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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율의 독서 Dec 27. 2021

강원국, <강원국의 글쓰기>.

나를 위한 일이란 무엇인가.

내가 <대통령의 글쓰기>를 산 건 2014년 2월 25일이었다. 말을 잘 하고 싶었고 글을 잘 쓰고 싶었다. 책이 도착하고 이틀 만에 읽었다. 재밌었다. 저자가 책에서 소개한 제임스 C. 흄즈의 <링컨처럼 서서 처칠처럼 말하라>를 이어서 읽었다. 흥분됐다. 두 달 뒤에는 윤태영의 <기록>을 읽었다. 역시 유익했다. 그해 말 방송국에 들어갔다. 업계에서는 비주류였지만 당당하게 일했다. 공영방송이 외면하던 현장을 찾아다녔다. 세월호를 취재했고, 국회 필리버스터를 생중계하며 밤새 시청자들과 채팅을 했고, 촛불현장을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했다. 좋아했던 대통령이 당선됐고, 세 달 뒤에 방송국을 나왔다.


<강원국의 글쓰기>를 산 건 2018년 6월 20일이었다. 암담했지만 일단 사서 책장에 꽂아뒀다. 일 자체가 많았고 일이 끝나면 자기 바빴다. 책을 다루는 회사였지만 책을 읽을 수 없는 회사였다. 업계에서는 주류였지만 겨우겨우 일했다. 무엇보다 희망이 없었다. 대표의 기분에 움직이는 조직이었고, 군대보다 경쟁이 심한 집단이었다. 오래 다닌 사람들은 말이 없었고, 새로 들어온 사람들은 머리를 비웠다. 떠나기 위해 책을 읽었다. 츠타야 서점을 설립한 마스다 무네아키를 읽었고, 이와나미 북센터를 경영한 시바타 신을 읽었다. 네 달동안 떠날 준비를 했고, 그만둔 뒤 계속 놀았다. 책장에 꽂아놨던 <강원국의 글쓰기>를 삼 년만에 읽었다.


<강원국의 글쓰기>는 글쓰기 책이 아니었다. 글쓰는 방법을 소개한 자신의 행복론 강의였다. 언제 행복했었고 또 언제 행복한 지 알려주는 성장소설이었다. 그는 <대통령의 글쓰기>를 쓸 때 행복했었다고 한다. 김대중, 노무현 "두 대통령으로부터 배운" 것을 "잊어버리기 전에 기록으로 남겨야겠다고 생각"하고 다니던 "출판사에 휴직원을 냈다." "하루에 200자 원고지 30장 이상씩 쓰는" 걸 목표로 쓰고 또 썼다. "책 속에, 기억 속에 파묻혀 사는 시간이 행복했다"고 한다. <대통령의 글쓰기>를 내고 나서 두 대통령의 말과 글을 기억하는 방송에서도 그는 정말 행복해보였다.


그는 자존감을 느낄 때, 인정받을 때, 성취할 때, 탐닉할 때, 축적했을 때, 호기심이 충만할 때, 알고 깨우쳤을 때, 성장할 때, 관계가 좋을 때, 마지막으로 꿈이 있을 때 행복할 수 있다고 한다. 한 날 그의 직장 상사가 그에게 무언가를 지시했다. 그는 하기 싫다고 했고, 놀란 상사가 방금 뭐라고 했냐고 물었다. 그가 답했다. "하기 싫다고요. 내가 하기 싫다고요." "오른쪽 눈 옆이 바르르" 떨렸고 경련이 일어났지만, 그는 50년 인생에서 처음 느껴보는 희열을 맛봤다. "그날 이후" 그는 자신을 "사랑하게" 됐고, 자신을 "위한 일을 하고" 싶었다. 그의 글을 썼고, <강원국의 글쓰기>를 썼다.


내가 <대통령의 글쓰기>를 읽은 지 만 7년이 지났다. 이 시간동안 절반은 하고 싶었던 일을 했고, 절반은 해야되는 일을 했다. 하고 싶었던 일을 했을 때는 늘 읽고 썼었다. 해야 되는 일을 했을 때는 읽지 못했고 쓰지 못했다. <강원국의 글쓰기>를 읽고 정말 오랜만에 희열을 느꼈다. 대학교 1학년 때 강의실 구석에서 황석영의 <오래된 정원>을 읽고 계단을 뛰어 내려갔던 그때의 심정이다. 고등학교 1학년 때 교실 구석에서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를 읽고 하늘을 멍하게 바라봤던 그때의 감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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