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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겨울 Oct 29. 2020

후회를 남기지 않는 것


2019년 12월 23-24일     


"볼리비아 포토시

인간이 세운 도시 중 하늘과 가장 가까이 닿아 있는 이곳은 풍부한 광물이라는 신의 축복으로 인해 착취와 억압의 세월을 견뎌야만 했다그것도 무려 200년이 넘는 세월을한때 스페인을 먹여 살렸던 땅으로 스페인 제국의 착취를 상징하는 도시세르반테스의 소설 [돈키호테]에도 예사롭지 않은 부유함으로 묘사되었던볼리비아의 포토시(Potosi)."

[세계에서 가장 크고 부유했던 도시 (열정의 대륙 남미 기행김남희)]     


모든 일은 지나고 나면 별거 아니다. 아타카마 이후로 여행 컨디션도 많이 좋아졌다. 적어도 움직이는 게 귀찮거나 괴롭지는 않다. 지금은 포토시. 해발고도 4,000미터가 넘어가는 엄청난 고산지대. 세상에서 가장 높은 도시. 숨도 안 쉬어진다.    

  

수크레로 왔다. 포토시 보다는 고도가 낮아서 견딜만 하다. 다들 그렇게 좋다는 이 도시 역시 내게는 그저 그렇다. 좋지도 그렇다고 싫지도 않다. 함께 하고 있는 마티아스와 토마스는 확실히 나와 맞지 않는다. 토마스는 담배를 달고 산다. 우유니부터 봐왔는데 그 높은 해발고도에서 담배를 끊임없이 피면서 숨쉬기 힘든 기색조차 안 보인다. 대단하다. 마티아스는 2박3일 투어부터 같이했다. 21살에 남미여행. 부럽다. 어쨌든 무언가를 공유하기가 힘든 사람들이다. 프리드링크 맥주 한 잔을 받고 하루를 대강 마무리했다.      


"24일" 크리스마스 이브다. 역시 별 감흥이 없다. 그냥 이런 기념일은 나를 더 낙담시킬 뿐이다. 마티아스가 가족들은 어떠냐고 묻는 바람에 생각이 더 많아졌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어떠한 이유로 이 길 위를 전전하는지 모르겠다만 나는 적어도 이 마음의 방황을 끝내야 했다. 나를 늘 괴롭히는 거와 부모님에 대한 용서가 필요했다. 크리스마스 이브 파티에서 숙소 주인의 따뜻함을 보고 나는 또 울었다. 숙소 주인은 독일인이었다. 여행중에 볼리비아의 한 여인을 만나 목표했던 마추픽추는 아직까지 못 갔지만 지금의 삶이 너무나도 행복하다며 이곳에서의 정착을 결심했다고 했다.      


베풀며 살아가는 게 쉽지 않음을 잘 안다. 손님의 머리수 보다 많은 볼리비아 가족들과 직원들을 챙기는 그의 모습이 내게는 참 따뜻하고 뭉클하게 다가왔다. 그 모습을 보고 참아왔던 눈물이 터져버린 거다. 아마도 가족에 대한 미안함 숙소에서 마주한 따뜻함 그리고 크리스마스가 이번 눈물의 이유겠지. 


엄마는 괴로운 마음에 아주 드물게 며칠씩 집을 떠나곤 했다. 그리 오래가지는 못했다. 아빠는 한결같았다. 한결같이 술을 마셨고 한결같이 기억을 잃었다. 그리고 한결같이 가족들을 괴롭혔다. 미안한 마음은커녕 죄책감이라곤 없는 사람처럼 말이다. 아마도 괴로운 감정을 술로 승화시키는 방법을 선택한 듯 싶었다. 오롯이 자기중심적인 방법이었다. 나는 매일 밤 지옥인 것만 같았다. 제발 이 기나긴 밤이 지나가길 바랄 뿐이었다. 지겹도록 반복되는 지독하게 어두운 이 밤들이 끝나기를 빌었다. 하루빨리 제천이라는 곳을 떠나고 싶었다. 하지만 때로는 아빠가 안타깝고 가여웠다. 분명히 인천에서 살았을 때까지만 해도 내 기억 속의 아빠는 좋은 사람이었다. 착한 사람이었고 다정한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한 여인을 만나 함께를 결심하고 아이를 낳고 뒤늦은 결혼식을 올리면서 점점 괴물로 변해갔다. 그 모든 이유를 잘 모르겠다. 그가 왜 이렇게 변한 건지 원래 그랬던 사람인 건지 그의 자격지심이 그를 점점 괴롭게 만든 건지.     


내가 추측할 수 있는 단 한 가지. 아빠는 상처로 가득 찬 사람이라는 것. 그는 어릴 적 사고로 오른손을 잃었다. 그때부터 사람들은 그의 손을 이상하게 쳐다봤을 거다. 그는 술에 잔뜩 취한 날마다 울었다. 아주 크고 시원하게 울었다. 주먹으로 가슴을 세게 치고 소리를 지르며 울었다. 그가 그럴때마다 그의 아픈날을 느낄 수 있었다. 그는 괴롭고 불행한 사람이었다. 과거에 대한 분노, 가족들에게 잘해주지 못하는 미안한 마음, 오른쪽 손에 대한 자격지심. 그는 과거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늘 과거에 얽매어 살았다. 과거로부터 괴롭힘을 당할때 마다 그는 술의 힘을 빌려 그 고단하고 괴로운 하루를 달랬다.     


그가 괴로운 만큼 그녀 역시 괴로웠을 거다. 초등학교, 중학교 하굣길에 집으로 돌아오면 주 중에 서너 번 정도 그녀는 부엌이랄 것도 없는 그 작은 공간에 앉아 동네 사람과 술상을 벌이고 있었다. 대낮부터 술에 취해 해 질 녘이 되면 몸을 가누기 힘든 정도가 되는 게 보통 그녀의 일상이었다. 깊은 잠에 든 그녀는 아무리 흔들어 깨우고 소리를 질러도 손가락 하나 꿈쩍하지 않았다. 그녀는 현실을 외면하고 싶어하는 사람 같았다. 그러면 나는 그 꼴이 보기 싫어 슬그머니 동생들을 데리고 나가거나 할머니 집에 숨어 있다가 집으로 돌아가곤 했다.     


그녀가 술에 취하는 날이 잦아지면서 얼마 지나지 않아 흡연도 함께 시작했던 걸로 기억한다. 그녀가 담배를 태우는 그 모습이 나에게는 몹시 충격적이었다. 두어 번 제발 담배를 태우지 말라고 부탁했지만 알겠다는 건 한순간이었고 그녀는 습관적으로 흡연을  시작했다. 그러면서 그녀도 모르는 사이에 그녀의 몸은 서서히 망가져 가기 시작했다.     


부모님과 함께였을 때 나는 너무 어렸다. 그들의 삶을 책임질 수도 나의 삶을 책임질 수도 없었다. 그래서 그 당시는 그 모든 상황들이 너무나도 두렵고 무서웠다. 매일 밤 지속되는 그 악몽들이 끝나기만을 바라면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나 자신에게 후회를 남기지 않는 거라 생각했다. 그저 미래에 대한 선택지를 넓힐 수 있는 것 만이 나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이라 판단했다. 그들이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지 모르니 늘 집에 늦게 들어가려 노력했다. 도서관의 문이 닫힐 때까지 집에 돌아가지 않았다. 하루라도 그렇게 해서 그들이 괴로워하는 모습을 마주하지 않고 싶었다. 도서관에 있는 시간은 행복하고 편한 시간이었다. 어쩌면 일종의 외면이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들의 모든 삶을 돌보고 매일 괴로워하기엔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한정적이었고 내 정신상태는 그다지 건강하지 못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만 이렇게 열심히 살자고 다짐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적어도 그들의 곁을 멀리 떠나서 살 수 있을 테니까.     


바람대로 고등학교 졸업 후 그들의 곁을 떠났다. 모든 짐을 인천으로 보냈다. 그곳에는 나를 받아주는 고모가 있었다. 너무나도 행복했다. 지긋지긋한 시골을 떠나 산다는 것과 그들의 삶을 더 이상 마주하지 않아도 돼서 행복했다. 하지만 멀리 떨어져 있어도 아빠는 밤마다 술에 취해 전화를 걸었다. 어느 순간 그 전화를 거절할 용기가 생겼다. 그리고 몇 차례 그 전화를 거절하다 보니 그는 더 이상 내게 전화를 걸지 않았다. 그렇게 점점 멀어졌다.     

한 해 두 해 시간이 흐를수록 가족들과 연락하는 일이 줄어들면서 ‘나’다운 삶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그들에 대한 걱정이 줄어들수록 그들을 용서할 용기 역시 조금씩 생겨났다. 하지만 온전한 받아들임과 용서는 여전히 어려운 일이었다. 고향을 찾아가면 할머니 얼굴을 보는 건 쉬웠지만 가족들의 얼굴을 보는 건 내게 너무나도 어려운 일이었다. 매년 명절 고향을 찾아가면 그들은 어김없이 술에 절어 있는 모습을 보여줬다.     

할머니 집에 있던 어느 날 둘째 삼촌(아빠의 형)과 엄마가 찾아왔다. 작은 상을 펴 제사 음식을 안주 삼아 둘은 술 한잔하기로 했다. 우리 가족은 어느순간부터 제사를 지내지 않았다. 추석날, 제사상 대신 벌어진 상이었다. 엄마와 둘째 삼촌은 한창 대화를 이어나갔다. 둘째 삼촌은 엄마가 대단하다고 말했다. 맞다. 그녀는 대단한 사람이다.     


"제수씨는 어떻게 그렇게 살아요."     


자식 셋을 낳고 아빠같은 사람과 어떻게 그렇게 살아가냐는 말이었다.     


“애는 생겼는데 이것들을 어떻게 지워요. 이번에는 나아지겠지 싶으면 또 그러고 그러다가 또 덜컥 애가 생기고 이 애 낳으면 정신 차리겠지 싶었는데 결국은 또 그러고 그래도 어떻게 해요. 내가 낳은 자식들인데. 그냥 그렇게 살게 되는 거지”     


그동안 내 눈에 비쳤던 그녀는 주어진 삶을 마지못해 살아가는 한 여인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나의 생각은 그저 색안경에 불과했다는 걸 증명하는 순간이었다. 나는 그동안 그녀를 무책임한 사람으로만 생각하고 있었던 거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엄마로서의 책임감 그리고 자식과 남편에 대한 사랑이 있었다. 그 이후로 나는 그들의 삶에 대한 생각을 멈추기로 했다. 내가 마음 써서 풀릴 일이 있고 내가 마음 써도 해결되지 않을 일이 있다는 걸 그제서야 깨달은 거다. 그들의 삶을 그렇게 내버려 두기로 했다. 내가 걱정하고 울고불고 그렇게 살지 말라고 백날 천날 매달려도 그들의 삶은 변하지 않을 거니까. 

    

나의 힘으로 되지 않을 일에 대해 애쓰는 것만큼 미련하고 바보 같은 짓은 없다. 그들이 결심한 삶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더 이상 나의 마음을 괴롭히지 않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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