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이엠 저리킴 Jul 04. 2021

지옥에서 사옥까지 #005

창업 5년 만에 지옥에서 사옥까지, 스릴 넘치는 창업 드라마

#5-1. 2017년 3월


처참한 성적을 받아 든 진혁은 한동안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매서웠던 겨울이 지나고 다시 봄이 찾아왔지만 진혁의 마음은 여전히 칼바람이 부는 한겨울의 중심에 서있었다. 대대행이라는 굴레를 벗어나 자신들의 이름으로 일을 하고 싶은 마음도 간절했지만, 당장 할 수 있는 일도 없는 와중에 '찬 밥 더운 밥'을 가리는 사치를 부릴 상황은 아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진혁은 소개를 받게 된 다른 기획사로부터 함께 프로젝트를 해보자는 제안을 받았다. 그 기획사는 최근 3-4년간 엄청나게 성장한 회사였고, 자연스레 많은 일들이 이어져 내부 소화가 불가능할 정도로 일이 넘쳐났다. 상황이 그렇다 보니 내부 인력의 한계로 부득이하게 외부 아웃소싱의 방법을 택하기도 하는데, 마침 일이 없었던 시기여서 진혁은 그 일을 맡아서 해보기로 했다. 지난 두 번의 행사는 그래도 진혁의 회사가 영업을 하고 다른 회사의 이름을 빌리는 방식이었다면 이 경우는 순수하게 처음부터 끝까지 다른 회사의 이름으로 진행을 해야만 했다. 직원들에게 또 한 번 정말 미안한 마음이 앞섰다. 회사의 비전은 차치하고서라도 다른 회사 이름으로 행사를 진행해야 하는 것이 못내 마음에 걸렸지만 진혁에게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그나마 한 가지 다행스러운 일이라면 행사 장소가 진혁과 직원들이 몇 해전 행사를 진행해 본 경험이 있는 익숙한 곳이어서 준비하는데 큰 어려움 없이 순조롭게 진행이 되고 있었다는 것이다. 행사는 독일 자동차 B사에서 매년 주최하는 대규모 페스티벌로 예산은 10억 이상의 큰 규모의 행사였다. 자존심 같은 건 애저녁에 접어두고 우선 돈을 버는 것이 급선무였기에 진혁과 직원들은 그 회사의 명함을 들고, 열심히 행사를 준비했다. 하지만 진혁의 귀를 의심할 사건이 또다시 발생했다. 1개월 동안 준비해오던 프로젝트가 경기장 대관팀과 주최 측의 의견 조율이 결렬되었고, 결국 지난번 연말 카운트다운에 이어 연달아 행사가 취소될 위기에 처해진 것이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이미 싸이, 젝스키스 등 유명 가수들과의 출연진 계약이 끝난 상황이라 자칫 잘못하면 오히려 돈을 물어줘야 하는 상황이 될 수도 있었다. 


평생 불면증이란 것을 모르고 살았던 진혁은 그날부터 밤새 잠을 못 이루는 날들이 지속되었다. 눈만 감았다 하면 꿈속에서 온갖 종류의 괴물들로부터 괴롭힘을 당하기도 하고, 감옥에서 흉악한 범죄자들로부터 흠씬 두들겨 맞기도 했다. 매일 밤 거의 30분마다 잠이 깨기를 반복하다 보니  항상 피곤함과 스트레스로 극한의 상황에 이르렀지만 진혁은 차마 아내에게 사실대로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세무사 사무실의 권고로 대표자 급여도 당분간 최소 금액인 100만원씩만 받기로 했으나 아내에게는 마이너스 통장을 털어 6개월간 정상 월급을 보냈다. 처음의 호기롭고 자신만만하던 진혁은 어디에도 없었다. 불과 창업 9개월 만에 진짜 파산 직전의 상황을 맞이한 것이다.


#5-2. 2017년 4월


진혁의 마음은 하루가 일 년 같다는 상투적인 표현이 가장 어울리는 상황이었다. 어찌할 바를 모르고 갈 곳을 잃은 정신을 부여잡아 보려고 무던히도 애를 써보았다. 그렇게 암흑 같던 시간이 열흘 정도 지났을 때쯤 다시 한번 기적과 같은 일이 일어났다. 행사 주최사인 독일 자동차 B사의 내부 협의 결과 수억의 출연료를 이미 지급한 상황을 고려해서 행사를 취소하기보다는 날짜와 장소를 옮겨 재추진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던 것이다. 1개월도 채 남지 않은 상황이었지만 부랴부랴 여기저기에 새로운 장소를 물색하여, 한강의 한 공원에 어렵사리 대관을 잡았다. 또한 출연진들에게는 무릎을 꿇다시피 사정하여 변경된 날짜로 계약을 마무리하는 등 다시 살아난 불씨를 이어 가기 위해 진혁과 직원들은 동분서주했다. 


준비 과정의 수많은 우여곡절에도 불구하고 대회는 매우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다. 하지만 진혁의 회사는 이번 프로젝트에서 조연에 불과했기 때문에 축하의 자리에 끼지 못하고 그저 조용히 뒤에서 마음속으로 박수를 보냈다. 함께 고생한 직원들도 비슷한 감정일 거라 생각하니 조금 울컥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그렇지만 이 모든 것이 성장 과정의 한 페이지라고 믿으며 직원들에게 격려와 위로의 마음을 전달했다. 


 조연의 마음으로 조용한 박수를 보냈던 페스티발 현장 1
 조연의 마음으로 조용한 박수를 보냈던 페스티발 현장 2


이번 프로젝트도 시간과 장소를 옮겨 급하게 치른 데다가 행사장의 규모가 현격히 줄어들어 덩달아 예산도 많이 줄어들었다. 당초 진혁에게 일을 의뢰했던 기획사에서는 날짜가 변경됨에 따라 자신들의 직원을 투입할 수 있는 일정이 되어 행사의 절반을 뚝 잘라서 가져가게 되었다. 그런 여러 가지 상황의 변화에 따라 처음 예산과 비교하면 절반도 안 되는 규모로 매출이 줄어들었지만 진혁은 투덜댈 틈이 없었다. 그렇게 해서라도 행사를 진행한 덕에 우려했던 파산을 ‘잠시’ 미룰 수 있었기 때문에 전혀 서운한 감정이 없었다. 만약 진혁이 반대의 입장이었다 하더라도 마찬가지로 행동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냉혹한 비즈니스 세계에서 ‘인정’과 ‘의리’를 바란다는 것 자체가 너무 순진한 생각이다. 


그들에게도 분명 힘들었던 시절이 있었을 것이고, 그 모든 것을 버텨내면서 지금의 자리에 이르렀을 것이라고 진혁은 생각했다. 항상 넘쳐나는 그들의 일감이 부러웠고, 회의를 갈 때마다 마주친 그들의 사옥 앞에서 진혁은 항상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자신과 동갑내기인 기획사 대표의 자신감 앞에서 늘 쥐구멍에 숨고 싶을 만큼 초라한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특히 자신뿐 아니라 직원들도 비슷한 감정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더욱 미안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행사는 겨우 잘 마쳤지만 부러움과 미안함 자괴감과 같은 복잡한 감정들이 공존하는 그야말로 혼돈의 시기였다. 진혁은 아주 바늘 구멍 같은 희망이지만 언젠가 정말 열심히 살다가 자신에게도 기회가 온다면 다른 무엇보다 우리만의 멋진 사옥을 가지고 싶다는 막연한 희망을 가지기 시작했다. 



>> 다음 화에 계속...


#창업 #창업스토리 #창업분투기 #스타트업 #투자 #직장생활 #회사생활 #사회생활

이전 05화 지옥에서 사옥까지 #004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