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겨울 Oct 29. 2020

금발의 여인


2019년 11월 27일      


플라야 델 카르멘에서 멕시코시티로 이동. 시간이 참 빠르다. 18일에 이곳에 도착해서 도시한곳을 옮기고 멕시코 시티로 향하는 날이다. 삶에서 중요한 게 뭘까. 내가 돈을 갖고 명예를 가지면 행복할까.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사람을 만나야 좋은 삶일까. 칸쿤 호스텔에서 만난 한 언니가 말했다. 성공도 돈도 다 좋지만 남자 잘 만나서 시집 잘 가는 게 최고라고. 이렇게 감성적인 나도 언젠간 그렇게 말해준 언니처럼 생각이 바뀔까. 남자 잘 만나서 시집 잘 가는 게 행복할 수 있는 일이라면 그렇게 흘러가도 좋을 거 같다. 좋은 사람 만나서 잘 사는 게 나쁜 말은 아니니까. 정말 행복하게 잘 살고 싶다. 아빠가 엄마를 어떻게 만났는지 어떤 달콤한 추억들이 그들을 함께하게 만들었는지 차라리 사랑하지 않은 사람과 선을 보고 결혼한 고모의 삶이 더 행복한 것처럼. 삶은, 인생은 정말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거 같다.


인천에서의 삶이 익숙해지고 그곳에서의 삶에 대한 의문증이 저물어 갈 때 즈음 연락 한 통 없던 아빠가 금발의 여인과 함께 인천에 올라왔다. 아빠는 내게 그 여인을 ‘엄마’라고 부르라고 말했다. 보통 새엄마의 존재는 이렇게 사전 연락 없이 불쑥 튀어나오는 건가. 아빠는 그녀에 대한 아무 설명도 해주지 않았던 걸로 기억한다. 그들이 어떻게 만났는지, 그녀의 이름은 무엇인 지, 그들이 어떤 각오로 나를 찾아왔는지, 그녀는 정말 나의 엄마가 될 준비가 되었는지 이런 설명 따위 없이 그냥 '엄마'가 될 사람이라고만 말했다. 그녀는 예뻤다. 늘씬한 몸매와 서구적인 외모를 가진 여자였다. 그때는 내가 너무 어렸기에 그들이 어떻게 만나게 되었는지 그런 구체적인 것들에 대해 궁금하지 않았던 거 같다. 그저 엄마라는 존재가 다시 생겼다는 것 그게 그녀를 마주한 날 든 생각의 전부였다.     

 

나를 낳아준 엄마와 나를 키워준 고모라는 이름의 엄마 그리고 갑자기 나타난 엄마. 세 번째 엄마를 만나게 되는 순간의 기분이란.     


나는 혼란스러웠다. 그리고 당황스러웠다. 내게 '엄마'는 단어의 존재만으로도 어색함 그 자체였다. 아무리 엄마 같은 고모라도 고모를 엄마라고 불러본 적 단 한 번도 없는 나였다. '엄마'라는 단어를 언제 입 밖으로 내뱉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그런데 엄마라니. 이건 갑작스러워도 너무 갑작스러웠다. 연애 소식 한 통 없던 아들이 몇 년 만에 나타나 '저희 결혼하겠습니다.' 라고 말하는 것만큼이나 당황스러운 일이었다. 아니 더 당황스러운 일이었다.     


"ㅇ..엄..ㅁ...아줌마"


그녀를 엄마라고 부르기 위해 애써 보았지만 내 입에서 튀어나오는 단어는 ‘아줌마’ 뿐이었다. 뇌와 혓바닥은 엄마라고 부를 준비가 되어 있었다. '엄마'라는 단어는 혓바닥 끝까지 닿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를 부르기 위해 입을 벌려보면 막상 튀어나오는 단어는 '아줌마' 뿐이었다. 마음은 아는 것 같았다. 그녀를 엄마라고 부를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것을. 그래서 처음에는 그녀를 ‘아줌마’라고 불렀다. 그녀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거나 아빠를 미워하고자 하는 의도는 아니었다. 단지 갑작스럽게 나타난 그녀의 존재를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을 뿐이었다. 그녀에 대한 아무런 감정이 없었다. 인공지능 스피커보다 없었다. '좋다. 싫다. 마음에 든다. 안 든다. 함께 살고 싶다. 아니다' 그런 생각조차 없었다. 하지만 그녀를 인천까지 데리고 온 아빠를 위해서 어색하지만 그리고 낯설지만 조금씩 용기를 내어 그녀를 '아줌마' 대신 ‘새엄마’라고 불러 보았다.     


그녀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나는 그녀에게 갑자기 생겨버린 딸이었다. 그녀에게 '딸'은 나에게 '엄마'만큼이나 어색하고 낯선 존재였을 거다. 그녀는 정말 나를 딸로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어서 나를 찾아온 걸까. 아니면 아빠를 너무 사랑해서 나를 딸로 인정해야 한다는 그 사실에만 동의를 했던 걸까. 그녀는 진정 아빠를 사랑해서 나를 딸로 받아들이기로 결심한 걸까. 그들의 사랑은 서로에 대한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을 만큼의 사랑이었을까. 그들의 사랑은 어떤 사랑이었을까.     


아빠는 분명 잘난 사람이 아니었다. 키도 크지 않았고 잘생기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돈이 많은 것도 아니었다. 또한 아빠는 오른쪽 손에 장애가 있었기에 남들과는 조금 다른 모습의 손을 가지고 있었다. 이것은 가끔 아빠의 자격지심을 돋우었고 그를 괴로운 상황에 처하게 만들었다. 한 술 더 하자면 그의 몸에는 아주 많은 문신들도 있었다. 그는 안 좋게 판단되기 딱 좋은 사람이었다. 대한민국 영화나 드라마에 나오는 그런 일반적인 아빠의 모습과는 조금 아니 어쩌면 많이 다른 모습의 아빠였다.  

   

새엄마와 아빠가 찾아온 날 그들은 나를 월미도로 데려갔다. 유람선도 태워주고 놀이기구도 태워줬다. 모든 게 어색했지만 보호자가 고모와 고모부가 아닌 엄마와 아빠라는 그 자체의 느낌이 좋았다. 그날 밤은 고모네 집이 아닌 어느 여관방에서 하루를 보냈다. 영화 아가씨에서 숙희가 히데코의 몸을 살며시 어루만지며 씻겨주는 장면처럼 그녀는 처음 보는 나의 몸을 정성스럽고 차분하게 씻겨주었다. 그녀를 처음 보는 그 순간부터 유람선을 타고 함께하며 씻김 받고 다음 날 아침 눈을 뜨는 그 순간까지 그날의 모든 상황들이 너무나도 낯설었다.   

   

월미도에서의 하룻밤을 보낸 후 그녀와 아빠는 나를 다시 고모네 집으로 데려다주었다. 다시 나는 고모와 고모부가 보호자인 원래의 일상으로 돌아왔다. 나에게는 고모 집이, 인천이, 가좌동의 대원 빌라가 나의 일상이었다. 고모와 고모부가 부모님이었고 친척 동생이 내 동생이었다. 나는 보통 친구들과 조금 다른 환경을 가졌을 뿐 남들과 다를 거 없는 일상을 살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아빠가 인천에 다녀간 후로 왠지 나의 일상이 조금 달라질 거란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이전 02화 고모라는 이름의 엄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