고소함은 그가 돈가스를 위해 얼마나 시간을 들였는지 천천히 그리고 명확하게 느낄 수 있어."
나는 끝날 때까지 돈가스 소스를 단 한번도 찍어 먹지 않았다. 오로지 돈가스 자체의 고소함을 느끼고 싶었다. 느끼함은 전혀 없고 고기의 탱탱함과 고소함만 지속적으로 남았다. 아내와 함께 감동의 눈빛을 교환하고 감탄사를 아낌없이 남발했다.
아내는 나의 식감보다 더 예민한 편인데 그녀의 입맛에 합격되는 곳은, 모든 것이 완벽한 곳이라 할 수 있다. 아내의 예민함의 한 예로 그녀는 식당에서 주는 컵과 물은 절대 마시지 않는다. 종이컵에 생수병을 주는 곳에서는 마시지만, 일반 컵과 식당 물통이 든 물은 손을 대지 않는 예민함을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그곳에서는 물을 마신다. 겨울에는 따듯한 물을 위해 보온병에 보리차가 담겨있고, 모든 식기가 한 작가분의 작품을 사용하고 있다. 음식에 대한 정성과 진심이 확실히 느껴지는 곳이라 아내의 예민함이 사그라든다.
육체를 가지고 있는 인간이
모든 행위를 포기하고
아무런 행위도 하지 않는다는 것은 불가능한다.
진정한 포기는
자기가 바라는 결과를 기대하는 마음,
곧 행위의 결과에 대한 집착을 포기하는 것이다.
행위의 결과를 기대하는 사람은
즐거움과 괴로움, 그리고 그 둘이 섞인
세 가지 열매를 번갈아 맛본다.
그러나 행위의 결과에 대한 집착을 포기한 사람은
행위나 행위의 결과에 얽매이지 않고
초월적 자유를 누린다.바가바드 기타, 포기와 자유
깊은 감동을 느끼고 계산할 때 장인께 여쭈었다.
"사장님 제가 실례되지 않는다면 한 가지 물어봐도 될까요?"
장인은 궁금함과 부드러운 표정으로 괜찮다고 하셨다.
그리고 나는 말했다.
"왜 돈가스를 다 튀기시고 튀김기에 5분 올려놓으시는 건가요? 기다리는게 싫어서가 아니라 정말 궁금해서 여쭙습니다."
장인은 이해한다는 표정과 어떻게 이런 사실을 설명하지? 하는 표정을 지으시며 천천히 부드러우면서도 단호한 목소리로 설명을 하셨다.
"저는 일본에서 돈가스를 배웠습니다. 사실 제대로 된 돈가스를 먹으려면 20분을 기다려야 합니다. 일본은 가능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에서는 20분을 기다려주는 문화가 없습니다. 제가 지리산 흑돼지를 선정해서 돈가스를 만드는데 흑돼지는 특유 냄새가 있습니다. 잡내를 없애려면 튀기는 시간이 필요해요. 물론 5분안에 높은 온도로 빠르게 튀기면 잡내가 제거되긴 합니다. 그런데 제가 맛을 위해서 튀김가루를 주문제작을 합니다. 그런데 주문한 튀김가루로 5분안에 빠르게 튀기면 겉이 타버립니다. 그럼 맛이 변질됩니다. 그걸 용납할 수 없어서 계속 연구한 결과, 10분 천천히 튀기고 튀김기에서 꺼내서 5분 예열하면 잡내도 제거할 수 있고 겉이 타지 않아서 맛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20분을 천천히 튀기면 완벽하지만, 아쉽지만 한국에서는 그럴 수 없습니다."
나는 감동을 받았다. 장인의 말씀에서 현실의 고단함이 잠시 느껴지긴 했지만 그의 눈빛에서 단단함과 고집스러움을 느꼈다. 자신의 생각을 완전히 굽힐 수 없다는 장인들의 공통적인 실존성이 느껴졌다. '아! 그래서 돈가스에서 장인의 시간이 느껴졌구나.' 하고 납득이 되었다.
그리고 나는 그의 팬이되어 버렸다. 그의 시간은 비단 돈가스만이 아니다. 전기 밥솥에서 편하게 할 수 있지만, 시간을 들여서 쌀을 미리 물에 담겨놓고 압력밥솥으로 밥을 한다. 시간을 들여서 고기를 다듬는다. 짜고 달게 만들면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겠지만 자신만의 생각을 굽히지 않고 적절한 맛을 유지하는 소바 소스를 고집한다. 그렇게 그의 오랜 시간은, 손님들에게 감동과 행복 그리고 건강함을 선사한다.
언젠가 재즈가 흐르다 클래식으로 바뀐 그곳에서 돈가스를 먹다가 떠올랐다.
'아! 이곳 장인의 돈가스는 클래식 필라테스 철학과 같구나.'
사람을 존중하고, 타인의 바디에 조화로움을 주기 위해 천천히 그리고 정교하게 공을 들여 세상에 내놓는다. 둘의 공통점은 고집스럽다. 타협하지 않는다. 잠시의 이익으로 동작의 변형, 음식의 변형을 선택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그들은 정점의 존중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참으로 행복한 사람임을 느꼈다. 세상 살면서 이러한 장인을 만날 수 있음에 감사함을 느꼈다.
토요일 아침 수업이 끝나고 아내화 함께 클래식 필라테스를 하고 장인의 돈가스를 먹으러 갔다. 그날은 클래식 필라테스의 가치와 돈가스의 가치가 동일함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날이었다. 오랜만에 찾은 나를, 찬란하게 반겨준 장인에게 깊은 감사함을 느겼다. 그리고 나의 시간과 노력을 존중해주는 필라테스 선생님들에게 깊은 감사함을 느꼈다. 이날의 행복을 잊을 수 없다. 감사하다. 진심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