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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심 작가 진절 Jul 11. 2021

지옥에서 사옥까지 #006

창업 5년 만에 지옥에서 사옥까지, 스릴 넘치는 창업 드라마

#6-1. 2017년 8월


진혁은 아무 성과도 이루지 못한 상황에서 어영부영 창업 1주년을 맞이했다. 사람이 죽으란 법은 없다고, 지옥을 두세 번 왔다 갔다 하면서도 어떻게든 꾸역꾸역 살아가고 있었다. 몇 번의 위기를 겪으면서 단단해졌지만 그래도 여전히 불안한 날들의 연속이었다. 정말 운이 좋아서 이렇게 살아남기라도 하는 것인지, 아니면 운이 좋지 않아 매일매일 간신히 버티고 사는 것인지 그런 것을 구분하고 판단할 여력 따위는 없었다.


1년이 지나도록 진혁의 회사는 좀처럼 대대행 구조를 벗어날 길이 없었다. 대대행을 하게 되면 공식적으로 회사의 레퍼런스로 프로젝트를 올릴 수가 없기 때문에 새로운 광고주 영입이 더 어려워진다. 그러다 보면 결국 계속해서 다른 회사의 이름으로 프로젝트를 수행할 수밖에 없는 악순환의 고리에 빠져드는 것이다. 진혁은 작은 프로젝트라도 좋으니 자신의 이름을 걸고 할 수 있는 프로젝트가 너무도 간절했다.


간절한 진혁의 마음과는 달리 여전히 회사에는 각종 대대행 프로젝트만 산적해 있었다. 그래도 다행스러운 점이라면 전에 비해 프로젝트의 개수와 종류도 많고, 다양해졌다는 사실이다. 초대형 게임 프로젝트 A, 동계올림픽 관련 프로젝트 B, 신규 비딩 프로젝트 C, 그 외 몇 개의 소소한 프로젝트 등 7명의 인원으로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바쁘게 돌아가던 어느 날이었다.


”부장님, 아니 이제 대표님이지. 대표님, 잘 지내시죠?”


“잘 지내는 건지 아닌 건지 판단하기도 어려운 그런 상황이야 ㅋㅋ 무슨 일이야?”


“이번에 부산에서 게임대회가 갑자기 잡혔는데, 아시아권 선수들이 한국으로 들어와서 먹고, 자고, 이동하고 하는 업무를 해줄 회사가 필요한데, 혹시 일정이 가능하세요? 저희는 중국에 있다 보니까 한국에서 진행되는 행사에 대응이 잘 안 될 것 같아서 부탁 좀 드리려고…"


전화를 한 사람은 예전 직장에 함께 팀으로 일했던 후배 준호였다. 준호와는 7~8년 전 같은 팀에서 팀장과 팀원으로 호흡을 맞췄던 사이였다. 그러다 준호는 중국 지사로 발령이 났고, 거기에서 우연한 기회로 중국 게임 방송사 PD로 이직을 했다. 진혁과 준호는 하는 일도 다르고, 사는 곳도 달라졌지만 각자의 삶을 살면서도 꾸준히 연락을 주고받으며, 가끔씩 한국 혹은 중국에서 소주 한 잔을 나누는 사이로 지내 왔었다.


일정은 당연히 가능하지, 게임 대회에 선수가 얼마나 들어온다고… 흐흐흐…"


진혁은 예전 회사에서 게임대회 관련해서 몇 번 프로젝트를 경험한 적이 있었는데, 선수단 규모는 항상 그렇게 크지 않았기 때문에 가벼운 마음으로 승낙을 했다. 3-4개의 프로젝트를 정신없이 쳐내고 있는 직원들에게는 정말 미안했지만, 새로운 광고주이자 대대행 프로젝트가 아니라는 사실이 진혁의 마음을 강하게 흔들었다. ‘어느 구름에 비 들었으랴…’라는 속담처럼 어떤 작은 기회라도 일단 최선을 다해야 할 시기였기 때문이다. 


”이번에 새로 출시된 게임인데요 100명이 동시에 시작을 해서, 마지막 한 명이 남을 때까지 싸우는 서바이벌 게임이에요. 한국에서 만든 게임으로는 처음으로 세계 대회를 진행하는 거라 기대가 큽니다. 대회 때는 선수만 80명에 코치와 관계자까지 하면 150명은 될 거예요. 중국, 한국, 일본, 동남아, 대만 등 아시아 전역에서 부산으로 들어오는 항공과 이동, 숙식까지 맡아 주셔야 해요."


"와우! 생각보다 규모가 크네. 덕분에 나 돈 좀 만져보는 거야?"


"근데 이게 여행사와 비슷한 업무이다 보니 수익은 크게 안될 거예요. 그러니까 대표님께 부탁을 드리는 거죠. 대표님이 워낙 꼼꼼하시고, 또 신생 회사라 기회도 필요하실 테니까. 하하하"


"사실 그렇지. 지금 나는 돈 보다도 기회가 더 필요한 상황이니까. 이건 우리가 책임지고 한번 진행해 볼게. 한국에 네가 알고 있는 수많은 기획사 중에 우리에게 먼저 기회를 줘서 고마워."


"ㅋㅋㅋ 별말씀을요. 처음 정식으로 호흡을 맞춰보는 거지만 어쨌든 잘 부탁드립니다."



#6-2. 2017년 11월


당연하게도 직원들의 거센 반발이 있었다. 안 그래도 엄청나게 바쁘게 돌아가는 와중에 또 새로운 프로젝트를 즐거운 마음으로 받아줄 리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혁은 옛날 방식으로 밀어붙이는 게 아니라 직원들에게 동의를 받고 싶어 꾸준히 설득했다. 


"지금 하고 있는 프로젝트들의 경우 규모는 크지만 대대행 프로젝트라 향후 가능성이 높지 않은데 반해 이번 새 프로젝트는 규모는 작아도 우리에게 기회와 가능성을 줄 수 있는 프로젝트라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그럴듯한 말로 설득을 해도 현재 ‘일 무덤’에 매몰되어 있는 직원들 귀에 기회니, 비전이니 하는 그런 뜬구름 같은 얘기가 곧이곧대로 들릴 리가 없었다. 하지만 진혁은 직원들의 그런 마음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고, 또 새로운 기회도 절대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럼 여러분들은 하던 일을 계속하시고, 이 프로젝트는 내가 직접 진행할 테니 막내 사원 한 명만 저한테 붙여 주시면 제가 알아서 진행하겠습니다."


진혁은 기존의 프로젝트들도 신경을 써가면서, 부산 게임대회 준비에도 만전을 기했다. 몸이 세 개라도 부족할 정도로 바쁜 일정이었지만 시간을 쪼개고 쪼개서 열심히 준비를 했다. 여행 쪽 관련 파트너 회사를 섭외하여 업무의 부담을 조금이나마 줄였다. 수익률도 덩달아 많이 줄어들겠지만 그래도 잘 해내는 게 최우선 과제였기에 수익률은 과감하게 포기할 준비가 되어있었다.




드디어 대회날이 다가왔고, 진혁은 담당 사원과 함께 부산으로 내려갔다. 부산에서의 일정은 정말 살인적이었다. 대회가 저녁 11시에 끝나면 12시에 숙소에 도착하고, 2시~3시까지 내일 스케줄 확인 및 점검 미팅을 마치면 다음 날 6시부터 스탠바이 하는 일정이었다. 진혁은 그런 와중에 새벽기차를 타고 서울로 향해서 기존 프로젝트들의 미팅을 하고 다시 바로 부산으로 내려오는 당일치기 서울 방문도 병행했다. 그가 선택한 일이었기에 기쁜 마음으로 모든 일정에 빠짐없이 참여했고, 함께 간 직원보다 항상 먼저 출근해서 늦게 퇴근하였다. 지금 최선을 다해야 나중에 후회할 일이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대표님, 오디오 연장 케이블이 필요해요. 구할 수 있을까요?"


"대표님, 컨트롤 장비들을 덮을 검은색 천이 한 100미터 필요한데 급하게 구할 수 있을까요?"


"대표님, 선수들이 의자가 너무 낮다고 하는데, 혹시 두꺼운 방석을 구할 수 있을까요?"


모두가 처음 해보는 게임 대회였기에 현장은 늘 부족한 것 투성이었다. 그럴 때마다 진혁에게는 항상 긴급한 미션이 주어졌다. 진혁은 회사의 대표가 아니라 프로젝트 매니저의 입장으로 언제나 불평불만 없이 성심성의껏 대응했다. 함께 간 직원은 선수단의 관리에 집중해야 했기 때문에 그 외 모든 잡다한 업무는 오롯이 진혁의 몫이었다.


"부산에 있는 모든 가전 매장 다 돌아봤는데, 40개밖에 못 구했어. 선수가 80명인데 어쩌지?"


"부산 진시장에서 1미터 폭으로 50미터씩 2세트 퀵으로 받기로 했으니까, 조금만 기다려줘"


"이마트 가서 방석 싹 쓸어왔어 종류와 색깔은 조금씩 다르니까 이해해줘"


이렇게 빠르고 성실한 대응을 전에는 경험한 적이 없었는지 게임사 담당자도, 방송사 담당자들도 모두 매번 고마운 마음을 적극적으로 표현해주었다. 진혁은 몸 둘 바를 몰랐다. 이전에 대행사와 일할 때도, 대대행 행사를 할 때도 이렇게 진심으로 고마움을 표현해주는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습관처럼 늘 해오던 대로 했을 뿐인데 이런 반응을 보여주니 진혁은 저절로 힘이 나서 더 열심히 하게 되었다. 



그렇게 길고 긴 프로젝트를 무사히 마치고, 회식을 하던 마지막 날. 진혁은 준호가 근무하는 방송사 임원들과 한 자리에 앉게 되었다. 나이는 비슷한 또래였지만 그래도 클라이언트였기에 다소 부담스러운 자리였다. 방송사 임원들은 진혁과 직원에게 진심으로 고마움을 표했다. 처음엔 규모가 작은 회사이다 보니 불안한 마음이 있었던 게 사실이지만 프로젝트를 잘 마치고 나니 그 의구심이 약간은 해소되었다고 진혁을 격려해주었다. 


또한 회식자리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소름 돋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약 4년 전 북경에서 열렸던 한 게임대회의 현장에 진혁, 준호를 비롯한 그리고 그 방송사의 임원들 모두 각각 지금과는 다른 회사의 신분으로 함께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준호와 방송사 임원들은 한 차례씩 회사를 옮기면서 같은 식구가 되었고, 진혁은 그 사이 회사를 창업한 것이다. 모두들 그때의 힘들었던 행사를 소환하며 공통의 기억으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세상이란 이처럼 좁고 촘촘하게 연결이 되어 있구나’라는 생각이 진혁의 마음을 일깨워 주었다. 


성공적으로 대회를 마치고 사무실로 복귀해 정산을 해보니 처음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수익이 적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진혁은 크게 개의치 않았다. 회사를 창업한 이후 처음으로 자신의 이름으로 진행한 프로젝트였고, 행사 규모와 수익을 떠나서 처음으로 인정을 받았다는 사실만으로도 진혁은 충분히 보상을 받은 기분이었다. 앞으로 이 게임이 더 큰 사랑을 받아 폭풍 성장하기를, 그래서 진혁에게도 앞으로 좋은 기회가 계속 주어지기를 진심으로 기도했다. 


>> 다음 화에 계속...


#창업 #창업스토리 #창업분투기 #스타트업 #투자 #직장생활 #회사생활 #사회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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