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심 작가 진절 Jun 20. 2021

지옥에서 사옥까지 #003

창업 5년 만에 지옥에서 사옥까지, 스릴 넘치는 창업 드라마

#3-1. 2016년 6월 20일


본격적인 여름이라고 하기엔 아직 이른 시간이었지만 날씨는 아랑곳하지 않고 푹푹 찌는 무더위를 선물해주었다. 더구나 아직 마땅한 사무실을 찾지 못한 상황인지라 커피숍을 전전하며 업무를 진행하고 있었던 터라 더위가 더 크게 다가왔다. 진혁은 이미 이전 회사와 최종 작별을 하였기에 빠르게 새 사무실을 찾기 위해 부쩍 뜨거워진 이른 무더위를 뚫고 이리저리 사무실을 보러 다녔다. 하지만 적은 비용과 타이트한 일정으로 인해 썩 만족스러운 사무실을 찾지 못했다. 


"건물 외관이 가장 중요해요. 옛날식 허름한 벽돌 건물이면, 면접 보러 왔다가 안 들어오고 그냥 가는 경우도 많더라고요"


"행사에 쓸 짐들이 많으니 엘리베이터는 필수! 짐들을 보관할 창고도 있으면 좋겠습니다."


"화장실이 사무실 안에 있었으면 좋겠네요, 남녀 칸이 분리되어 있으면 더 좋구요."


남자 셋이 시작할 사무실은 꽤나 많은 조건들을 통과해야 했다. 그것은 함께하기로 한 직원들의 바람이라기보다는 진혁의 바람이라는 게 더 정확할 것이다. 나름 규모와 경력 있는 회사를 등지고 나왔기 때문에 직원들에게 최소한의 사무 환경은 갖춰주고 싶었던 마음이 컸다. 하지만 막상 현실로 닥쳐보니 마음에 쏙 드는 사무실 구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물론 돈과 시간이 부족한 것이 가장 큰 문제라면 문제이겠지만…


■ 전성윤 본부장 : 기존 회사의 전팀장. 조직 관리와 영업에 강점이 있고, 둥글둥글한 성격.

 김태호 팀장 : 기존 회사의 김대리. 업무 능력이 뛰어나고, 맺고 끊음이 분명한 성격.


진혁을 포함하여 시작을 함께 한 이 세명의 남자들은 성격이 달라도 너무 달랐다. 각자의 색깔이 명확하게 다르면서도 상호 보완되는 부분이 많아 오히려 호흡이 잘 맞아 창업까지 함께 하게 된 것이다. 결혼을 앞둔 예비 신혼부부가 결혼을 준비하면서 가장 많이 다투고, 심지어 사소한 문제로 헤어지기까지 하는 경우도 허다하지만, 이 세명의 남자들은 서로가 원하는 부분과 각자의 역할이 명확했기 때문에 회사 설립은 큰 트러블이 없이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3일에 걸쳐 십여 개의 사무실을 둘러본 후, 오늘 볼 수 있는 마지막 사무실에 도착하였다. 현재까지 본 사무실들은 꼭 한 두 가지씩의 결정적 결격사유를 가지고 있었기에 자포자기의 상태로 마음이었다. 하지만 부동산 사장님은 이번만큼은 정말 자신이 있었던지, 앞서 본 사무실들과는 달리 이동하는 내내 이런저런 장점들을 늘어놓았다. 설명만 놓고 본다면 정말 우리가 원했던 조건들에 대부분 충족되는 물건임에는 틀림없었다. 전략적으로 앞에 일부러 조금 떨어지는 물건을 보여주고, 마지막에 그럴듯한 물건으로 승부수를 던졌을지도 모른다. 

(사진 1 : 미생팀과 다르지 않았던 건물의 첫인상)


그런 부동산 사장님의 전략은 제대로 맞아떨어졌다. 세 남자는 건물 앞에 도착한 순간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왠지 여기가 우리의 첫 사무실이 되겠구나!"


진혁과 직원들이 마음에 드는 눈빛을 서로 교환하자, 부동산 사장님은 마지막으로 쐐기를 박는 회심의 멘트를 장전했다.


"웹툰 <미생> 아시죠? 그 팀에서 쓰던 사무실이에요. 이번에 만화랑 드라마가 대박이 나서 더 큰 사무실로 옮겨 가면서 사무실이 급하게 비게 된 거예요. 대박 나는 사무실 다음에 들어오는 사람도 기운을 받아서 잘되는 거 아시죠?"


"임대료가 높긴 한데, 와서 직접 보니 이해가 되네요. 저희가 예상했던 것보다 조금 비싸 부담스럽기는 하지만 아무리 봐도 여기만 한 곳이 없네요. 괜히 더운데 더 돌아다녀봐야 소용없을 것 같네요. 그냥 여기로 하시죠. 돈은 더 벌면 되죠, 뭐"


그렇게 회사의 첫 사무실은 <미생> 팀이 사용하던 19평짜리 조그만 사무실로 최종 낙점되었다. 그 사무실의 가장 큰 매력 포인트는 흡연자를 위한 길고 얇은 테라스가 존재한다는 것이었다. 그 테라스에서 정말 많은 한숨과 고민이 있을 거라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대박 난 자리에는 기운을 이어받아 또 대박이 난다는 케케묵은 속설을 그냥 한번 믿어보고 싶었다. 

(사진 2) 마지막 사무실을 브리핑하시는 부동산 사장님
(사진 3) 흡연자와 고민러, 한숨러들을 위한 길고 얇은 테라스




#3-2. 2016년 7월 8일


진혁은 7월 1일에 법무사 사무실에 법인 등록 서류를 제출하였다. 법인 등록일을 7월 1일로 맞추기 위해서였으나, 법인등록과 사업자등록까지 마치려면 며칠이 걸린다는 사실을 미처 알지 못했던 탓에 7월 8일이 최종 법인 등록일이 된 것이다. 사업이 처음이다 보니 시작부터 아주 작은 곳에서부터 미숙함이 여실히 드러나고 있었다. 


법인 자본금은 단 1억뿐이었다. 영훈의 투자 철회로 난감해진 진혁은 곧바로 아내에게 상황을 이실직고했다. 애초에 영훈의 투자금에서 시작된 일이었기에 펄쩍 뛸 거라는 진혁의 예상과는 달리 아내는 그 사실을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영훈과 함께 새 사업을 시작한다고 했을 때 적극적으로 찬성했던 아내였지만, 남의 돈을 받아서 사업을 한다는 게 내심 마음에 걸렸다고 했다. 진혁의 아내는 그런 면에서는 오히려 잘 된 일이라면서 아파트 담보로 1억을 대출받는데 순순히 동의해 주었다. 얼떨떨한 진혁은 마음속으로 꼭 2년 안에 반드시 다 보상해 주겠다는 다짐을 했다.


아파트 담보로 마련한 1억 외에 추가 투자금이 있었다. 진혁과 지속적인 거래를 해왔던 친구이자 비즈니스 파트너인 A가 5000만원을 선뜻 투자하였다. 지난 2-3년간 친하게 지내며 신뢰를 쌓아온 것은 사실이지만 그래도 적지 않은 돈을 아무 비전도 미래도 불투명한 회사에 선뜻 내놓는다는 것이 좋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상당한 부담으로 다가왔다. 더구나 투자에 대한 특별한 조건도 내걸지 않았다. 그저 지난 시간 동안 쌓아온 신뢰를 바탕으로 향후 함께 여러 가지 일들을 도모해보고 싶은 것이 A의 유일한 조건이었다. 진혁은 기왕 받은 투자금이니 투자금에 대한 감사의 의미로 전체 지분 중 10%를 A에게 배정하였고, 함께 시작한 전본부장과 김팀장에게도 각각 지분을 배분하였다. 


■ 지분 배정 현황 : 진혁 70% / 전본부장 12% / 김팀장 8% / 투자자 A 10%


직원과 투자자에게 지분을 일정 부분 배정한 것은 말로만 주인의식을 강조할 것이 아니라 실제로 주인의 자격을 부여하여 스스로 주인의식을 가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진혁은 주식회사의 모든 의결권 마지노선인 66.7% 이상만 보유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과감하게 30%를 직원과 투자자에게 배정한 것이다. 이 주식 배정을 두고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만류하였다. 비슷한 상황에서 주식을 나눠준 직원들에게 여러 가지 곤란한 일들을 겪은 대표자들의 공통된 의견이었다. 그들의 의견이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니었지만 결국 누가 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고 굳게 믿었던 진혁은 주식 배분 문제에서만큼은 의견을 굽히지 않고 강행했다. 


물론 지분을 제공하면서 주식의 양도와 양수에 관한 별도의 협의서를 작성하였다. ‘주식 취득 후, 3년 이내 정당한 사유 없이 퇴사할 경우 모든 주식의 권한을 아무런 조건 없이 반납한다’는 내용의 합의서였다. 법적으로 강력한 효력이 있는 문서는 아니었지만 회사의 가장 중추적인 역할을 해야 할 책임자들이 쉽게 회사를 떠날 마음을 품지 못하도록 하는 최소한의 안전장치라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그들이 떠나려는 마음을 먹지 못할 정도로 좋은 회사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가장 중요한 사명이었다. 항상 사람의 관계라는 것이 좋을 때는 한없이 좋다가도, 나빠질 때는 순식간에 망가지게 마련이다. 지분에 관한 문제도 큰 문제없이 훈훈하게 진행되는가 싶었지만, 이후에 여러 가지 문제들로 혼란스러운 상황에서도 진혁은 그날의 결정을 절대 후회하지 않았다.


회사의 설립에 관한 세팅은 어느 정도 완료되었고 이제 본격적으로 사람을 채용하는 일과 영업을 통해 일을 만들어내야 하는 중요한 출발선에 서게 되었다. 시작이 반이라지만 정작 아무것도 시작하지 않았음에도 벌써부터 녹초가 된 기분이었다. 과연 그들이 맞이할 첫 번째 프로젝트는 언제쯤 시작이 될지… 또 어떤 고난과 역경이 찾아올지… 기대와 두려움이 공존하는 순간이었다. 


>> 다음 화에 계속...


#창업 #창업스토리 #창업분투기 #스타트업 #투자 #직장생활 #회사생활 #사회생활  



이전 03화 지옥에서 사옥까지 #002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