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심 작가 진절 Jun 06. 2021

지옥에서 사옥까지 #001

창업 5년 만에 지옥에서 사옥까지, 스릴 넘치는 창업 드라마

#1-1. 2016년 5월 1일 일요일


5월은 누구나 사랑하는 계절이다. 덥지도 춥지도 않고, 습도도 낮은 쾌적한 날씨, 높고 푸르른 하늘, 그리고 각종 기념일. 만약 5월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분명 이 좋은 계절에 누군가와 이별을 했거나 혹은 절대 기억하고 싶지 않은 특별한 일이 있었을 것이 분명하다. 진혁 역시도 그런 5월을 매우 좋아했다. 아이들과 함께 나들이도 가고, 부모님과 즐거운 시간을 보냈지만 2년 전부터는 봄이 되면 무조건 장기 프로젝트가 진행되어 좀처럼 시간을 내기가 어려워졌다. 


진혁은 프로모션 이벤트 대행사에서 약 15년 정도 일을 해왔다. 현재 그가 몸 담고 있는 회사는 3년 전에 제법 큰 에이전시에서 자회사 형태로 독립하여 자리를 굳건하게 지키고 있는 20명의 중소기업이다. 회사는 정말 운이 좋게도 런칭하던 첫 해부터 높은 매출과 가파른 성장을 기록하며, 3년 만에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 이 바닥에서 이토록 짧은 시간에 성공적으로 자리를 잡는 경우는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었고, 창립 멤버로 회사에 합류했던 진혁은 대단한 자부심을 느끼고 있었다.


진혁은 회사에서 부장의 직책을 맡고 있다. 전체 직원 20명 중 대표님을 제외하면 가장 높은 위치에서 진혁은 전체 실무의 총괄을 맡고 있었다. 회사 안에서는 대표님과 직원들의 신뢰를 받고 있고, 협력사들과 돈독한 관계를 맺고 있으며, 또래 친구들에 비하면 급여나 복지도 나쁘지 않은 편이라 나름 안정적이면서 평온한 삶이 유지되는 상황이었다. 그 회사로 옮기면서 2억이라는 큰 돈을 대출 받아 꿈에 그리던 브랜드 아파트로 이사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진혁도 5월이 되면 누가 가슴을 짓누르는 것처럼 갑갑했다. 세상에 쉬운 일이 어디 있겠냐마는, 2년 전부터 맡게 된 자동차 회사의 대형 축제는 늦겨울부터 준비를 시작하여, 늦은 봄에 끝이 나는 에너지 소모가 매우 큰 프로젝트였다. 장장 4개월간의 준비 기간과 1개월 동안의 행사를 마치고 나면 그의 몸과 마음은 언제나 숯검댕이가 되곤 한다. 그리고 또 새로운 봄이 찾아오자 진혁은 잊고 있던 두려움에 몸서리를 치기 시작했다.


올해로 3번째를 맞이하는 프로젝트의 준비를 위해 일요일이자 근로자의 날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진혁은 고된 출근길에 올랐다. 집을 나서서 동부간선도로를 지나 내부순환로 성산방향 정릉 IC를 지나던 중, 진혁의 머리를 스쳐 지나가듯 떠오른 2개의 영어 단어가 있었다. 우연히 어떤 간판에 적힌 문구를 보거나, 라디오에서 나오는 DJ의 멘트를 들은 것도 아닌데, 그냥 무슨 신의 계시처럼 문득 2개의 영어 단어가 머릿 속에 떠올랐다. 바로 ‘CONNECT’와 ‘NEXT’.


진혁은 막히는 차량 틈을 비집고 들어가 잠시 갓길에 차를 세우고, 휴대폰 메모장에 단어를 적어 놓았다. 무슨 이유로 떠오른 지는 알 수 없지만, 두 단어를 합성하니 ‘CONEXT’라는 신조어가 되었고, 그 단어가 주는 느낌이 너무 좋아 일단 메모를 했다. 아직 그에게 창업은 먼 미래의 이야기이거나 혹은 아예 없을 수도 있는 일이었지만 혹시라도 나중에 본인이 회사를 만들게 된다면 꼭 이 이름을 써야겠다는 그저 막연한 상상만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그때까지만 해도 진혁은 회사를 만들겠다는 생각이 전혀 없던 시기였고, 2016년 5월 1일 그날에 단순히 떠오른 단순한 2개의 단어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바로 1주일 후, 그 막연하고 기약 없을 줄 알았던 뜬구름 같은 상상은 곧바로 현실로 다가왔다.


#1-2. 2016년 5월 7일 토요일


진혁은 토요일인 그날에도 여전히 출근을 했다. 몇 주 동안 주말도 없이 계속 출근을 해야 했지만 특히 다음 주부터 시작되는 현장 세팅을 위해 아침부터 최종 점검 및 시뮬레이션 미팅을 하느라 녹초가 되어 버렸다. 이른 퇴근이었지만 토요일의 출근은 부장이라는 직책을 달고서도 여전히 체력소모가 평소의 2배쯤 되는 것 같았다. (실무자들의 힘듦은 또 오죽했으랴...)


지친 몸을 이끌고 퇴근길에 나서 보지만 오후 4시의 퇴근길은 이미 자동차로 가득 차 있다. ‘짜증을 내어서 무엇하랴.. 니나노..’ 몰려오는 잠도 쫓을 겸, 차 안에서 목이 터져라 90년대 노래들을 부르고 있었다. 에메랄드 캐슬의 <발걸음>의 하이라이트 부분인 "처음부터..."를 쭉 올리려는 순간 때마침 영훈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퇴근길이면 잠깐 들르지."


"나 주말에 아침부터 회의하느라 개피곤한데. 어디 형님한테 오라 가라냐"


"그러니까 들르라는 거지. 아무리 피곤해도 잊어버릴 게 따로 있지"


"(잠깐 머뭇거리다) 잊어버리긴 누가 잊어버리냐? 그냥 피곤하다는 거지"


영훈은 진혁의 30년 지기 친구이다. 영훈은 어렸을 때부터 진혁과 가장 친한 단짝이었고, 너무 다른 성격이기에 오히려 서로 궁합이 잘 맞는 사이였다. 교회 학생회 시절에도 영훈은 학생 회장으로, 진혁은 총무로 항상 환상의 호흡을 자랑했다. 영훈은 큰 그림을 잘 그렸고, 진혁은 디테일에 강했다. 30년을 넘게 함께 생활하면서도 평소 사소한 말다툼조차 해본 적이 없을 정도로 둘은 잘 맞는 편이었다. 


영훈의 생일은 5월 8일 어버이날이다. 하필 이번 어버이날이 일요일이고 하니 아마도 토요일에 미리 다들 모인 듯했다. 사실 진혁은 바쁘게 사느라 영훈의 생일을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이다. 말은 퉁명스럽게 했지만 미안한 마음에 바로 모임 장소로 달려갔다. 그곳에는 이미 친구들이 모여 한 바탕 술자리가 벌어지고 있었다. 친구들은 오래간만에 모든 걸 내려놓고 신나게 놀았다. 마치 내일이 없는 사람들처럼. 


그렇게 시간이 흘러 어느덧 새벽 1시. 모두 집으로 돌아가고 영훈과 진혁 둘이 남게 되어, 조용한 바에 자리를 잡았다. 평소의 영훈이라면 이미 술이 엄청 취해서 헛소리를 한창 늘어놓을 시간이지만, 그날만큼은 희한하게도 꽤나 멀쩡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너 만약 회사를 차린다면 돈이 얼마나 들겠냐?"


평소에는 입에서 나오는 말 중 헛소리와 장난이 90% 이상인 영훈이었지만, 그래도 홈쇼핑 쪽 사업에 큰 성공을 거두어 나름 탄탄한 입지를 몇 년째 이어오던 중견 기업인이었다. 그런 영훈은 평소 진혁의 능력이나 실력에 대한 무한 신뢰가 있었던 터라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다가 오늘에서야 어렵게 말을 꺼낸 것 같았다.


"못해도 직원 7명에 1년 동안 투자한다 생각하면, 행사 선금까지 감안해서 최소 5억은 필요하지"


전혀 예상치도 못한 영훈의 기습적인 질문이었지만 진혁은 특유의 빠른 계산력으로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바로 답을 내놓았다. 마치 원래부터 준비를 하고 있었다는 듯이... 진혁이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의 대표는 아니지만 거의 모든 살림살이를 도맡아 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 정도 계산은 어렵지 않게 할 수 있었다.


"오우, 생각보다 많이 드네. 한 3억 정도면 명함도 못 내미는 거야?"


"사실 뭐 안될 건 없지. 최악의 경우 1년 동안 제대로 된 결과물이 나오지 않을 때를 대비해 5억 정도가 필요하다는 거지, 중간에 행사 한 두 개만 따면 3억으로도 1년은 충분히 버틸 수 있지. 그렇게 최소 2~3년은 버텨내야 수익은 그 이후에나 바라볼 수 있을 거고. 조급하게 생각할 거면 시작도 안 하는 게 좋아. 너도 처음 3년 동안 나한테 500만원도 빌려가서 한동안 못 갚고 그랬잖아. 새끼야 ㅋㅋㅋ"


진혁은 자못 진지해진 분위기를 바꿔보려고 시답잖은 추억을 꺼내어 농담을 던졌지만 영훈은 그런 진혁의 농담에도 불구하고 쓸데없이 비장한 태도를 유지했다.   


"오케이, 그럼 초반부터 좀 타이트하게 관리해서 성과를 내는 것을 목표로, 우리 회사에서 3억 정도 투자하는 걸로 하고. 나랑 사업 같이 니 사업 한 번 해보자."


이런 얘기를 꺼내기 위해 일부러 취하지 않은 건지, 아니면 술김에 즉흥적으로 내뱉은 것인지 영훈의 명확한 의중을 알 수가 없었으나, 진혁 역시 살짝 취기가 오른 상태였기에 마음이 이미 심하게 요동치고 있음을 스스로 느낄 수 있었다. 남자 나이 40이 되면 누구나 자기 사업에 대해 없던 욕심도 생긴다고 하지 않던가. 그런데 이런 좋은 기회를 마다할 사람이 누가 있을까?


"음… 일단 콜! 나도 여기저기 확인도 좀 해보고, 전체적인 시장 상황 좀 체크하고 나서 정리해서 회사로 한 번 갈게. 같이 일 할 사람도 필요하고, 일 줄 사람도 필요한 거니까. 우선 이런저런 거 먼저 빠르게 확인하고, 다시 얘기하자"


진혁은 애써 최대한 담담한 척 이야기했지만, 사실 마음은 이미 멀리멀리 앞서 나가고 있었다. 다시 올 수 없을지도 모르는 기회. 하지만 현재의 안정적인 직장을 버리고 엄청난 모험을 시작해야 하는 중대한 갈림길에서 아주 미세하게 도전을 향해서 방향이 틀어져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 다음 화에 계속...



#창업 #창업스토리 #창업분투기 #스타트업 #투자 #직장생활 #회사생활 #사회생활  

이전 01화 지옥에서 사옥까지 - Prologue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