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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율의 독서 Jan 25. 2022

<내가 살던 용산>, <떠날 수 없는 사람들>.

용산참사가 잊혀지는 이유.  

용산참사를 기억하는 몇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참사 당시 서울지방경찰청장의 이름과 이력을 짚어보는 일이다. 이름은 김석기, 참사 이후 이력은 꽤 길다. 한국자유총연맹 부총재, 주오사카 총영사관 총영사, 한국공항공사 사장, 제20대 국회의원, 제21대 국회의원. 지역구는 경상북도 경주시, 당적은 국민의힘. 2009년 1월 20일, 경찰은 남일당 건물 옥상 망루에 물대포를 쐈고 특공대를 투입했다. 화재가 발생했고 6명이 사망했다.  


용산참사를 기억하는 두 번째 방법은 당시 서울시장의 이름을 불러보고, 그가 이 사건에 대해 어떤 말을 했는지 들어보는 일이다. 그 이름은 오세훈, 2021년 4월 7일 재보궐선거에 당선돼 10년 만에 다시 서울시장이 됐다. 2021년 3월 31일 관훈토론회에서, 서울시장 후보 오세훈은 용산참사를 이렇게 정의했다. "용산참사는, 과도한 그리고 부주의한 폭력 행위를 진압하기 위한 경찰력 투입으로부터 생겼던 사건입니다."


용산참사를 기억하는  번째 방법은 당시 망루에 올라간 이들을 규정한 언론매체의 표현을 읽어보는 일이다. 조선일보는 이렇게 썼다. "겁없는 좌파세력들 , 용산 불행 이용해 '촛불 재판再版 꿈꾸나'". 중앙일보 시론 제목은 이렇다. "불법 폭력은 국가에 대한 도전". 동아일보는 사설 제목을 이렇게 썼다. "'시민단체' 간판 걸고 시민 모독하는 폭력집단". 이후 철거민 자녀들은 동급생에게 '니네 아빠 테러리스트' 라는 말을 들어야했다.      


용산참사를 기억하는 네 번째 방법은, 갈 데 없는 임차인들을 대하는 국가기구의 행동들을 눈여겨 보는 일이다. 우선 계고장을 날린다. 시행사가 용역을 동원해 폭력을 행사해도 가만히 있는다. 임차인들의 말은 듣지 않는다. 땅을 가진 사람들로 구성된 조합의 말만 듣는다. 용역을 다시 동원해 집을 강제로 철거한다. 시공사는 재개발을 명목으로 건물을 올리고 이익을 나눠가진다. 언론사 간부들에게 보도지침을 내린다.  


용산참사를 기억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위 4가지만 반복하고 돌아서서 나몰라라 하는 것이다. 적당히 사회에 관심가지고 적당히 비판적인 목소리를 낸 후 돌아서서 우리 집값이 얼마나 올랐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내가 그렇다. 용산참사 13주기를 맞아 <내가 살던 용산>, <떠날 수 없는 사람들>을 읽고나서, 나는 집 근처 GTX 역은 언제 들어서는지 대학병원은 언제 착공되고 언제 완공되는지 찾아봤다. 개발이익 앞에서 한 치도 나아가지 못한 것이다.


그래서 용산참사는 점점 잊혀지고 개발지상주의는 계속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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