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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심 작가 진절 Jun 30. 2024

[본격 홀덤 소설] 파이널 테이블 #08

#08. 박수칠 때 떠나라

2025년 서울, 인터컨티넨탈 그랜드 볼룸에서 열리고 있는 '서울컵 세계 포커 인비테이션(SGPI)' 현장의 열기는 대단했다. 한국에서는 아직 이 포커대회가 대중적으로 알려지지 않았지만 한때 스타크래프트로 세계를 호령하던 임유현, 홍정환 선수의 활약으로 매니아층이 넓게 형성되고 있었다. 내국인 카지노 출입이 제한된 한국에서 이런 규모의 세계 대회를 관람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한국 팬들은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비록 결승을 목전에 두고 8트립스로, 리버에 스트레이트를 맞춘 신예 진혁에게 발목을 잡혀 아쉽게 결승 진출에 실패한 임유현 선수는 현장을 가득 메운 관객들과 스킨십하며 현장의 분위기를 달아오르게 만들었다.


영훈, 진혁, 민섭 그리고 6명의 글로벌 탑티어 선수들이 총상금 100만달러(약 13억), 우승 상금 30만달러(약4억)을 놓고 치열하게 승부를 펼치게 되었다. 공교롭게도 세 명의 한국 선수 모두 국제 대회는 첫 출전이라 사람들에게는 생소한 이름이지만 파이널 테이블에 오기까지 각각 드라마틱한 과정들이 있었기에 국내는 물론 해외의 홀덤 팬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오랜만에 한국에서 열리는 국제대회에서 과연 이들이 어떤 성적을 거두게 될지 모든 홀덤 팬들의 귀추가 주목되고 있었다.


드디어 대망의 파이널 테이블 첫 번째 딜이 시작되었다. 9명의 선수 모두에게 2장씩의 카드가 주어졌고, 각각 의미를 알 수 없는 표정들을 지었다. 프리플랍에 진혁은 UTG 포지션에서 'K♦︎Q♠︎'를 들고 3BB 레이즈로 거세게 몰아붙이자 하나둘씩 패를 접었고, 버튼과 스몰 블라인드(영훈)가 콜을 하며 3-way가 되었다. 마침 플랍에 'K♠︎, 5♥︎, 7♦︎'가 떨어졌고, 스몰 블라인드가 첵을 부르자 진혁은 6BB로 컨벳을 했고 컷오프는 폴드, 스몰 블라인드는 고민 끝에 콜을 받았다. 


진혁은 스몰 블라인드가 고민하는 모습을 보면서 만약 블러프가 아니라면 최대치가 탑페어에 미들 키커 혹은 하이 페어(Q or J) 정도라고 생각했다. 턴에서 'Q♦︎'가 나오면서 스몰 블라인드는 여전히 첵을 불렀고 K-Q 투페어가 된 진혁은 숨도 안 쉬고 올인을 외쳤다. 딜러가 칩을 카운팅 하려고 하자 스몰 블라인드가 두 손을 내저으며, 폴드를 선언해 버렸다. 그렇게 파이널 테이블 운명의 첫 판은 진혁의 승리로 끝이 났다. 영훈의 사랑방에서 코 묻은 돈으로 백원짜리, 천원짜리 삥바리를 하던 진혁이 어느새 국제 대회에 참가하여 결승전까지 진출하는 정도의 거물급 선수로 성장하게 된 것이다. 




영훈의 주도로 인생 첫 블랙잭을 승리로 장식한 세 친구들은 이후 파죽지세로 딜러를 압박해 나갔다. 특히 진혁은 초반 소심한 플레이를 이어오다 어느 정도 블랙잭의 메커니즘을 파악한 이후로는 승률을 높여가며 판을 주도해 나갔다. 각각 5000페소(약 100달러) 정도로 출발한 세 사람은 1시간쯤 지났을 때 영훈이 7000페소, 민섭은 6500페소를 기록했고, 진혁은 10000페소로 거의 2배가 되어있었다. 초심자의 행운이라고 하기엔 흐름이 매우 좋았다. 하지만 진혁은 테이블에서 일어났고, 두 친구는 영문도 모른 채 엉겁결에 진혁을 따라서 일어났다


"야, 지금 분위기 좋은데 왜 일어나?"

"원래 박수 칠 때 떠나는 거라고 했어."

"그게 뭔 개소리야. 끗발 올라올 때 쫙 땡겨야지."

"너 그렇게 해서 카지노에서 딴 적 있어?"

"그게... 그러니까... 따기도 하고 잃기도 하는 거지 원래 카지노라는 게..."

"자신 없게 말하는 거 보니까 잃은 적이 더 많았던 거 같은데?"

"..."

"나는 카지노는 처음이지만 옛날부터 카지노 관련 책들을 많이 봤거든. 아주 단순하게 접근해서 블랙잭에서 니가 이길 확률이 얼마인지 알아? 

"음.. 그게.. 50대 50 아냐?"

"카지노가 총 맞았냐. 50% 확률로 싸우게? 니가 카지노와 대결해서 이길 확률은 대략 42~43% 정도밖에 안돼. 다시 말해 카지노가 승리할 확률이 57~58%라는 거잖아. 이 확률이라는 건 n이 무한대로 갔을 때 수렴하는 숫자이기 때문에 일시적으로는 우리가 이길 수도 있고 질 수도 있지만 판이 많이 질수록 저 확률에 근접해 가는 게임이라고. 그래서 나는 어느 정도 이기고 있을 때 자리에서 일어나서 '확정 수익'을 만드는 게 가장 중요한 포인트라고 생각해."


영훈은 진혁의 말을 듣고 생각해 보니 따고 있었을 때 자리에서 일어나 본 적이 한 번도 없었던 것을 깨달았다. 아니 따고 있을 때 일어나야 한다는 생각 자체를 해본 적이 없었던 것 같았다. 이기고 있으니 자연스레 베팅이 거칠어지고 그렇게 무모한 베팅을 하다 결국 돈을 다 잃고 나서야 마지못해 일어났던 기억뿐이었다. 


"그래도 노래방이나 당구장 가서 재밌게 놀고 게임비 내듯이 카지노 와서 게임비 낸다 생각하면 되는 거잖아. 그러다 돈을 따면 더 좋은 거고..."

"그럴 거면 뭐 하러 카지노에 오냐. 돈을 딴다는 개념이 아니라 카지노에서 이긴다는 게 중요한 건데. 단돈 100원이라도 이겨야 좋은 거지. 처음부터 이기는 습관이 들어도 될까 말까인데 어떻게 질 생각부터 하고 오냐. 난 일단 오전에는 여기까지만 할래. 너희들은 더 하려면 해. 옆에서 앉아 있을게."

"아.. 이 독한 새끼 진짜. 니 의견은 존중해 줄 테니 대신 다른 데 가지 말고 옆에서 앉아있는 거다."

"나도 오늘 처음 왔는데 현재 딴 돈 1500페소만 쓴다 생각하고 조금만 더 할래. ㅋㅋ"


그렇게 민섭과 영훈은 아까 그 테이블로 가서 게임을 시작했고, 친구들의 게임이 진행되는 동안 진혁은 옆에 앉아 수없이 많은 시뮬레이션 베팅을 통해 자신만의 전략을 끊임없이 가상 테스트하고 있었다. 게임이 재개되고 불과 2시간도 안돼서 민섭과 영훈은 딴 돈은 물론 원금까지 몽땅 날리고서야 게임을 멈출 수 있었다. 

"아.. 아까 그 딜러가 패를 잘 줬는데.. 저 놈은 6을 들고도 21을 맞추는 게 와... 진짜 말이 안 나오네."

"그러게 말이야. 딜러 6이길래 신나게 스플릿도 하고 더블다운도 가고 했는데 거기서 5-10이 나오면서 21로 맞추니까 진짜 맛이 간다. 맛이 가."

"맞아 너네들은 정석대로 잘했어. 저 딜러가 뒷패를 엄청 잘 띄우더라고. 딱 하나 아쉬운 건 아까 연달아 3-4판을 딜러가 20 이상으로 맞췄을 때. 변화를 줬었으면 좋았겠다 하고 생각했었어."

"변화? 어떻게 변화를 줘?"

"예를 들면, 각각 2-3개로 분산해서 베팅을 하면 딜러의 패가 바뀌잖아. 뭐 이런 것도 다 미신이긴 한데, 딜러 패가 너무 강할 땐 아쉬워도 자리 털고 일어나거나 혹은 변칙적으로 베팅을 해서 딜러의 패를 한 번 바꿔 보면서 기운을 바꾼다거나 하는 식으로 하는 게 좋았겠다는 나만의 개똥철학이지 뭐.. ㅋㅋㅋ"

"음... 기운을 바꾼다... 혹은 기세를 바꾸기 어렵다면 상대를 바꾼다.. 뭐 개똥 같은 소리 같으면서도 또 일리가 있는 말 같기도 하고 ㅋㅋㅋ"

"자자. 내일 또 와서 이기면 되지 뭐! 나가서 간단하게 한잔 하자. 내가 오늘 카지노에서 받은 용돈으로 술 한잔 살게."


진혁은 생애 처음 해보는 카지노였지만 딱 한 시간을 플레이하고 나머지 시간을 베팅하지 않고 구경만 하며 첫 카지노를 승리로 장식할 수 있었다. 중간에 민섭과 영훈이 딴 돈을 다 잃고 망설일 때 그만하자고 말렸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해 진혁은 대단히 아쉬운 마음이었다. 하지만 모든 선택은 각자 자신들의 몫이기에 그것을 가지고 왈가왈부할 수는 없는 것이 그 바닥의 보이지 않는 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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