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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심 작가 진절 Jun 17. 2024

[본격 홀덤 소설] 파이널 테이블 #06

#06. 게임을 지배하는 자

영훈의 방학을 맞아 오랜만에 벌어진 판이라 7명이나 모인 상황이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도리짓고 땡을 하게 되었고, 모든 판이 끝이 난 후 정산 결과를 보니 진혁의 압도적 승리였다. 포커나 하이로우 등의 카드 게임은 패가 거지 같아도 베팅으로 죽이고 살리고 가 가능하기에 운과 더불어 베팅 실력도 못지않게 중요한 요소이다. 반면 도리짓고 땡은 오로지 대가리 패 1장만 보고 베팅을 하고 나면 더 이상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이 없기에 순수 99% 운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게임이지만, 진혁만큼은 도리짓고 땡에서 간간히 트릭과 구라를 통해 몇 번의 위기를 스스로 헤쳐나가며 얻어낸 결과였다.


*진혁 : +45,000원

*언생이 : +12,000원

*영훈 : +5,000원

*개태 : +5,000원

*꼽스리 : -8,000원

*익동 : -9,000원

*민섭 : -50,000원(오링)


민섭은 진혁의 구라가 섞였던 그 판에서 충격적인 패배를 기록한 후 좀처럼 회복하지 못하고 이내 오링이 되어 한 시간여를 구경하는 신세가 되었다. 민섭의 경우 누구보다 가정 형편이 어렵다 보니 늘 신중하게 플레이하며 3위권으로 약간의 승리를 기록하는 편이었는데 치욕적인 대패를 기록하게 되며 망연자실하고 있었다. 물론 판이 끝나고 나면 위너들이 30~50% 정도를 개평으로 주는 관행이 있어 일부 금액을 돌려받기는 했지만 자존심과 자신감이 한꺼번에 무너지는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마지막까지 민섭은 진혁의 구라를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오직 자신의 불운만을 탓하며 자책하고 있었다.


한편 영훈도 그 진혁의 실수(?)가 있었던 그 판 이후로 줄곧 신경이 쓰여 계산에 집중하다 보니 신통치 않은 결과지를 받아 들게 되었다. 계산과 게임을 동시에 하려니 도저히 게임에 집중이 되지 않는 자신을 보면서 새삼 진혁의 빠른 계산 능력과 게임에 대한 집중력이 보통이 아니라는 것을 느끼게 되는 하루였다. 비록 돈을 잃지는 않았으나 복귀 첫 경기에서 복병 언생이한테 밀려 3위로 내려앉은 것도 영훈은 기분이 좋지 않았다. 돈이야 늘 넉넉한 영훈이었기에 돈을 따고 잃고 보다는 진혁 혹은 민섭과 순위 경쟁을 하는 게 중요한 포인트였는데 민섭은 몰락했지만 진혁의 압승, 언생이의 2등이 영훈의 심기를 매우 불편하게 만들었다.


진혁은 가장 위기의 순간에 기지를 발휘해서 최소한의 피해로 막았고, 결정적 순간에 영혼을 담은 구라를 통해 압도적인 승리를 거머쥘 수 있었다. 진혁은 승리 못지않게 돈의 크기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오직 자신의 운과 실력(?)으로 판때기를 지배했다는 사실에 매우 흡족하고 있었다. 민섭에게는 미안한 마음이 들어 평소보다 조금 더 많은 2만원을 개평으로 주었고, 이후 술값에 만원을 추가로 보내며 총 1.5만원의 최종 수익을 올리며 기분 좋게 마무리했다. 친구들의 수준이 사실 너무 낮아 재미와 긴장감이 떨어지는 것은 사실이지만 아직까지 큰 판에 기웃거릴 만큼 자금도, 용기도 넉넉지 않아 친한 형님들이 노는 하우스에 가끔 들락거리며 안면 정도만 익히고 있는 상황이었다.




영훈이 서울로 올라온 지도 벌써 한 달이 다 되어가고, 첫 날 만큼의 열기는 아니었지만 하루가 멀다 하고 친구들은 영훈의 집으로 몰려들었다. 한 달이라는 시간 동안 대충 15~20번 정도는 판이 벌어졌는데 진혁은 1~2번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승리로 마감했다. 다만 오랜 기간 판때기가 유지될 수 있도록 진혁은 항상 압도적인 승리는 피하고 늘 2~3등 정도의 성적을 유지하며 매일매일 수익금을 적립해 나갔다.


그 기간 동안 대체로 영훈이 1등을 많이 차지했지만, 자금력을 바탕으로 한 무모한 베팅 때문에 잃을 때는 크게 잃는 경우도 많았다. 민섭은 늘 첫날의 충격을 극복하기 위해 부단히 애쓰며 늘 2~3등의 성적을 거두며 조금씩 성적을 끌어올리며 거의 본전에 근접한 상황까지 만들었다.


특이한 점은 진혁, 영훈, 민섭이 그런 성적을 거두는 동안 다른 친구들도 한 번씩 1등을 차지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했다. 물론 그들이 1등을 할 수 있었던 건 어느 정도 진혁의 작전이 들어간 결과였다. 진혁이 패를 바꾸거나 구라를 치는 것은 아니지만 일부러 져주는 식으로 특정인을 밀어줄 수는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성적이 특별히 부각되지 않도록 늘 쏠쏠한 2등 정도의 성적을 유지면서 다른 친구들에게 티 안 나게 큰 판을 몰아주며 1등으로 만들어 주는 전략을 쓰고 있었다.


예를 들어, 늘 3위~5위권을 유지하며 근근이 버티고 있던 언생이가 오랜만에 힘을 내며 2등을 하고 있었고, 진혁은 그보다 약간 앞선 1등을, 영훈은 초반 무리한 베팅으로 4등까지 밀려난 상태인 날이 있었다.


새롭게 패가 돌아가고 영훈은 2원페어(2♦︎2♥︎)를 들고 K♣︎를 오픈했고, 진혁은 Q원페어(Q♠︎Q♣︎)를 들고 7♦︎를 오픈했다. 언생이는 J원페어(J♦︎J♠︎)를 들고 역시 K♦︎를 오픈했다. 4구가 돌아갔고, 보스였던 언생이는 A♠︎, 영훈은 2♦︎가 떨어져 2트리플이 되었고, 진혁은 3♦︎가 떨어지며 별 볼 일 없는 패가 되었다. 보스인 언생이가 소심하게 베팅을 하자 영훈은 고민도 없이 바로 레이스를 돌렸다. 나머지 선수들은 일찌감치 패를 접었고 진혁이 콜, 언생이도 콜을 받았다.

진혁은 영훈의 평소 성격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K투페어나 트리플의 가능성을 보고 있었고 적어도 K원페이 정도는 들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또한 언생이의 바닥 패는 A♥︎K♥︎로 하이 카드를 깔고 가면서도 색깔까지 맞아 충분히 위력적인 포스를 풍겼다. 진혁은 자신의 패도 Q원페어라는 나름 강력한 페어를 손에 쥐고 있었지만 액면에 깔린 카드들의 면면을 보면서 우선은 조용히 따라가는 형태로 상황을 지켜보기로 했다.

5구째가 떨어지자 판이 한 번 술렁거렸다. 언생이는 A♥︎가 한 장 더 떨어지며 액면 A원페어가 되었고, 영훈은 7♣︎로 모양은 한 개 맞췄지만 크게 비전이 없는 패가 떨어졌다. 진혁은 영훈의 패가 최대 2트리플 정도로 예측하고 있었는데, 언생이에게 A가 떨어지면서 적어도 A투페어 최대 A트리플까지 예상을 할 수 있었다. 또한 진혁의 액면 역시도 다이아 3장이 깔리면서 상대에게 위협을 줄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었기에 여기서 한 번 치고 나가야 할지 고민하다 핸드 카드가 모두 검정색이라는 것을 감안하여 일단은 따라가는 쪽으로 정했다.


역시나 언생이는 A가 떨어짐과 동시에 레이스를 치고 나갔고, 진혁은 계획했던 대로 조용히 콜, 남의 패를 잘 안 보는 성격의 영훈은 리레이즈를 외치면서 판을 키웠다. 언생이 역시도 약간의 고민 끝에 콜을 받았다. 만약 언생이가 A트리플이었다면 무조건 되빠꾸를 쳤을 텐데 고민 끝에 콜을 한 것을 보면 분명 A투페어가 최대치일 거라고 짐작을 했다.

6구에서 또 한 번 격랑이 몰아쳤다. 언생이는 Q♥︎가 떨어지면서 A원페어에 하트 3장이 바닥에 깔리며 플러쉬 비전을 강력하게 주장했다. 반면 영훈은 6구에서도 신통치 않은 패가 깔리면서 다소 주춤한 상황이 되었다. 진혁에게는 5♦︎가 떨어지면서 액면 스티플 빵꾸의 강력한 기운을 뿜어 냈다.


액면 A원페어의 언생이는 적당한 선에서 베팅을 시작했고, 진혁은 고민 1도 없이 하프로 레이스를 이어나가며 이미 플러쉬 메이드 되었다고 강력히 주장하고 있었다. 영훈은 아직 2트리플인 관계로 이미 둘 중 하나는 이미 메이드가 되었다고 생각하며 급 태세전환하며 콜을 받았다. 하지만 트리플에서 히든에 날개를 달 거라는 강한 믿음을 버리지 않았고, 언생이 역시 아직 확실한 카드는 없는지 일단은 콜로 6구 베팅을 마무리했다.


만약 진혁이 플러쉬 메이드를 주장하며 레이스를 했을 때 만약 영훈이 K투페어 정도의 패였다면 고민 끝에 접었을 텐데 거기서 크게 고민하지 않고 콜을 받은 것을 고려했을 때 분명 2트리플일 가능성이 매우 높게 점쳐졌다. 하지만 히든에서 날개를 달지 못하면 언생이나 자신의 패가 스트레이트 혹은 플러쉬의 패로 읽혀지고 있기 때문에 베팅으로 영훈을 충분히 컨트롤이 가능할 거라고 생각했다.

히든카드는 모두에게 최악의 결과를 안겨 주었다. 영훈은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6♣︎가 나오며 2트리플에서 말랐고, 언생이 역시 K♦︎가 떨어지면서 AJ투페어에서 AK투페어가 되었지만 역시 크게 도움이 되는 패는 아니었다. 진혁 역시도 3♣︎가 떨어지며 플러쉬도, 스트레이트도 되지 않으며 Q투페어로 끝이 났다. 이제 마지막 승부는 베팅으로 갈리게 되는 상황이 되었다.


액면 A원페어로 여전히 보스인 언생이는 하프 베팅으로 씩씩하게 치고 나갔고, 진혁은 여전히 족보가 메이드 되었음을 주장하기 위해 따당으로 응수했다. 2트리플로 마른 영훈은 난감했다. 아무도 자신을 2트리플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뻥카로 풀하우스를 주장해도 아무도 그 외침을 알아채지 못할 게 분명했다. 날개가 붙어 풀하우스를 완성했다면 오히려 엮어서 먹기 좋은 상황인데 트리플로 말라 버린 것이 천추의 한이었다. 앞에 족보로 보이는 2명이 연속으로 레이스를 치고 나왔기 때문에 자신의 뻥카는 더 이상 의미가 없을 거라는 판단을 내렸고 결국 영훈은 패를 접을 수밖에 없었다.


진혁의 따당에 영훈은 죽고, 언생이는 움찔하며 한참 동안 고민을 때리다가 결국 울며 겨자 먹기로 콜을 했다.


"메이드면 먹어라. 나는 플러쉬도 안 뜨고, A투페어에서 말랐다. 젠장. AKJ 투페어가 뭐냐 재수 없게.."

"야이씨 아투로 그걸 콜을 받는다고? 미친놈이구만. 액면에 플러쉬고 스트레이트고 다 깔려 있는데.."

"뭐야 너 아무것도 안 뜬 거야? 그럼 뭔데?

"뭐긴 뭐야 니가 이겼지 나 마담 투페어.."

"..."


그렇게 서로의 패를 확인하고 결국 A투페어로 언생이가 그 큰 판을 차지하게 되었다. 언생이는 당연히 질거라 생각했었는데 얼떨결에 먹게 되어 얼굴이 잔뜩 상기되었고, 그것을 지켜보던 영훈은 트리플로 죽었다는 말도 못 하고 벙어리 냉가슴을 앓고 있었다. 진혁은 애초부터 이 판을 먹겠다는 생각보다는 영훈을 죽이는 걸 목표로 했었는데 다행히 영훈이 트리플로 끝나면서 자신의 계획대로 영훈을 죽게 만들 수 있었다. 자신도 적잖이 피해를 입기는 했지만 매일 잃기만 하던 언생이에게 기회를 몰아주며 포기하지 않도록 만들어주려는 한 가지 의도와 1등 뒤에 숨어서 2등으로 조용히 돈을 따겠다는 또 한 가지의 의도까지 동시에 이루어지는 순간이었다.


이번 한 판으로 말할 것도 없이 언생이는 압도적 1등으로 나서게 되었고, 진혁은 약 2~3만원 수준의 이익으로 2등을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영훈은 4등을 간신히 유지해 오다 이 판에 심리적, 금전적 타격을 입으면서 최하위권으로 떨어지게 되었다. 잠시 담배타임을 갖는 동안에 영훈은 진혁에게 조용히 다가와 하소연을 했다.


"아니 너는 고작 투페어로 그렇게 따당을 질렀단 말이야? 나는 너나 언생이나 둘 중 하나는 진카라고 생각했는데.."

"나는 액면이 너무 화려한데 손에는 엉뚱한 것만 들고 있으니까 일단 믿어달라고 계속 우기면서 지르는 수밖에 없었지 뭐.. 근데 결국 아무것도 안 뜨니까 뻥카 말고는 답이 없었으니까.."

"나는 당연히 둘 중 하나는 히든에 긁었을 거라고 생각하고 트리플로 죽었는데.."

"진짜? 너 트리플이었어?? K투페어에 포플러쉬로 따라오는 건 줄 알았는데 날개 달았으면 우리 둘 다 뒤질 뻔했네.. 트리플 들고 니 성격에 잘도 참았다 진짜. 완전 깜빡 속았네."

"아니 근데 투페어 싸움일 줄은 누가 알았냐고.. 오랜만에 큰 판이었는데 트리플로 뒤지다니.. 진짜 동네 사람들 알까 봐 걱정이다. 쪽팔려서 접시물에 코 박고 뒤지든지 해야지.."

"언생이도 그렇게 안 봤는데 아투로 따당을 받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와.. 독사 같은 시키.. 이거 먹었으면 압도적 1등으로 치고 나가는 건데.. 아오!!"


진혁은 자신이 트리플이라는 사실을 고백해 준 영훈이 눈물 나게 고마웠다. 자신의 예측이 맞았는지 너무 궁금하던 차에 아무 말 없이 판이 끝나버려 영영 영훈의 패를 확인하지 못할 줄 알았는데 뜻밖의 수확이었다. 포커판에서, 아니 모든 도박판에서는 내 패만큼이나 다른 사람의 패를 보면서 분석하는 능력이 필수적이다. 다른 친구들은 아직도 아마추어 수준도 안 되는 초보자들이라 그렇다 쳐도 꽤 경력이 있는 영훈조차도 그런 분석도 없이 무모하게 덤벼드는 것을 보니 아직 한참 멀었다는 생각이 들면서 또 한편으로는 고맙다는 생각이 들어 입술에 옅은 미소가 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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