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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심 작가 진절 Jun 09. 2024

[본격 홀덤 소설] 파이널 테이블 #05

#05. 영혼을 담은 구라

결국 진혁은 그렇게 자신의 딜러 차례에 큰 위기를 넘기고 난 후 큰 이슈 없이 2~3판이 지나 10판을 채우고 다음 사람에게 딜러를 넘겨주었다. 자신의 본전인 2만원에 추가 2만원의 수익을 올리며 깔끔하게 마무리할 수 있었다. 아까 그 판에서 만약 약간의 트릭을 쓰지 않았다면 본전에서 끝이 날 뻔했던 것이다. 


딜러는 계속 돌고 돌아가면서 민섭의 딜러 차례가 되었다. 민섭은 워낙 베팅할 때 안전하게 하는 편이라 플레이어로서는 항상 크게 따지도 크게 잃지도 않는 편인데, 자신이 딜러가 되었을 경우에는 다른 플레이어들의 베팅 금액을 조절할 수 없었기에 항상 불안해했다. 친구들은 민섭의 그런 마음을 알리가 없었고 좋은 패가 바닥에 깔리면 가차 없이 베팅을 퍼부었다. 


도리짓고 땡에서 20장으로 게임을 했을 때, 10-20으로 집을 지을 확률은 71.5%이고 반대로 못 지을 확률은 28.5%이다. 그리고 땡으로 지을 확률은 5.2%이니까 딜러의 입장에서 최소 28.5% 플레이어로부터 승리를 보장받은 대신, 5.2%의 확률로 2배(땡) 혹은 3배(광땡)로 돈을 토해내게 된다. 플레이어와 딜러가 동시에 지어졌을 때 승부를 5:5라고 가정한다면 딜러가 확률적으로 무조건 유리한 게임인 것은 맞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섭은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이 늘 두렵기만 했다. 


그렇게 민섭의 딜러판이 8판쯤 지나가고 있었고 15,000원으로 시작한 판돈은 대충 30,000원이 되며 약간의 수익을 기록하고 있었다. 이제 2판만 버티면 된다고 생각할 때쯤 심상치 않은 바닥이 깔렸고, 친구들은 한껏 동요하며 베팅을 키웠다. 패를 까봐야 정확히 아는 거지만 민섭은 알 수 없는 공포감에 휩싸였다. 

바닥에 대가리패가 1광, 3광, 장 이렇게 3장이 깔린 것이다. 8판을 조용히 지나간 상황이라 친구들은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공격적인 베팅을 했다. 특히 진혁은 과감하게 3군데 모두 베팅을 하는 강수를 두었다. 전체 패가 오픈이 되고 잠시 침묵이 흘렀다. 

다들 계산하느라 정신이 없는 가운데 진혁이 먼저 빠르게 치고 나왔다.


"야, 난리 났네 난리 났어. 1번패는 기삼오(2-3-5)에 1땡, 2번패는 쭉쭉칠(6-6-7)에 38광땡, 3번패는 오질구(5-7-9)에 장땡이야 미쳤다. 625 난리는 난리도 아니여. 민섭이는 살살이(4-4-2)에 7끗이네"

"와 진짜? 대박 대박 민섭이 쪽박 차겠네"

"아 쫌 가만히 있어봐. 제대로 계산한 거 맞어? 아 씨발... 좆됐네 진짜.."


민섭은 불안했던 마음이 현실로 일어나자 정신이 혼미해지기 시작했다. 어련히 진혁이 알아서 계산했을까 싶었지만 자기 눈으로 다시 한번 검증을 해보고 싶었다. 패를 보면 볼수록 눈앞은 더 깜깜해지고 머릿속이 일시정지 되며 아무런 계산 회로가 작동하지 않았다.


1번패의 베팅 금액이 총 6천원이었으니 2배 계산해서 12,000원, 2번패는 5천원의 3배인 15,000원, 3번패는 4천원의 2배인 8,000원까지 총 35,000원을 배상해 주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딜러 판돈 15,000원으로 시작해서 차곡차곡 3만원까지 만들었는데 오히려 5천원을 추가로 토해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렇게 딜러 오링이 난 민섭은 남은 2판과 관계없이 딜러를 옆 사람에게 넘겨줘야 했고, 얼마 남지 않은 돈으로 베팅을 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폭풍우 같은 판이 지나가고 잠시 담배타임을 갖기로 했다. 영훈은 진혁에게 잠깐 나와보라고 눈짓을 했고 담배를 피우지 않는 진혁은 물 한 컵을 떠서 영훈을 따라 밖으로 나갔다. 


"야 너 솔직히 말해. 무슨 짓을 한 거야?"

"무슨 소리야 갑자기.."

"내가 아무리 계산이 느려도 짬밥이 얼만데 그렇지 그 정도는 알아."

"이 새끼가 자다가 봉창을 뚫고 앉아 있어."

"야 아까 3번패에 오질구(5-7-9)에 장땡이라며. 오질구면 21인데 그럼 '황'인 거잖아. 내가 아무리 계산해 봐도 그 패는 다른 걸로도 안 지어졌다고.."

"아, 그래? 오륙구(5-6-9)에 장땡 아니었어? 아.. 진짜 오질구였어? 이걸 어쩌나.."

"이 새끼 이거 일부러 그런 거 같은데.. 니가 그런 거 실수할 놈이냐?"

"아니 나도 잃고 있었는데, 갑자기 앞에 1땡 나오고 광땡 나오고 하니까 흥분해서 착각했나 보네. 이제라도 3번은 이실직고하고 돌려줄까? 민섭이 한 판에 많이 잃은 거 같은데.."

"뭔 헛소리야. 지나가면 그만이지. 못 본 놈이 등신이지. 하여튼 너 진짜 수상해. 나한테도 이러면 진짜 그땐 실수건 고의건 가만 안 둬! 아까 너 딜러할 때도 뭐 하나 꺼림칙한 게 있었는데 정확히 모르겠어서 그냥 넘어갔는데 이제 제대로 지켜볼 거니까 그런 줄 알어."

"고의는 당연히 아니고, 정신 똑바로 차리고 계산할 테니까 너도 옆에서 좀 같이 거들어줘. 혼자 패 숫자 계산하랴, 돈 계산하랴 나도 빡세다고.."


진혁은 영훈과의 대화를 마치고 방으로 들어가며 보일 듯 말 듯 옅은 미소를 띠었다. 사실 영훈이 지적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그리고 당연히 진혁의 실수가 아니라 일부러 그런 것이다. 그러나 진혁이 미소를 지은 것은 따로 이유가 있었다. 

1번패와 딜러패는 실제로 1땡과, 7끗으로 메이드 된 것이 맞았다.

그리고 영훈이 지적한 대로 3번패는 5-7-9 짓고 장땡이 아니라 사실 노메이드가 맞았다. 영훈이 이것을 지적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기에 진혁은 살짝 가슴을 쓸어내리기도 했다.

하지만 가장 큰 비밀은 2번패에 있었는데 영훈은 미처 알아채지 못한 듯했다. 2번패야 말로 사실 영혼을 담은 구라였다. 패가 오픈되자마자 진혁은 쭉쭉칠(6-6-7) 짓고 광땡이라며 설레발을 쳤는데 사실은 쭉쭉팔(6-6-8) 짓고 망통이었던 것이다. 도리짓고땡에서는 몇 가지 공식이 있는데 대표적으로 콩콩팔(1-1-8), 삐리칠(1-2-7), 기삼오(2-3-5), 심심새(3-3-4), 꼬꼬장(5-5-10), 쭉쭉팔(6-6-8), 구구리(9-9-2) 등이 있다.


하필 쭉쭉칠과 쭉쭉팔의 발음이 비슷하다 보니 초보들에게는 사실 대충 흘려들으면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가기 십상이었다. 진혁은 그 빈틈을 노려 쭉쭉팔(6-6-8) 짓고 망통이 되는 것을 순간적으로 광땡으로 바꿔버렸고, 영훈을 포함한 모든 친구들은 아무것도 모른 채 지나가고 말았다.


사실 아까 진혁의 딜러 타임에 1-3광땡을 4끗으로 바꾼 것은 순전히 재치에 의한 순발력이라고 넘어갈 수 있었다면 이번 것은 명백한 구라였다. 진혁은 친구들에게, 특히 민섭에게는 정말 미안했지만 순간적인 판단으로 일을 저질러 버렸고 다시 수습하기 어려운 상황이 되어버렸다. 양심의 가책보다는 당장의 돈이 더 중요했기에 진혁은 딱 이번 한 번만 하고 다시는 하지 않기로 다짐했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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