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싹수가 노란 녀석들
진혁과 민섭은 중학교 시절 동네 작은 교회에서 처음 만났다. 작은 교회의 학생회 중등부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하며 그럭저럭 친하게 지내왔다. 그러다 고등학생이 되던 해 여름, 민섭이 교회에 영훈을 처음 데리고 왔고 그때부터 셋은 본격적으로 붙어 다니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얼마 후 고등학교 2학년을 얼마 앞두고 고등부 학생회장 선거가 치러졌다. 전통적으로 2학년이 학생회장을 맡아왔기 때문에 이제 2학년이 되는 진혁과 민섭이 학생회장의 강력한 후보로 점쳐졌다. 이제 교회에 나온 지 6개월도 채 안 되는 영훈도 예의상 후보에는 올랐으나 진혁과 민섭 중에서 누가 회장이 될 것인가에 관심이 쏠렸다.
투표가 끝나고 개표가 시작되자 사람들은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이제 6개월도 안된 영훈이 압도적인 표차로 학생회장으로 당선이 된 것이다. 성실함과 친화력으로 모든 교회의 궂은일을 도맡아 하던 진혁은 2등을 차지했고, 가장 오랜 기간 교회에 몸 담았던 민섭은 고작 5표로 3등이 되었다. 교회의 내부 규정상 영훈은 학생회장을, 진혁은 총무를, 민섭은 서기를 각각 맡게 되었다.
영훈조차도 자신의 당선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영훈은 교회에 나오기 시작하면서 특유의 엄청난 친화력으로 많은 친구들, 선후배들은 물론 어른들의 사랑을 빠르게 흡수하였다. 더구나 영훈은 깔끔한 외모와 더불어 단정한 패션, 화려한 언변 등 사람들에게 어필할 요소들을 많이 가지고 있었다. 반면 상대적으로 경제적 여유가 없었던 진혁과 민섭은 그 성실함과 꾸준함을 검증받았으나 외형적으로 돋보이는 부분이 적다 보니 인기투표에 불과한 학생 회장 선거에서 어이없는 패배를 당한 것이다.
이긴 사람도, 진 사람도, 투표를 했던 사람들도 모두가 깜짝 놀랄만한 결과 앞에 잠시 어안이 벙벙했으나, 이내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영훈을 한 목소리로 축하했고, 진혁과 민섭을 위로하며 다시금 어색한 분위기를 추스르며 마무리되었다. 하지만 진혁의 표정은 그리 밝지만은 않았다. 지난 4년 동안 학생회 일을 하면서 누구보다 열심히 내일처럼 챙겼던 그였기에 충격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물론 학생회장을 위해 열심히 한 것은 아니었으나 막상 압도적인 결과를 받아 들고 보니 자신에 대한 자괴감과 더불어 영훈에 대한 약간의 질투심 비슷한 것이 가슴 깊숙한 곳에서 또아리를 틀게 되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영훈은 결국 지방 국립대에 입학해 지방으로 떠났다. 진혁은 재수 끝에 서울에 있는 H대에 합격했고, 민섭은 고등학교를 마치고 바로 취업 전선에 뛰어들었다. 그렇게 이곳저곳으로 갈린 채 좀처럼 만나기가 어려웠던 세 친구는 방학이 되면 하루가 멀다 하고 포커판을 열었다.
"말삥"
"이 새끼는 맨날 말로만 삥이야. 그거 아껴서 집 살래? 말삥 받고 레이스 천 원"
"음... 천 원 받고 천 원더"
"이 매너 없는 새끼. 장고하고 레이스 하는 개매너가 어디있어?"
"무슨 장고를 해 내가?"
"음... 하면서 뜸을 들였잖아. 레이스는 안돼! 콜만 받던지 죽던지 해."
"미... 미친놈 아니야?"
그들의 레이스는 이렇게 늘 티격태격하며 순조롭게 넘어가는 판이 없었다. 판돈은 그야말로 병아리 콧구멍 보다 작았지만 그들에게는 전 재산에 다름없는 돈이었기에 한 판 한 판 매우 신중할 수밖에 없었다. 학교에 다니는 친구들과는 달리 알바를 하며 돈을 벌고 있는 민섭 조차도 방학 때면 친구들과 놀아야 해서, 정식으로 일을 한다기보다는 단기 알바를 전전하며 하루하루를 근근이 살아가고 있는 상황이었다.
영훈은 무모하다 싶을 정도로 베팅으로 전체 판을 쥐고 흔드는 스타일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다른 친구들에 비해 비교적 금전적 여유가 있는 편이기에 돈에 대한 조바심 같은 것이 적었고 베팅을 할 때도 시원시원하게 지르는 편이었다. 성적은 다소 기복이 있는 편이었으나 그래도 항상 잃지는 않았다.
반면 진혁은 특유의 전략적 사고와 더불어 어릴 적부터 쌓아온 조기교육 덕분인지 매우 신중하고 치밀한 전략으로 판을 주도했다. 솔직히 진혁의 입장에서는 친구들과의 이런 포커판이 시시하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초등학생들과 시합을 하는 대학생 같은 느낌이랄까? 그래서인지 일부러 흐름을 조정하면서 티 나지 않게 실리를 챙긴다. 너무 혼자서 달려버리면 손님들이 달아나 버릴 것 같은 느낌이었기에 영훈이나 민섭 쪽으로 판의 무게를 살짝 옮기기도 했다.
민섭은 포커판에서 눈에 띄는 스타일은 아니었다. 매사에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플레이했다. 말하자면 영훈과는 정반대라고 할 수 있는데 크게 따지는 못하지만 또 크게 잃지도 않는 장점이 있다. 아무래도 가정 형편상 돈의 소중함에 대해 누구보다 간절한 상황이 그의 성격과 맞물려 그런 플레이 스타일을 만들어 낸 것으로 보였다.
어쨌든 포커판이 끝나면 늘 영훈, 진혁, 민섭의 승리로 끝이 났다. 세 사람의 순서는 매번 바뀌긴 했으나 셋의 승리 비율이 높다는 것만큼은 변함이 없었다. 영훈은 압도적 1등 아니면 3~4등, 진혁은 주로 2등을 하거나 근소한 1등 정도, 민섭은 2~3등을 오가는 성적을 거뒀다. 포커의 성적도 결국 본인의 플레이 스타일이나 성격과 매우 비슷한 결과를 냈다는 점이 매우 흥미로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