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나에게 월급이라는 단어는 그리 익숙한 단어는 아니었다. 어렸을 때 부모님은 직장인과는 거리가 있는 분들이었고, 국민연금이니, 연봉협상이니, 퇴직금과 같은 단어는 먼 나라 이야기였다. 엄마에게는 학생 수 X 한 달 수강료가 곧 월급이었고, 아버지에게는 한 달에 판 그림 개수 X단가가 곧 월급이었기 때문에 월말에 급여명세서를 받는 다른 사람들과는 조금은 다른 월말을 봐왔다.
주말이나 방학때면 하루도 빠짐없이 물류창고를 나가야했다.
여태껏 살면서 200만 원가량의 큰돈을 내 통장에 갖고 있었던 적은 거의 없었다. 예외적으로 햇살론 대출로 200만 원 300만 원씩 빌리거나 혹은 한국장학재단에서 생활비 대출로 200만 원씩 빌린 것을 제외하면 내 통장에 두둑한 돈이 쌓여있던 적은 없었다. 대부분 주말에 쿠팡 물류센터에 나가서 매주 수요일마다 받는 14만 원 남짓한 돈이 내 통장의 전액인 경우가 허다했다. 그마저도 큰돈이라고 느끼며 허영심에 가득 차 7000원짜리 부리또 세트를 먹으며 행복해했고 조금은 넉넉해졌다고 자기 위안하곤 했다. 그마저도 찰나였다. 어느 순간 다가오는 월세 내는 날과 각종 공과금 납부의 순간이 다가올 때마다 자비 없이 내 통장에서 1원까지 쓸어가고 나면 통장잔고는 0원이었다. 그때마다 살기 위해 전투적으로 물류창고를 나가야 했고 어느 순간에는 삶의 와류에 떠밀려 삶을 살아가는 의지조차 상실해갔다. 이렇게 열심히 사는데도 여전히 척박하고 숨 쉴 틈조차 주어지지 않는 상황을 보면서 게임처럼 '삭제-새 캐릭터 생성하기' 버튼이 생각나곤 했다.
첫 월급명세서를 받고나서 정말 형언하기 힘든 감정이 밀려왔다.
그래서 결국 나의 신용을 담보로 은행에서 대출받는 것을 선택하게 됐다. 사실 선택이라는 단어보다 강제라는 단어가 더 어울릴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굶어 죽게 생겼는데 어쩌겠는가. 어렸을 때 알고 있던 대출의 개념은 그저 막연했다. 왠지 조폭이 빠따라도 들고 집 앞에서 돈 갚으라고 독촉할 것 같은 이미지 거나 남의 돈을 빌린다는 것에서 다소 거부감이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현실은 일주일 만에 재학증명서와 가족관계 증명서만으로도 거금이 들어오는, 의외로 만만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들어온 약 200만 원 남짓한 돈은 거진 6개월에 걸쳐 야금야금 월세와 공과금 납부에 사용됐고 아르바이트로 생활비를 충당하며 살았다. 그렇게 약 1년 반을 빚으로 연명했고 2학년이 끝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산업체에 산업기능요원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3월 중순부터 저녁시간, 주말 여가시간까지 깡그리 회사에 갖다 바친 결과, 빚이 아닌 순전히 내 돈 210만 원이 들어왔다. 첫 월급. 다소 아까운 국민연금을 비롯한 세금을 제하고 나온 210만 원. 이번 달 생활비 40만 원을 생활비 통장에 넣고 남은 돈을 들고 엄마 선물을 사러 갔다.
엄마는 15만 원 상당의 남들이 쓰는 핸드백보다 싸다면 훨씬 싼 핸드백을 들면서 혹여나 아들이 부담스러워하지 않을까 하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당신의 돈이 아님에도, 사고 싶은 만큼 사라고 그렇게나 말했지만 그런 눈빛으로 보는 당신에게, 지난 20여 년 동안 사고 싶어도 사지 못했던 그 핸드백을 사드렸다. 지난 시간 동안 비싼 핸드백 사서 뭐하냐고 들고 다녔던 그 낡은 핸드백을 지난날과 함께 버리라고 말했다. 아직 사드려야 할 게 더 많음을, 그 핸드백보다 가치 있는 것을 앞으로 많이 보게 되실 거라고 말씀드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