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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겨울 Oct 29. 2020

괴롭고 가슴 아픈 그런 사랑


2019년 12월 10일     


입던 옷들이 지겨워졌다. 예쁜 옷을 한 벌 사고 싶었는데 결국은 나시티 하나로 끝냈다. 그래도 맘에 든다. 이 나시티를 입을 수 있는 곳에서 오래 여행하고 싶다. 여름이 좋다. 나는 나 자체로 충분히 가치있고 예쁜 사람인데 정말 아직 너무 젊은데 살아갈 용기가 아직은 충분하지가 않다. 왜그럴까. 올해는 고독한 해였다. 3월에 남미여행을 결심하고 미국으로 떠났지만 결국 다시 돌아갔다. 나 어떻게 살아야 행복할 수 있을까. 자신이 없다.


내가 노력해도 될 수 없는 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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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얼핏 듣기로 그녀의 집안은 꽤 괜찮은 집안이라고 들었다. 어렸을 적 외할머니의 시골집에서 잠시 지냈었는데 외할머니는 정말 젠틀하고 차분하신 분이셨다. 그 집에는 나름의 넓은 마당이 있었고 큰 감나무도 한 그루 있었다. 외할머니는 앓고 있는 당뇨병 때문에 하루마다 주사를 맞고 앞이 잘 보이지 않으셨지만 그녀는 그녀의 상황을 온전하게 받아들이는 듯 아무런 괴로움도 없어 보였다. 그녀는 참 차분했다. 외할머니의 딸인 엄마와 그녀가 낳지 않은 딸인 나 그리고 집안에서 반대했던 남자와 함께해서 세상에 태어난 동생을 편견없이 바라보고 챙겨주던 사람이 외할머니였다. 그녀는 참 따뜻한 사람이었다.     


새엄마는 사 남매 중 막내였고 아빠의 형제들과는 달리 서로 간 사이가 좋아 보였다. 외가댁에 가면 그 누구도 나와 내 동생들을 눈치 주거나 불편하게 만들지 않았다. 그런데 나를 바라보는 눈빛이 조금은 안쓰러웠던 걸로 기억한다. 그녀의 가족들은 내가 아빠의 자식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들은 나를 미워하지 않았다. 그저 안타까운 시선으로 나와 그녀를 바라볼 뿐이었다. 처음 그녀의 집안은 아빠와의 동거를 원치 않았다고 했다. 하지만 그녀는 임신을 해버렸고 그 배 안의 자식을 지우지 못하고 낳기로 결심했다. 벌어진 상황과 마음이 모든 걸 버리고 고향의 품으로 돌아가기엔 역부족이었던 거다.     


나는 그녀에게 부탁했다. 제발 넷째는 낳지 말아 달라고 그리고 다시 집을 나가 달라고 나 같으면 절대 이런 남편과 살지 않을 거라고 말했다. 그런데 그건 ‘나’같으면 이었다. 그녀는 내가 아니었다. 그녀는 이미 한 명의 의붓딸과 두 아이를 낳은 엄마이자 아내였다. 나의 예상과는 다르게 엄마는 아빠를 지독하리만큼 사랑했고 자식을 지켜야겠다는 책임감이 있었던 것 같다. 나는 정말 그녀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녀로 인해 ‘나’마저 괴로워지는 이 상황들이 싫었다. 하지만 그녀를 미워하고 그 상황들은 괴로웠어도 나의 동생들은 단 한순간도 미워하거나 원망한 적이 없었다. 동생들이 아빠에게 혼나는 날이면 나는 마음이 쓰라렸고 때로는 동생을 혼내는 아빠를 째려보다가 도리어 내가 혼이 난 적도 몇 차례 있었다. 그녀도 아마 나와 같은 마음이었나 보다. 자식들을 지켜야 한다는 마음으로 나보다 더 큰 책임감과 사랑으로 제천을 떠나지 못했던 거다. 자식들이 있고 미워도 사랑하는 남편 곁을 떠날 수가 없었던 거다. 나를 두고 떠난 나의 친엄마와는 다르게 그녀는 그래도 자식과 가정을 지키는 책임감 있는 멋진 여성이었다.     


내가 노력해도 될 수 없는 일. 즉, 불가항력이라는 걸 깨달은 이후로 그녀를 설득시키고 그녀 앞에서 울며불며 제발 집을 나가라는 말로 마음 쓰는 일은 그만두기로 했다. 그녀가 아파하는 모습은 보고 싶지 않았지만 그녀가 선택한 삶이었다. 고작 자식 한 명이 그들의 사랑과 운명을 갈라 놓을 수는 없는 것이었다. 그걸 고등학생이 되어갈 때 즈음 깨달았다. 그리고 그저 나의 길만 생각하자고 다짐했다. 그들로 인해서 내 길이 엉망이 되었다는 그런 핑계는 대고 싶지 않았으니까. 그리고 그 엉망이 된 삶을 책임져 줄 사람도 없을 테니까. 그때 어렴풋이 다짐했다. 절대 ‘아빠’와 같은 남자는 만나지 않을 거라고. 그래서 20살이 되어서도 사회에 나가서도 술을 좋아하는 사람들만 보면 엄청난 거부감이 들었다. 지금은 아니지만 남자라는 사람 자체에 대한 두려움과 거부감이 크게 자리 잡혀 있었다.     


10대를 지나 20대가 되었을 때 깨달았다. 사랑과 책임감 하나만으로 그녀는 그곳을 떠나지 못한 것이라는 것을. 아빠와 엄마의 싸움에 '지지고 볶고'라는 표현은 가당치 않았다. 아빠는 술만 취하면 죽일 듯 가족들을 괴롭혔으니까. 매일같이 괴로운 밤을 맞이하면서도 다음날이 되면 아무렇지 않게 그를 위한 아침밥을 차려주고 그가 집에 도착하기 전 음식을 하면 항상 그가 먹을 양은 남겨 놓는 그녀를 보며 그건 사랑 없이 불가능하다는 걸 깨달았다. 감히 자식 따위가 그들의 사랑을 갈라놓을 수가 없었던 거다. 그런데 그들의 사랑은 조금 괴롭고 가슴 아픈 그런 사랑이었던 것 같다.     


어쨌든 그녀는 그곳에서 그와의 삶을 선택했고, 고등학교 졸업 이후 중과도 같았던 나는 집이라는 절을 떠나서 사는 삶을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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