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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심 작가 진절 May 04. 2024

불행을 즐겨라.

'인생은 새옹지마'라는 아주 식상하지만 상식적인 이야기

왜 유독 나에게는 이런 일이 자주 벌어지는지 참 신기할 따름이다. 우리의 삶에는 늘 행복보다는 불행한 사건들이 더 많게 마련이다. 그런데 나에게 있어 불행이라고 여겼던 대부분의 일들은 반드시 더 큰 보상으로 돌아왔다. 상황이 그렇다 보니 이제는 불행하다 할 만한 일들이 생기면 '아니 또 얼마나 좋은 일이 생기려고 이러나'하는 마음이 들 정도이다. 사람의 인생이란 게 한 번 긍정의 방향으로 몸을 돌리고 가면 어지간한 일이 아니고서야 계속해서 긍정적인 생각을 하게 되고, 결국 그것이 나의 삶을 행복으로 이끌게 되는 것이다.


작년 연말부터 시작된 직원들의 퇴사 러쉬에 결국 이 넓은 사옥에 나 혼자 남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전에 브런치를 통해 털어놓은 적이 있었다. 사실 그때는 왜 갑자기 나한테 이런 시련이 오는 것인가 하고 잠깐 좌절했지만 이내 툭툭 털고 일어나 내가 해야 할 일들을 찾아서 묵묵히 수행해 나갔다. 때마침 글로벌 경기 침체와 더불어 한국의 장기적인 불황이 이어져 직원들이 남아있었다면 자칫 큰 손해를 감수해야 할 상황이었다. 아쉬운 마음이 컸던 한편 어쩌면 타이밍 좋게 홀로서기를 하게 된 셈이 되었다. 


그렇게 혼자가 되고 나서 일단 1층 카페 운영자 분과 원만하게 합의를 하여, 2월 말까지 운영하고 매장을 철수하는 것으로 방향을 잡았다. 1층을 포함한 전층이 공실로 비워지자 통임대를 비롯하여, 사옥 매입 등의 문의가 빗발쳤다. 여러 팀들이 답사를 하고 갔고 최종적으로 유명한 트로트 프로그램 제작사가 6개 층 전체를 임대하는 괜찮은 조건으로 계약을 마쳤다. 직원들 다 떠나고 비어있는 건물을 보며 대출이자의 압박을 느낄 새도 없이 제일 큰 문제가 곧바로 해결되었다. 


새로 통임대하는 회사에서 내건 조건이 몇 개 있었는데, '1층 카페 시설 철거'와 '건물 전체 방수문제'였다. 1층을 카페가 아닌 미팅룸과 연습실, 회의실 등으로 사용한다는 이유로 기존 카페 관련 시설을 모조리 철수해 달라고 했다. 또한 고가의 장비들이 들어올 예정이라 방수에 철저히 신경 써 달라고 요청해 왔다. 사실 1층 시설은 비싼 돈을 들여서 진행한 것이고 만약 카페로 임대했다면 시설/권리금으로 2-3천만 원은 받을 수 있는 상황이어서 철거하기엔 좀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임차인의 요구에 어쩔 수 없이 철거를 결정했다. 


1층 시설 철거 자체는 어려운 일이 아니었으나, 사실 방수 문제는 좀 골치 아픈 문제였다. 2년 전부터 건물 여기저기에 누수가 생기기 시작했는데 정확한 원인을 찾지 못한 상태로 땜질식으로 대처하고 있던 실정이었다. 옥상 방수 공사, 건물 주변 추가 실리콘 방수 등 큰 비용을 들여 여러 차례 방수에 대한 대비를 했으나 완벽히 잡지 못하고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그렇게 여러 가지 방수 공사를 진행하던 중 입주일이 다가오자 1층 카페 시설을 철거하던 중 충격적인 장면을 목격하고 말았다. 카페 싱크대를 비롯한 시설들을 철거하고 나니, 그 벽에 가려져 있던 배수관이 빠져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사이로 새어 나온 물들이 1층 곳곳으로 퍼져나가 지하로 연결된 배수관 틈으로 새어 나오고 있었던 것이다. 가장 메인 T자 배수관이 빠져있으니 1층과 지하가 날이면 날마다 물바다가 되는 게 전혀 이상할 게 없었다. 


정말 건물의 누수 문제와 더불어 1층 카페 시설 철거라는 2가지 악재가 한 방에 해결되는 결정적 순간이었다. 새 임차인의 카페 시설 철거 요청이 아니었다면, 영구 미제 사건으로 남을 뻔한 아찔한 상황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다소 까다로운 건 아닌가 생각했던 새 임차인 분들이 천사로 보이기 시작했고, 속으로 오히려 감사한 마음을 가졌다. 


모든 직원들의 동시다발적인 퇴사라는 최악의 상황은 장기 불황 시대에 리스크를 줄여 주는 감사한 상황으로 변해버렸고, 조금 아깝다고 생각했던 카페 시설 철거는 건물 누수를 해결하는 결정적 신의 한 수가 되어버렸다. 이뿐만 아니라 오랜 시간 동안 나는 많은 불행한 상황을 겪었으나 결국 대부분 나에게 도움이 되는 상황으로 마무리되는 경우가 반복됐다. 단지 운이 좋아서..라고 생각하기보다는 꾸준히 노력하고, 고민하고, 최대한의 긍정적 사고를 바탕으로 삶을 능동적으로 살아가다 보니 운까지 따라 주는 것인 듯하다.


<빠져버린 배수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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