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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이엠 저리킴 Jun 27. 2021

지옥에서 사옥까지 #004

창업 5년 만에 지옥에서 사옥까지, 스릴 넘치는 창업 드라마

#4-1. 2016년 10월 29일 - 30일


야속하게도 정말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회사를 설립한 지 3개월이 지나도록 좀처럼 첫 프로젝트를 따내지 못했고, 그 사이 3명의 직원을 새로이 영입했다. 채용 사이트에 열심히 채용 공고를 올렸지만 허수의 지원자만 가득했다. 어쩌다 적당한 사람이 보여 연락을 해보면 자신이 지원서를 넣은 것도 모르는 사람이 태반일 정도였다. 어쩔 수 없이 아는 인맥을 총동원해서 겨우 대리 1명과 사원 2명을 채용하게 되었다.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옛 속담 따위는 정작 현실에서는 아무 짝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 말이었다. 시간은 정말 빠르게 흘러가고 있고, 투자 유치 실패로 인해 초기 자본이 넉넉지 못하다 보니 조급함과 압박감이 진혁을 끊임없이 옭아매고 있었다. 어떻게 이 난관을 돌파해 나가야 할지 좀처럼 실마리가 잡히지 않았다. 그렇다고 일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무언가 끊임없이 준비를 하고 있었으나 프로젝트가 성사되지 못하고 그저 계속해서 준비에 준비만을 반복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진혁이 전 회사에서 지속적으로 거래해 오던 광고 대행사의 담당 부장이 10월 말에 있을 작은 프로젝트를 하나 의뢰하였다. 진혁의 회사는 신생 회사였기에 광고 대행사의 협력사에 등록되지 않아 부득이하게 기존 협력사 등록된 업체의 이름으로 프로젝트를 수행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이른바 대대행이라는 구조이다. 확실한 광고주를 가지고 있지 않은 신생 회사들이 흔히 겪을 수 있는 일이다. 진혁은 정말 잘할 수 있었고, 자신이 있었지만 그건 순전히 그의 생각일 뿐이다. 일을 맡기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믿을 만한 '사람'이 아닌 믿을 만한 '회사'를 보는 것이 너무도 당연한 것이다. 그런 면에서 보면 그나마 진혁의 회사에 대대행 구조로 일을 맡겨준 것만 해도 정말 감지덕지한 일이다.


아무튼 그렇게 다른 회사의 이름을 빌려 수행하게 된 첫 번째 프로젝트는 K사에서 매년 진행하는 프로젝트로 이번에는 잠실 대형 주차장에서 진행이 예정되어 있었다. 그 프로젝트를 만들기 위해 9월부터 약 두 달간 '다른 회사의 이름으로' 전 직원이 합심해서 열심히 준비했고, 1주일 동안의 세팅을 마치고 드디어 첫 결전의 날이 밝았다. 


오전 10시. 행사장은 준비한 보람도 없이 텅 비어 있었다. 지난 한 달 동안 홍보도 많이 했고, 마침 날씨도 너무 화창하여 많은 사람들이 찾아 줄 것이라는 기대와는 달리 이상하리만큼 사람이 없었다. 낮에는 다양한 체험거리와 놀거리를, 밤에는 유명 가수들의 공연이 계획되어 있었지만 준비한 다양한 프로그램이 무색할 정도로 사람이 없었고, 심지어 참가자보다 스탭이 더 많은 이상한 행사장이 되었다.


진혁은 초조했다. 사람이 들지 않은 것이 온전히 자신의 탓은 아니었으나 광고주를 볼 면목이 없었다. 어마어마한 돈을 들여 고작 백여명을 위한 대형 놀이터를 만든 셈이 된 것에 대한 일말의 책임감이 들었다. ‘어떤 노력이 부족했을까? 내가 좀 더 노력했다면 이 행사장이 사람들로 꽉 찰 수 있었을까?’ 굳이 흥행 실패의 이유를 찾아보자면 공교롭게도 그날 바로 옆 잠실 야구장에서는 코리안시리즈가 열려 만원 관중이 들어섰고, 광화문과 전국 각지에서는 박OO대통령과 최OO의 국정농단 사건에 대한 첫 대규모 집회가 열리는 날이었다. 진혁은 그런 핑곗거리라도 있는 것이 한편으로는 다행스럽다 잠시 생각했지만, 어떤 이유도 흥행 참패의 면죄부가 될 수는 없었다. 그냥 모든 것이 기획사 대표의 책임일 수밖에 없었다. 광고주도, 대행사도, 이름을 빌려준 그 기획사도, 직원들도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닌 오직 진혁이 오롯이 책임을 떠안아야 했다. 



을씨년스러운 행사장 풍경 1
을씨년스러운 행사장 풍경 2


#4-2. 2016년 12월 31일 - 2017년 1월 1일


첫 프로젝트의 참담한 실패로 좌절에 빠질 시간도 없이 진혁에게 두 번째 프로젝트가 맡겨졌다. 이전 직장에서 매년 진행해오던 H사의 연례행사인 연말 야외 카운트다운 행사이다. 벌써 4-5년 동안 진행해왔던 프로젝트였기에 누구보다 진혁과 직원들은 잘 해낼 자신이 있었다. 다만 규모가 매우 큰 프로젝트이기 때문에 지난번과 마찬가지 이유로 부득이하게 다른 회사의 이름을 빌려 진행해야만 했다. 회사의 레퍼런스나 매출적인 측면에서 너무 귀하고 소중한 기회였다. 


"이 프로젝트만 잘 마치면 그래도 첫 해 손익분기점은 어느 정도 넘길 수 있을 것 같으니 조금 고생스럽더라도 진짜 힘내서 한 번 해봅시다."


진혁은 행사 때문에 연말연시를 반납해야 하는 직원들에게 안쓰러운 마음이 있었지만 일단 첫 해에 잘 안착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넘어야 할 산이었기에 직원들을 독려하며 프로젝트를 진행해 나가고 있었다. 카운트다운 행사라는 프로젝트의 특성상 12월 31일 00시부터 1월 1일 08시까지 총 32시간 동안 영동대로 8차선을 통제하고 세팅부터 철거까지 완료해야만 했다. 더구나 한 겨울에 실외에서 열리는 행사이기 때문에 눈이 오거나 기온이 급격히 떨어져도 별 수 없이 강행해야 하는 최강 난이도의 프로젝트였다. 


그래도 매년 해오던 프로젝트인 만큼 이미 적응이 되어 열심히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11월 중반을 넘어가며 이상한 기류가 흐르기 시작했다. 10월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박OO 국정농단 사건이 일파만파 커지면서 엄청나게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전국 각지로 촛불 문화제가 퍼지면서 많은 행사들이 취소되거나 잠정 연기되었다. 더구나 야외에서 대규모 인원이 모일 것으로 예상되는 카운트다운 행사의 경우는 더욱 우려가 되는 상황이었다. 주최사인 H사에서는 회사의 브랜드를 제고하기 위해 만든 행사가 자칫 정치적인 집회의 성격으로 바뀌는 것을 우려하여 결국 11월 말경 최종 행사 취소를 결정하였다. 


‘여기까지가 끝인가 보오…’ (김광진의 노래 '편지' 도입 부분)


창업한 지 6개월 만에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를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이었다. 이 프로젝트가 취소될 경우 진혁은 6개월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최소 2억 이상의 빚을 떠안은 채, 조용히 회사를 접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1년에 연봉 1억도 못 벌던 직장인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퇴사를 극구 말리던 전 회사의 대표님과 동료들이 진혁의 머릿속을 아스라이 스쳐 지나갔다. 


‘아… 그때 회사에서 잡을 때 못 이기는 척 그냥 남을 걸… 영훈이 투자를 철회한다고 했을 때 그냥 무릎 꿇고 투자해달라고 빌어볼 걸…’


회사가 앞이 보이지 않는 어려움에 빠지자 정말 오만가지 잡생각들이 진혁을 지배하고 있었다. 그렇게 며칠을 시름시름 앓으며 보내던 중 한줄기 빛과 같은 소식이 전해졌다. 행사의 공동 주최사인 OO구청에서 행사를 단독으로 강행하겠다는 의지를 밝혔고, 공동 주최자였던 H사는 약간의 비용을 기부하는 형식으로 행사를 지원하는 방식으로 프로젝트는 극적으로 되살아나게 되었다. 물론 기존 행사 규모에 비하면 절반도 안 되는 비용으로 진행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지만, ‘그 정도라도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라는 생각으로 진혁은 깊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우여곡절 끝에 <2017년 새해맞이 카운트다운 행사>는 성황리에 개최되었다. 우려했던 것과는 달리 촛불 시민은 모두 광화문으로 집결했고, 카운트다운 행사장에는 순수한 일반 시민들과 많은 팬들이 참여해서 누구보다 신나게 새해를 맞이하였다. H사의 불참 결정이 내내 아쉽긴 했으나 행사 취소라는 최악의 상황은 간신히 면한지라 진혁은 혼자서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다.


반토막이 난 눈물 젖은 카운트다운의 현장 1
 반토막이 난 눈물 젖은 카운트다운의 현장 2




진혁의 첫해는 천신만고 끝에 마무리되었다. 6개월 동안 2개의 프로젝트를 수행하였고, 정산을 해 본 결과 놀랍게도 무려 1.2억의 순손실이었다. 자본금이 1억인 회사에서 1.2억의 손실이 발생했다는 말을 다시 표현하면 자본금이 잠식되었다는 것이다. 나름 6개월 동안 쉴 틈도 없이 열심히 일을 했고, 그렇게 많은 손실이 발생했다는 사실은 진혁에게 엄청난 충격이었다. 지금처럼 열심히 해도 시간이 지날수록 더 큰 손실이 생기는 건 아닌지 엄청난 공포감에 사로잡혔다. 무엇보다 함께 고생한 직원들에게 너무 면목이 없었다. 아직 첫 해에 불과하다는 핑계를 대기엔 그 결과가 너무도 처참했고, 앞으로 직원들에게 어떤 비전을 이야기할 수 있을지 난감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여기가 바닥이 아니었음을, 더 깊은 지하 동굴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 다음 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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