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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겨울 Oct 29. 2020

차라리 잘 된 일

나는 진심으로 그녀가 불행하지 않기를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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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5학년 때쯤이었을까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니 엄마는 온데간데없었다. 그녀가 집을 나간 거다. 이유는 순전히 아빠 때문이었다. 전혀 당황스럽지 않았다. 그녀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아빠는 술만 마시면 제정신이 아니었다. 술을 마시지 않은 아빠는 괜찮은 사람이었지만 그의 하루에서 술은 절대 제외될 수 없는 사항이었다. 술 때문에 그는 늘 괜찮은 사람이 아니었다. 365일 중 300일을 술과 함께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종종 나와 동생들을 부엌에 앉혀놓고는 모든 부부 싸움의 원인이 ‘나’때문이라고 말했다. '모든 게 내 잘못'이라는 말 한마디는 나의 모든 자존감을 갉아먹었다. 외상은 시간이 지나면 고통이 잊히고 흉터가 아문다지만 가슴에 새겨진 상처는 치유하기까지 꽤나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것을 그는 분명 알았을 거다. 그는 그 사실을 모를 리가 없었다. 그에게는 나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아픔의 상처가 있었으니까. 그래서 그는 모든 과거의 고통을 하루마다 술로 잊었다. 술을 마신 그는 감성과 분노만 존재하는 사람이었다. 가족 말고는 그는 분노를 표출할 대상이 몇 없었다. 그래서 그 대상은 늘 가족이었다. 아빠는 참 비겁하고 용기 없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아빠가 끔찍하게도 싫었다.     


그녀가 집을 나간 후 나는 하나님께 빌었다. 제발 그녀가 이곳, 제천, 아빠의 곁으로 돌아오지 말게 해 달라고. 아빠가 제아무리 잘못했다 용서를 빌어서 엄마가 돌아온다 한들 하루 이틀이면 몰라도 아빠는 절대 달라질 사람이 아니었다. 나는 예감할 수 있었다. 달라질 게 분명히 없을 거라는 것을. 아빠의 행동도, 집안의 상황도, 나도. 그래서 그녀가 돌아오지 않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들이 함께한 시간 속에서는 분명히 행복한 날들도 많았겠지만 그중에서는 악몽 같은 날들이 분명 적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엄마는 떠났을 것이라 짐작했다. 차라리 잘 된 일이었다.     


역시나 그렇듯 아빠의 만행은 나아지지 않았다. 어느 날은 내가 깊은 잠에 들어 아빠가 집에 들어온 것을 인지하지 못했었다. 당시 대부분의 날들은 불안한 마음으로 아빠가 집에 오기까지는 잠이 깨어있지만 그날은 아니었다. 잠결에 인지한 상황으로는 아빠는 내 옆에 누웠고 계속 119를 불러달라고 했었다. 그 상황에서의 나는 자는 체 연기를 하고 있던 게 아니었다. 그런데 아차 하는 순간 그의 손이 내 뺨따귀를 내리쳤다. 그가 죽을 듯이 아픈데 나는 119에 신고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의 전부였다. 그 시간들이 정말 무서웠었다. 곰인형을 사주고 월미도에 데려가던 아빠는 온데간데없었다. 어느 순간 괴물같이 변해버린 아빠만이 내 앞에 존재하고 있을 뿐이었다.     

다음날 거울을 보니 오른쪽 눈에 시퍼렇게 멍이 들어있었다. 그리고 그 일이 있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살아서 뭐 하겠느냐고 아파트 6층 베란다 난관에 서서 죽겠다고 소동을 벌였다. 나는 울며불며 그의 옷자락을 붙잡았다. 본능적으로 그를 붙잡았다. 속내의 일부는 힘을 실어 그를 밀어내고 싶었다. 하지만 그러면 안 된다는 걸 너무나도 잘 알았기에 아빠를 더 꽉 붙잡았다. 어린 내가 힘을 주고 붙잡기에 그는 너무 무거웠다. 그는 떨어지지 않았다. 그러고는 한참을 울다가 잠에 들었다. 그의 삶은 얼마나 괴로웠던 걸까. 그런 일이 있은 후 다음날 아침에는 늘 그렇듯 일찌감치 일어나 어젯밤 무슨 일이라도 있었냐는 듯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혹은 조금은 머쓱한 표정으로 재빨리 집을 나섰다. 그는 분명 그가 한 모든 행동들을 기억했을 거다. 그리고 그는 괴로웠을 거다. 그가 괴로웠던 만큼 가족을 괴롭혔던 거다. 어쨌든 아빠라는 존재는 더 이상 좋은 의미의 아빠가 아니었다.     


그가 가족들을 괴롭히는 방식은 때로는 정말 잔인했다. 우리의 집은 11평 남짓한 영세민 아파트였다. 작은방 한 개와 작은 주방과 연결된 거실 겸 큰 방이 전부였다. 작은방에서 나를 괴롭힐 때 그는 늘 방의 문을 잠갔고 내가 나갈 수 없도록 문 앞에 앉았다. 나는 너무 무서워 가시나무 떨듯 벌벌 떨었다. 아빠의 손찌검도 두려웠고 그 공간 안에 갇혀 있다는 것 자체도 너무나도 끔찍했다. 손찌검이 두려워 그가 하는 말이 모두 옳다고 대답해야만 했다. 그렇지 않으면 나를 붙잡고 몇 시간 동안 괴롭힐 테니까. 상황을 빨리 종료시키는 방법은 옳든 그르든 그의 말이 옳다고 무조건 수긍하는 거였다. 조금이라도 아니라고 말하면 그는 소리를 지르며 나를 다시 괴롭힐 테니.     

한 번은 그 혼자 화를 내다가 잠든 적이 있는데 새엄마가 나를 데리고 떠나지 않았다는 이유였다. 나를 진정한 자식으로 여기지 않으니까 나를 데려가지 않았다는 게 그의 판단이었다. 세상에 어느 새엄마가 의붓딸을 데리고 도망갈까. 그런 사람은 없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현명한 사람이었기에 나를 두고 간 거다. 자신이 사랑했던 여인을 그리고 다시 사랑할지도 모르는 여인을 이렇게 욕하는 아빠가 참 못나 보였다. 나까지 데리고 갔으면 무슨 상황이 벌어질지 물 보듯 뻔했다. 그래서 그녀는 나를 데리고 가지 않은 거였다. 혹여나 그녀가 나를 데리고 가겠다고 했다 한들 나 역시 따라가지 않았을 거다. 그녀가 나를 친자식처럼 생각하든 말든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당시 나에게서 가장 중요한 건 그녀가 영원히 아빠의 곁을 떠나는 일이었다. 그리고 내 눈앞에 영원히 나타나지 않는 일이었다. 나는 진심으로 그녀가 불행하지 않기를 바랐다.     

밤마다 반복되는 악몽 같은 나날들을 보내면서도 그녀가 돌아오지 않은 것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그런 안도가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는 제천으로 돌아왔다. 마음으로 하나님께 간절하게 드렸던 기도와는 다르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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