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의 말, 어른의 말.
그는 꿈을 잃어버렸다.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으나 어른들은 못마땅해했다. "속이 보이는 보아뱀이나 안 보이는 보아뱀의 그림 따위는 집어치우고, 차라리 지리나 역사, 산수, 문법에 재미를 붙여보라고 충고했다." 이런 연유로 그는 "여섯 살 때 화가라는 멋있는 직업을 포기했다." 정성들여 그린 그림이 아무 것도 아닌 게 되니 그만 기가 죽었다. "어른들은 자기들 혼자서는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었다.
꿈을 포기한 그는 "비행기 조종을 배웠다." 세계의 여러 곳을 날아다녔고, 여러가지를 보고 들었다. "수많은 진지한 사람들과 수많은 접촉을 했다. 오랫동안 어른들과 함께 살며 그들을 아주 가까이서 보아 왔다." 그들을 오래 봤다고 해서 그들에 대한 의견이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다." 그래도 조금은 달라졌다. 어른들이 그렇게 된 이유를 조금씩 이해했다. 어른들이 그렇게 말하는 까닭을 조금씩 생각해 볼 수 있었다.
그 무렵에 어린 왕자를 만났다. 그 역시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고 이것저것 물어보는 걸 좋아했다. 반면에 말을 귀담아듣는 건 그리 잘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꼬마 아이 어린 왕자는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여러 사람을 만났다고했다. 왕을 만났고 허영쟁이, 술꾼, 사업가, 가로등 켜는 사람, 지리학자, 전철수, 알약파는 사람을 만났다. 모두 자기만의 세계가 뚜렷한 사람들이었다. 말을 귀담아듣는 걸 잘 배우지 못한 어른들이었다.
어린 왕자는 여우와 뱀도 만났다고했다. 그들의 집은 모두 사막이었다. 사막은 사람이 드문 곳이다. 사람이 드무니 말도 드문 곳이다. 세상과 인생을 통째로 반성하기 좋은 곳이다. 여우는 책임을 말했다. 길들이는 건 관계를 맺는 것이고, 관계를 맺으려면 인내가 필요하다고 했다. 참고 또 참는 게 책임이었다. 뱀은 여백을 남겼다. 말이 없는 관계를 빚어냈다. 스르르 와서 한번 보고가는 게 그가 겨우 할 수 있는 것이었다.
<어린 왕자>는 생텍쥐페리의 이야기다. 생텍쥐페리가 어린 왕자이며, 생텍쥐페리가 만난 사람이 어린 왕자가 만난 사람이다. <어린 왕자>는 레옹 베르트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생텍쥐페리는 이 책을 레옹 베르트에게 바친다. 레옹 베르트는 "모든 것을, 어린이들을 위해 쓴 책까지도 이해할 줄" 아는 어른이었다. 이 어린이들을 이해하는 어른은, 이제 "굶주리며 추위에 떨고 있다." 어린이는 이해했지만 세상은 헤아리지 못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