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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이엠 저리킴 Nov 24. 2024

[본격 홀덤 소설] 파이널 테이블 #17

#17. 의미를 알 수 없는 미소

Ben과의 명승부 끝에 승리를 차지한 진혁은 단숨에 압도적 칩리더로 급부상하였다. 그런 진혁을 바라보는 영훈의 마음은 매우 씁쓸했다. 어린 시절부터 영훈은 항상 진혁보다 모든 면에서 월등히 앞서 있었다. 진혁은 항상 가난했고, 뚱뚱했으며, 사람들한테 특별히 인정받는 타입이 아니었다. 특히 이성에게는 전혀 매력이 어필되지 않아 오랫동안 모쏠로 살아왔다.


그런 아웃사이더 진혁의 옆에서 항상 함께 하며 케어해 준 것이 바로 자기 자신이었고, 진혁은 자신과 함께 있을 때 그나마 작은 빛이라도 낼 수 있는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어느 순간 그 관계에 조금씩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중학교 때 서울대냐 연고대냐를 고민했던 영훈이 고등학교 때 서서히 망가지면서 지방 국립대를 간 반면, 서울 안에 있는 대학을 갈 수 있을까 싶었던 진혁은 고등학교 때 성적이 오르면서 홍대에 당당히 입학을 했다. 물론 그때도 자존심이 많이 상했지만 그래도 그 정도는 괜찮았다.


본격적으로 포커판에 뛰어들면서 그 격차는 점점 더 크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코 묻은 돈으로 카드를 치던 시절에도 진혁은 얄미우리만큼 티 나지 않게 돈을 챙겨갔다. 영훈은 베팅으로 상대를 윽박지르며 돈을 따지만 또 안 풀리는 날에는 크게 잃는 타입이라면 진혁은 별 활약이 없어 보이는 데도 끝나고 보면 늘 2등 혹은 3등 정도로 게임을 마무리하며 돈을 차곡차곡 쌓아갔다.


게임 속에서의 진혁은 질투가 날 정도로 영리하고 약삭빠른 존재였다. 더구나 자신이 부모님의 도움으로 조그만 사업을 하면서 날이면 날마다 게임판에 붙어사는 것과는 달리, 진혁은 대학을 졸업하고 멀쩡한 직장을 다니며 결혼까지 하면서도 아주 규칙적으로 게임을 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그렇게 서서히 멀어져 가고 있을 때쯤 '그 사건'을 계기로 영훈과 민섭은 진혁과 완전히 다른 길을 걷게 된 것이다. 그때 그 일이 없었더라면.. 과연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려던 순간에 딜러가 새로운 핸드를 나눠주었다. 



영훈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영훈이 쓸데없는 감상에 빠져 있는 동안 2명의 탈락자를 제외하면 자신이 꼴찌에서 2번째의 위치에 놓이게 되었다는 사실을 자각하게 되었다. 아직 중반전이긴 하지만 블라인드도 계속 올라가고 있는 와중에 자신이 가진 스택으로는 제대로 힘을 쓸 수가 없기 때문에 이번 판을 꼭 가져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All-in"


레이트 포지션에 위치한 영훈이 자신의 순서에 올인을 외치자 진혁은 약간의 고민 끝에 콜을 하고 다른 선수들은 모두 폴드를 선언했다. 파이널 테이블이 시작된 후 처음으로 펼쳐진 영훈과 진혁의 헤즈업(1:1 맞승부)이었다. 영훈은 앞서하던 생각들이 떠오르며 덜컥 겁이 났다.



진혁의 핸드는 크게 매력적인 카드는 아니었다. K♥︎J♣︎가 훌륭한 핸드인 것은 맞지만 상대방의 올인을 받아줄 정도의 카드는 아니었다. 더구나 모양도 달라서 플러쉬를 볼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단순히 자신의 블라인드가 아까워서 들어왔다고 하기엔 뭔가 석연치 않은 상황이었다. 그때 진혁의 얼굴을 바라보던 영훈은 찰나의 순간 진혁의 입술 끝이 살짝 올라가며 미소 짓는 것을 보았다. 영훈은 그 미소의 의미를 알 수가 없었다.



플랍에서 J♦︎가 떨어지면서 진혁은 J 페어를 맞추긴 했지만 여전히 영훈의 AA를 넘기엔 역부족이었다. 진혁이 역전을 하려면 K와 J 단 두 개의 카드뿐이었다. 하지만 만약 K가 나온다 하더라도 나머지 한 장이 8 혹은 4가 나올 경우 영훈이 A 투페어로 승리하게 된다.



턴에서 10이 떨어지면서 영훈의 승리 확률이 86.4%까지 올라갔다. 남은 44장의 카드 중에서 진혁이 역전할 수 있는 카드는 단 6장뿐이다. K♦︎ K♠︎ K♣︎ J♦︎ J♥︎ J♠︎. 하지만 이런 불리한 상황에서도 영훈의 입가에는 여전히 묘한 미소가 남아있었다. 영훈은 그 미소의 의미를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리버에서 Q가 나오자 영훈은 순간적으로 J 혹은 K인 줄 알고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으나 자신이 이겼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고 진심으로 기뻐했다. 그런 영훈을 바라보던 진혁은 하이파이브를 건네며 축하해 주었다. 영훈도 진혁의 하이파이브에 기분 좋게 응하고 마음을 가다듬으며 칩을 정리하였으나 계속해서 진혁의 그 미소가 신경 쓰였다.


진혁은 그전까지 자신의 원칙을 지켜가며 한 개의 칩이라도 허투루 베팅하는 일이 없이 냉정함을 유지했다. 그런데 방금 전에는 사실상 무방비 상태로 올인전에 끼어든 것이다. 숏스택인 영훈이 올인을 했을 때에는 어느 정도 높은 패라는 것을 짐작할 만했지만 아랑곳없이 콜을 했다. 더구나 지고 있는 동안에도 계속 긴장한 표정보다는 여유 있는 미소를 띠기까지 했다.  



방금 게임을 통해서 영훈은 단독 4위까지 치고 올랐고, 진혁은 단독 1위를 유지했다. 모든 상황을 종합해 봤을 때 진혁의 행동은 영훈에게 칩을 몰아주려고 했다는 것 말고는 설명이 안 됐다. 거기까지 생각이 이르자 영훈은 조금 전 진혁의 미소가 어떤 의미인지 조금이나마 예측할 수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었다. 스스로의 힘이 아닌 진혁의 배려로 얻어낸 승리였다고 하면 기분이 그다지 좋을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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