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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이엠 저리킴 Jun 02. 2024

[본격 홀덤 소설] 파이널 테이블 #04

#04. 조기 교육의 효과

12월 초임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온통 하얀 눈밭이 되었고 이른 한파가 몰아치고 있었다. 하지만 학교 때문에 지방에 내려갔던 영훈이 서울로 복귀했다는 소식을 들은 친구들은 추운 날씨에도 아랑곳없이 삼삼오오 영훈의 집으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영훈의 집은 동네에서 보기 드문 2층집이었고, 아래층에 조그만 쪽방 같은 게 있어 그들의 아지트로 삼기에 충분했다. 영훈이 학교를 다니는 기간에는 아지트가 사라지기에 모두들 영훈의 종강일을 손꼽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종강한 지가 언젠데, 왜 이렇게 늦게 온 거야?"

"야, 그제 종강하고 학교 친구들하고 종강 파티하고 바로 다음 날 아침에 출발한 거 아냐. 고속버스에서 토할 거 같아서 죽을 거 같았는데도 꾸역꾸역 올라왔더니만 한다는 소리가 고작 그거냐?"

"아니 난 모르겠고, 너를 기다리는 저 12개의 초롱초롱한 눈빛이 안 보이냐고."

"그래 이 새끼야. 시험 끝나는 그 순간 바로 터미널로 달렸어야지. 의리도 없는 새끼"

"아니 솔직히 니들이 나 기다린 거냐? 우리 아지트 열리는 거 기다린 거지. 누굴 등신으로 아나.."

"아무튼 오늘은 애들이 다 모일 거 같으니까 종목을 좀 바꾸긴 해야 할 거 같아."


친구들이 모이기 전 영훈, 진혁, 민섭은 조금 일찍 만나서 점심을 먹으며 이런저런 덕담을 주고받았다. 여느 친구들과 마찬가지로 험한 말들이 오갔지만 그 모든 것이 반가움의 과장된 표현이라 것쯤은 서로 잘 알고 있었다. 점심을 먹고 아지트로 옮겨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친구들이 하나둘씩 모여들기 시작했다. 5시도 채 되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모두들 이날만을 기다려왔다는 듯 서둘러 집결했다.


영훈, 진혁, 민섭, 언생이, 개태, 꼽스리, 익동이까지 모두 7명이었다. 민섭을 제외하면 모두들 학생의 신분이었지만 겨울잠을 위해 가을에 닥치는 대로 먹어대는 곰처럼 겨울 방학 레이스를 위해 여름부터 가을까지 열심히 알바를 하며 조금씩 돈을 모았기에 3~4년 전에 비하면 아주 조금 판의 크기가 커졌다. 그래도 여전히 학생의 티를 벗어날 정도는 아니지만..


7명이나 모였기에 정상적으로 7-오디를 진행하기엔 어려움이 있었다. 그래서 진혁이 나서서 종목을 도리 짓고 땡으로 정했다. 그것도 개인별 베팅 방식이 아니라 카지노처럼 딜러와 대결하는 방식으로 하되, 딜러는 돌아가면서 맡기로 했다. 보통 이런 딜러 로테이션 방식은 딜러가 ①세팅한 금액을 다 잃거나, ②반대로 세팅한 금액이 3배가 되거나 ③최대 10판이 지나면 다음 사람에게 딜러가 넘어가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진혁은 늘 그래왔듯이 익숙하게 시작 전 룰을 다시 한번 설명했다.


"자, 시작 전에 다시 설명할 테니까 잘 들어. 일단 화투장 48장 중에서 똥과 비를 제외하고, 껍데기까지 빼고 총 20장으로 할 거야."


"딜러가 정해지면 딜러는 20장의 화투를 총 4개의 패로 나눌 거야. 딜러를 제외한 나머지 플레이어는 딜러의 패를 제외한 3개의 패 중 선택해서 베팅할 수 있어. 각각의 패는 한 장만 오픈될 거야."


"자, 시작 전에 다시 딱 한 번만 설명할 테니까 잘 들어. 일단 딜러가 정해지면 딜러는 20장의 화투를 총 4개의 패로 나눌 거야. 플레이어는 딜러의 패를 제외한 3개의 패 중 선택할 수 있어. 연습게임 돌아간다."

"BET 1~3 중 오픈된 대가리 패만 보고 아무 곳이나 베팅할 수 있고 당연히 중복 베팅도 가능해. 5장 중 3장으로 10, 20, 30을 '짓고', 남은 2장의 끗수로 딜러하고 승부를 거는 거야. 만약 아무것도 못 지으면 '황'이되 되는 거고 딜러의 패와 관계없이 무조건 지는 패가 된다. 그만큼 딜러가 유리한 게임이지만 만약 땡이 나오면 2배, 광땡이 나오면 3배를 딜러가 베팅한 사람한테 주면 되는 거야. 섯다에서 쓰는 땡 이하 족보 알리(1-2), 구삥(1-9), 쎄륙(4-6) 같은 건 인정 안 하는 건 당연히들 알 테고.."

"자, 5개월 만에 다 잊어버린 건 아니지? 빨리 계산들 해봐"

"딜러가 5-6-9 짓고 8끗이라서 1번, 3번에 베팅한 건 딜러가 다 먹고, 4-6-10 짓고 2땡이 나온 2번 베팅한 건 2배로 토해내야 되는 거야. 만약 모두 천원식 베팅했다면 이번 판 딜러는 본전이 되겠네. 다들 이해했지? 이제 바로 실전 들어간다. 딜러는 나부터 시작할게. 딜러 세팅 금액은 2만원! Let's go!"


진혁이 딜러가 되어 판을 시작했고 진혁은 착실하게 돈을 쌓아가기 시작했다. 2만원 세팅 금액으로 시작한 돈은 어느새 5만원을 훌쩍 넘어가고 있었다. 진혁의 입장에서는 순조롭게 진행이 되고 있었는데 갑자기 분위기가 이상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보통 액면에 광이 깔리거나, 장(10)이 깔리면 거기에 많이 베팅을 하는 게 일반적이다. 이번 판에도 바닥에 3광이 깔렸고 민섭, 개태, 언생이가 광에 평소보다 높은 금액을 베팅했다. 그때까지는 진혁도 크게 신경 쓰지 않았으나 베팅이 종료되고 패를 하나씩 뒤집기 시작하면서 진혁의 등에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워낙에 계산이 빠른 진혁은 패가 뒤집어 지자 마자 큰일이 났음을 직감했다. 진혁도 2-8-10으로 짓기는 했지만 3끗에 불과했고 나머지 3개의 패 모두 진혁보다 높은 패로 메이드 된 것이었다.

이대로 판이 종료된다면 진혁은 '1번패 8,000원 * 3배 = 24,000원'과 '2번패 5,000원 * 2배 = 10,000원', '3번패 1,000원'까지 도합 35,000원을 한 번에 물어줘야 할 상황이었다. 순간 진혁의 눈에 기가 막힌 아이디어가 떠올랐고, 패가 오픈됨과 동시에 이렇게 빠르게 계산하는 건 진혁 밖에 없었기 때문에 더 지체되기 전에 판을 진혁의 방식대로 정리해야만 했다. 


"야~ 이거 이 판에 완전히 뒤집어썼구먼.. 나는 고작 3끗인데, 여기도 4끗, 여기도 5끗에, 여기는 4땡에 아이고.. 망했네 망했어. 벌어 놓은 거 다 까먹었네 젠장."


진혁은 이렇게 너스레를 떨고는 친구들의 눈치를 쓱 살폈다. 아무도 이상하다고 느끼는 사람은 없는 것으로 보아 완벽하게 작전이 먹힌 것으로 보였다. 

1번패를 5-6-9 짓고 광땡에서, 1-3-6 짓고 4끗으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2번패의 4땡은 어찌할 수 없었지만 광땡만큼은 무조건 막아야 했다. 순식간에 계산이 이루어지는 바람에 다른 친구들은 전혀 눈치를 채지 못했고 오히려 간발의 차로 이겼다는 사실에 만족하는 분위기였다. 진혁은 진상이 밝혀지기 전에 얼른 판을 섞으면서 재차 중얼거렸다. 


"10판 만에 겨우 2만원 조금 넘게 먹었는데 이 판에 19,000원이 나갔으니 10판을 공쳤네. 개빡치네.."


진혁은 그때까지 총 3만원을 벌고 있었지만 본능적으로 2만원을 벌고 있다고 구라를 쳤다. 원래대로라면 한판에 총 35,000원이 나갔어야 했는데, 광땡을 4끗으로 만들어 버리는 바람에 19,000원으로 무려 16,000원의 지출을 막아 아직도 1만원 이상의 수익을 내는 상황으로 만들었다. 진혁은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마음속으로 잔머리 팍팍 돌아가는 재능을 주시고, 또 조기교육을 빡세게 시켜주신 진혁의 어머니께 감사한 마음을 가졌다.


진혁이 그렇게 능청스럽게 패를 섞으며 농을 던지는 가운데, 친구들 중 영훈만이 뭔가 납득이 되지 않는 듯 꺼림칙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우뚱거렸지만 결국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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