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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심 작가 진절 May 19. 2024

[본격 홀덤 소설] 파이널 테이블 #02

#2. 세 친구 이야기

ㄹ[1] 영훈 이야기


"이 놈의 새끼는 친구를 잘못 사귀어서 멀쩡하던 애가 어쩌다 이 지경이 된겨"

"아냐 엄마, 친구들 때문이 아니고 그냥 내가 공부가 싫어진 거야"

"아니긴 뭐가 아니여. 어? 그 진혁인가 뭔가 하는 놈 만나고 나서부터는 성적이 이게 뭐여. 연대는커녕 서울 안에도 못 가게 생겼잖여."

"무슨 소리야. 그냥 시험이 수능으로 바뀌면서 내가 적응을 못한 거야. 진혁이는 오히려 수능으로 바뀌면서 성적이 계속 올라가는데.."

"시끄러워 이 새끼야! 아무튼 만나지 말라면 만나지 마. 다리몽둥이를 분질러 버릴라니까"


영훈은 중학교 때까지 학업 성적이 늘 상위권이었다. 서울대까지는 어렵더라도 최소 연고대 정도는 갈 수 있으리라 기대했던 영훈의 부모님은 갈수록 떨어지는 아들의 성적을 보면서 한숨이 나왔다. 영훈은 민섭과는 중학교 때부터 친하게 지냈었고, 고등학교 진학하면서 진혁을 만나 본격적으로 셋이 어울려 다니기 시작했다. 우연찮게도 그때부터 성적은 곤두박질 치기 시작했고, 영훈의 부모님은 진혁을 원망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영훈의 말처럼 중학교 때 별 볼 일 없는 성적이던 진혁은 고등학교에 들어가면서 점점 오르기 시작하더니 인서울 대학에 간신히 갈 정도 수준으로 올라갔기에 마냥 진혁의 탓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사실 영훈의 성적이 떨어진 건 크게 2가지 이유가 따로 있었다. 


첫 째로는 학력고사에서 수능으로 바뀌면서 제대로 적응하지 못해서이다. 내신은 일정 수준을 유지하지만 수능 모의고사만큼은 중간에도 못 미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었다. 반면 진혁은 내신이 어중간한 성적이었으나 수능은 항상 반에서 5등 이내, 전교 50등 이내를 유지했다. 진혁에게는 수능으로의 입시제도 변경이 엄청난 기회가 되었던 것이었다.


두 번째 이유이자 가장 결정적 이유는 본격적으로 포커의 세계에 빠져들었기 때문이었다. 고등학교에 올라오면서 처음에는 룰도 제대로 모른 채로 시작했지만 어느새 포커의 매력에 푹 빠져버리고 말았다. 영훈은 중학교 때까지 공부 밖에 모르는 아이였다. 딱히 다른 취미가 없기도 했지만 그냥 습관적으로 공부를 했고 결과는 늘 상위권이었다. 그러던 영훈이 포커의 매력에 빠지면서 유일한 취미였던 공부를 뒷전으로 내팽개친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다. 


고등학생의 용돈이란 게 거기서 거기일 테지만 그 작디작은 돈들을 걸고 밤마다 펼쳐지는 승부의 매력에 푹 빠져 헤어 나올 수가 없었다. 중학교 때까지 착실히 모았던 돈까지 곶감 빼먹듯 빼먹으면서 비싼 수업료를 갖다 바치곤 했다. 물론 수업료를 헌납한 곳은 다름 아닌 진혁과 민섭이었다.




[2] 진혁 이야기


"진혁아, 커피 한잔만!"

"혁아, 라면 좀 한 개 끓여봐라!"

"아들, 나가서 담배랑 소주 한 병만 사 올래?"


진혁의 집은 늘 사람으로 가득했다. 좁아터진 집이었지만 매일 같이 많은 손님들이 방문을 했다. 진혁의 엄마는 새벽에 아파트 세차일을 다니고는 11시쯤 집에 돌아왔다. 이런저런 집안일을 마치고 점심시간이 지날 때쯤 하나둘씩 진혁의 집으로 모여들곤 했다. 워낙 사람을 좋아하는 진혁의 엄마는 새벽일을 마치고 피곤한 몸이었지만 오는 손님들을 정성껏 맞이했다. 


엄마의 친구들이 모이면 늘 술과 함께 빠지지 않는 것이 고스톱 판이었다. 하우스라고 하기엔 너무 초라했지만 매일 1~2개 팀의 고스톱판이 만들어졌고, 매판마다 약간씩의 고리를 떼어 고리통에 넣었다. 그렇게 모인 돈은 진혁의 엄마가 개인적으로 갖는 게 아니라 각종 요리를 만드는 재료 사는데 들어갔기에 공식 하우스에서의 타임비와는 전혀 다른 성격의 돈이었다.


중학생이던 때부터 진혁은 학교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서는 항상 동네 이모, 삼촌들의 심부름을 도맡아 하며 귀여움을 독차지했다. 물론 약간의 '뽀찌'를 받는 즐거움은 덤이었다. 공부를 잘하는 편은 아니었으나 엄마의 피를 그대로 물려받은 진혁은 중학생 답지 않은 능청맞음으로 엄마를 도와 손님들을 맞이하는 일은 담당했다. 그렇게 어깨너머로 고스톱을 배운 진혁은 고등학생이 돼서는 가끔씩 멤버가 부족할 때 자리를 채우는 등 조기교육의 효과를 보기도 했다. 


진혁은 원래부터 숫자와 셈에 빠른 편이었는데, 수많은 고스톱 판을 경험하며 그 능력치가 많이 업그레이드될 수 있었다. 그렇게 진혁이 고1이 되던 해 입시제도가 수능으로 바뀌면서 뜻하지 않게 진혁의 성적은 상위권으로 도약할 수 있었고, 급기야 인서울 가능권까지 올라가게 되었다. 특히나 수학 과목의 경우 거의 만점에 가까운 점수를 받아서 전체 석차를 올리는데 큰 기여를 했다. 진혁의 부모님은 학원도 한 번 제대로 보내주지 못한 아들한테 항상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으나 진혁은 혼자서 공부하는 것이 훨씬 좋다며 부모님을 오히려 달래주곤 했다. 




[3] 민섭 이야기


"엄마 일 갔다 올게 민섭이 혼자 잘 있을 수 있지?"

"응, 엄마! 내가 어린애도 아니고 너무 걱정하지 말고 조심해서 잘 갔다 와."

"엄마한테는 항상 애기지. 우리 애기 호호호. 엄마 갔다 올게"


민섭은 서울에서도 아주 유명한 달동네에서 미혼모인 엄마와 단 둘이 살고 있었다. 엄마는 민섭에게 아빠는 해외에서 일하고 있다고 거짓말을 했지만, 중학생이 되고 나서야 민섭은 그게 거짓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처음부터 아빠는 없었으며 엄마가 혼자서 자신을 키워준 걸 알게 되었지만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아빠에 대한 분노 보다 엄마에 대한 고마움에 꼭 엄마를 행복하게 해 주겠다는 다짐을 했다. 


중학교 때부터 가장 친하게 지냈던 영훈은 같은 동네였지만 사는 환경이 전혀 달랐다. 달동네 중에서도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민섭과는 달리 영훈은 언덕 중턱에 위치한 조그만 정원이 딸린 2층집에서 살고 있었다. 중산층에서 자란 영훈은 어려서부터 공부를 참 잘했고, 민섭은 그런 영훈을 항상 동경하며 따라가려 했으나 여러 가지 현실이 벽에 부딪혀 어정쩡한 성적을 거둘 뿐이었다.


고등학교에 진학하며 진혁을 만나며 셋은 늘 한 몸처럼 붙어 다녔다. 특히 진혁을 통해서 포커라는 것을 접하고 나서는 포커의 매력에 흠뻑 빠져 버렸다. 당구에 미친 사람이 자려고 누우면 천정에 당구대가 자연스럽게 그려지는 것과 같이 민섭은 자려고 방바닥에 누울 때마다 포커 테이블이 촤르륵 펼쳐졌다. 그 상상 속에선 항상 히든카드에 아쉽게도 메이드가 되지 않거나 약한 메이드가 돼서 상대방에게 한 끗차이로 밟히는 일이 반복되곤 했다. 


민섭이 포커에 빠지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자신의 암울한 상황을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공부를 잘하는 것도 아니고, 머리가 좋은 것도 아니고, 형편이 좋은 것도 아니었기에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자신이 엄마를 위해, 또 자신의 미래를 위해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을 포커라고 굳게 믿었다. 더구나 대담하게 게임을 펼치는 영훈, 빠른 계산과 판단력을 가진 진혁, 그리고 위험과 안정의 균형감을 갖춘 자신이 함께 한다면 거칠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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