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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이엠 저리킴 Jul 18. 2021

지옥에서 사옥까지 #007

창업 5년 만에 지옥에서 사옥까지, 스릴 넘치는 창업 드라마

#7-1. 2017년 11월


진혁은 부산에서의 게임대회를 마치고 서울로 복귀하자마자 기존에 준비해 오던 글로벌 게임 페스티발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프로젝트 준비를 시작한 지는 벌써 3개월이라는 시간이 지났고, 실제 행사까지는 아직도 5개월이라는 시간이 남아있었다. 이미 직원들의 피로도가 한계치에 다다르고 있었다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끊임없이 반복되는 보고 문서 작성은 직원들에게 엄청난 스트레스를 주었다. 명확한 디렉션도 없는 추상적인 피드백이 무한 반복되자 점점 의욕을 잃어가고 있었다. 


야근을 마치고 늦은 저녁 겸 간단하게 회식을 하던 날, 술이 어느 정도 들어가자 회사의 창업 멤버인 김팀장은 한참 동안이나 하소연을 쏟아냈다. 사실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내용들이었고, 틀린 말이 없었기에 진혁은 한마디도 반박하지 못하고 그냥 묵묵히 듣고 있었다. 서로의 입장을 누구보다 잘 알고, 이해하고 있었지만 한 치 앞도 안 보이는 막막한 상황이다 보니 충분히 불만을 가질 만한 상황임에는 틀림없었다. 


다음 날이 되자 회사가 발칵 뒤집혔다. 김팀장이 다음 날부터 연락도 없이 회사에 출근하지 않은 것이다. 그야말로 비상 상황이었다. 당장 또 다음 주에 제출해야 할 보고 문서도 문제였지만 그보다 회사의 핵심 실무 직원이 자리를 비우자 엄청난 공백이 생겨 모든 업무에 차질이 빚어졌다. 진혁으로서는 갑작스러운 상황에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판단이 서질 않았다. 화를 내던, 살살 달래던 빨리 복귀시켜야 한다고 모두들 목소리를 모았지만 진혁의 생각은 달랐다. 지금 임계치를 넘어선 사람에게 어떤 방법을 쓴다 한들 분명 역효과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팀장님, 이런 일이 있을 줄 알았으면 내가 어제 조금 더 신경 써서 들을 걸 그랬네요. 누구보다 팀장님이 고생하는 거 잘 알지만 당장 해줄 수 있는 게 없어서 애써 모른 척한 거 같아요. 여기 일들은 우리가 알아서 해결할 테니까 팀장님은 회사 걱정 마시고, 이 참에 푹 쉬면서 많이 고민하시고 생각 정리되면 알려주세요. 항상 미안하고 감사합니다.”


진혁은 김팀장에게 전화를 하는 대신 미안한 마음을 꾹꾹 눌러 담은 장문의 문자를 보냈다. 오랫동안 회신이 없었고, 김팀장이 문자를 읽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진심이 꼭 전달되기를 바랐다. 그렇게 애타는 심정으로 2주간의 시간이 흘렀고, 김팀장의 공백을 다른 직원들이 고군분투하며 열심히 채워주던 찰나 김팀장으로부터 회신이 왔다.


“대표님, 걱정 끼쳐드려서 정말 죄송합니다. 그동안 너무 지쳐 있었고 앞으로도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아 몸과 마음이 한 번에 무너진 거 같습니다. 이번 주까지만 좀 쉬고 다음 주에 사무실에 나가도록 하겠습니다. 혹여 괜히 걱정하실 것 같아 미리 말씀드리자면 대표님 우려하시는 그런 일은 없을 겁니다. 다음 주부터 다시 열심히 뛰겠습니다.”


진혁은 김팀장의 문자를 받고서도 불안한 마음에 바로 열어 보지 못했다. 한참을 고민하다 용기를 내어 열어 본 문자에는 다행히도 사무실로 복귀하겠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고, 그제야  진혁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진혁이 김팀장을 믿고 묵묵히 기다려 준 덕인지는 알 수 없었으나 일단 자신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을 확인한 순간이었다. 복귀를 결정한 김팀장에게도, 묵묵히 회사를 믿고 따라준 다른 직원들에게도 너무 감사한 마음이었다. 


#7-2. 2017년 12월


김팀장이 복귀하면서 회사는 다시 활기를 되찾게 되었다. 누구도 김팀장의 공백을 공개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 마치 어제 퇴근하고 오늘 만난 사람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대했다. 김팀장은 자리를 비운 사이 많은 진도가 나가 있어 빠르게 적응하기 위해 지나간 내용들을 꼼꼼히 리뷰하였다. 글로벌 게임 페스티발의 전체 규모는 100억대에 이르고, 진혁의 회사가 올릴 수 있는 매출의 규모는 적어도 30억 내외로 추정되는 초대형 프로젝트였다. 그만큼 고생스럽기는 하겠지만 이 프로젝트만 성공적으로 수행하면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을 수 있게 되리라는 조그만 기대가 있었다. 


불과 4개월 후에 태국에서 진행될 예정인 게임 페스티발은 12월 말에 있을 미디어 발표회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대회 준비에 들어가게 된다. 진혁은 직원 여러 명과 함께 태국으로 건너가 짧은 준비 기간이었지만 미디어 발표회를 성공적으로 마쳤다. 하지만 진혁의 마음속에는 여전히 풀리지 않는 의문이 남아있었다. 


'근데 정말 4월에 이 페스티발이 무사히 개최될 수 있을까?'

태국 방콕에서 열린 미디어 발표회


2018년 새해가 밝았고 이제 대회 시작까지는 불과 4개월이 채 남지 않았다. 분명히 오랜 시간 준비를 해왔고, 이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제자리를 맴돌았다. 행사를 준비하다 보면 보통 남은 시간에 비해 할 일이 산더미처럼 남았다는 느낌을 받는 것은 항상 겪는 일이었지만 이번에는 정말 상황이 달랐다. 준비되는 과정도 매우 더디고, 결정이 내려지는 과정도 매우 느려서 마치 꿈속에서 누군가에 쫓기는 것처럼 이상하리만큼 한걸음 한걸음 내딛는 발걸음이 엄청 무겁게 느껴졌다. 이렇게 가다가는 정말 큰일이 나겠다 싶은 마음도 아주 조금은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또 한 번의 비보가 전해졌다. 


"행사 준비를 잠시 중단해야 할 것 같아요. 아직 확실하지는 않지만 일단 대회가 취소될 경우를 대비해서 취소 비용에 대한 견적서를 만들어서 보내주세요. 취소가 확정된 건 아니고, 잠시 내부 논의를 한다고 하니 우리는 우선 취소에 따른 비용부터 정리하고 계시지요"


연말 카운트다운, 독일 자동차 페스티발에 이어 벌써 세 번째 취소 소식이 전해졌다. 앞서 두 번의 행사는 결국 축소된 형태로라도 부활을 했지만 이번만큼은 분위기가 달랐다.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았다 해도 물리적으로 준비가 너무 부족했다. 진혁은 행사를 준비하는 내내 취소가 되면 큰 일 난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내심 취소되었으면 하는 마음이 조금은 있었다. 앞으로 또 살아가야 할 길은 막막했지만 그래도 이 대회를 통해 모두가 상처받고 헤어지느니, 차라리 취소돼서 평화와 안정을 찾는 게 더 낫겠다는 생각을 했을 정도이다. 하지만 그것이 막상 현실로 닥치게 되니 진혁의 마음은 갈팡질팡했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겠는 1월의 마지막 밤을 맞이했다.


>> 다음 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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