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면이란 지도를 펼치다
영원할 줄만 알았던
내세울 거 하나 없던 날들...
시간은 나를 기다려주지 않았고
그렇게 나의 하늘은 어두워지기만 했다.
나의 일상, 나의 감정, 나의 목표... 그 모든 것들이 정녕 내가 원하고 바래왔던 것들인가. 삶의 지평선 끝자락에 무엇이 있는지 알지도 못했던 어린 시절을 지나 대학에 들어갔고 사회를 경험했다. 정신을 차릴새도 없이 날마다 적응하기 바빴던 넋나간 자신.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면 자립할 수 없음을 뼈저리게 느끼며 밤낮의 구분없이 노트북 모니터 앞에 앉아 주구장창 일만 했던 날들. 지금도 어디선가 불금의 편안함과 즐거움을 느끼지 못한 채 뭔가와 씨름을 하거나 때아닌 고충에 시달리며 밤을 보내는 사람들이 있을 터... 내게 주어진 일을 누군가에게 맡기고 싶지만 그럴 수 없음을 알기에 그 무거운 책임과 고통을 묵묵히 받아들인다.
삶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공부, 그런 게 과연 있을까? 흔히 삶의 문제라고 얘기한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돈을 얘기할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은 밥줄이나 마찬가지니까. 그럼 돈 문제만 해결되면 삶의 문제는 해결된 것일까? 아니다. 만약 해결이 된다고 한다면 세상이 지금처럼 흘러가진 않았을 것이다. 복잡한 삶의 굴레에서 요동치는 여러 가지 감정들은 삶의 형태를 다양하게 보여주지만 한편으론 이제까지 경험하지 못한 것들을 보여주기도 한다. 개인적으로 내 삶을 돌아봤을 때 나의 감정엔 빛 한 줄기도 들어오지 않았다. 그러다 갑자기 들어오는 빛에 당황한 나머지 계속해서 숨기기에 급급했다.
늘 평안하고 안정되어 있어야 하는 게 당연하다고 느끼면서 살아왔으니 예상치 못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 그 충격과 스트레스가 장난이 아니었다. 하지만 돌이켜 보면 내가 원하는 상황이 늘 찾아오는 것도 아닐 뿐더러 반드시 그런 상황에 머물러야 한다는 그 자체가 어찌보면 이기심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학생일 때, 사회생활을 하기 전에는 몰랐다. 문제 없이, 실수 없이, 어떠한 변수 없이 잘 해결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으니 말이다.
그래서였을까? 도무지 내세울 만한 게 없었다. 내가 무엇을 잘하고 못하는지에 대해 알지 못했다. 누가 알려주는 것도 아닐 뿐더러 공부한다고 해서 해결되는 것도 아니었다. 답답했다. 이 고민은 취업을 하고 나서도 계속됐다. 마치 내가 아무 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3개월, 6개월이 지나도 바뀌지 않는 자신을 바라보며 나는 이거 밖에 안 되나 보다 하는 생각에 그만두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노력을 해도 상황이 개선되지 않으니 한숨만 나왔고 도움만 요청하다 보니 일에 대한 흥미보단 빨리 끝내고 집에서 쉬고 싶다는 생각만 했으니 말이다. 좋은 날을 기대하기 보단 오늘만 어떻게 버티고 버티자는 심정이었다.
특별히 내세울 게 없으면 사람을 안 만나게 된다. 아니 자연스럽게 거리를 둔다. 과묵해지게 되고 최대한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한다. 힘든 일이나 안 좋은 일이 있어도 공유하지 않는다. 괜히 남에게 피해를 준다고 생각하거나 누군가에게 알려지면 좋지 않다고 생각해서다. 그렇게 고독에 익숙해지고 휴대폰 배터리는 90에서 100사이를 유지한다. 전화도 안 오고 카톡도, 메세지도 오지 않으니 사실상 휴대폰의 근본 용도가 무의미해진 셈이다.
사람을 만나지 않는 게 익숙해지고 오히려 사람과 마주하면 당혹감을 느낀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건 더더욱 불안감만 키운다고 생각하여 모임 활동도 하지 않는다. 그렇게 고독한 일상이 하루, 이틀, 사흘 동안 이어지다가 한 달, 두 달, 세 달이 된다. 그러다가 1년, 2년...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자신감은 사라지고 스스로의 처지를 자연스럽게 인정한다. '난 지금처럼 계속 살아야 하나보다...', '뭐... 지금처럼 살아도 큰 문제는 없으니까.', '어차피 혼자 사는 인생인데 이대로 살아가면 돼!'
새로운 시도, 새로운 도전보다는 지금까지 익숙했던 것들만 접하며 하루를 보낸다. 그리고 그런 하루가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 조금이라도 어긋난다면 그건 말이 안 되는 것이다. 어쨌거나 사람을 덜 만나고 덜 마주쳐야 나의 흠과 단점도 드러나지 않을 게 아닌가. 그렇게 평안한 하루를 보낸다. 하루, 이틀, 사흘 동안 이어지다가 한 달, 두 달, 세 달이 된다. 다시 1년, 2년... 시간이 흐른다.
이런 일상을 보내면 어떻게 될까? 공감각이 사라진다. 아이디어나 연상의 원천이자 근원인 공감각이 사라지고 그 자리를 학습된 무기력이 차지한다. '이 정도의 삶이면 충분하다'는 마인드가 구축되고 더 이상의 성장이나 발전을 원하지 않게 된다. 다만 돈이라도 좀 더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은 지워지지 않는다.
내세울 게 없다... 한 마디로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느끼는 것이다. 방문을 나서기가 두렵고 밖으로 나갈 때 지레 겁부터 먹는다. 스스로 무용지물이라고 생각하는 가치관과 인식이 깊게 뿌리 내린 상태에서 밖을 나간다는 건 엄청난 용기를 필요로 한다. 단순히 화이팅을 하거나 지지만 해주면 된다고 해서 해결되는 문제도 아니다. 스스로 자기 안에 존재하는 강력한 적과 싸워 이겨야만 변화될 수 있다.
그렇게 내세울 게 없다고 생각해서 한동안 방구석에만 갇혀 있었는데... 지금은 개발자의 삶을 살고 있다. 내세울 게 없어 '내 삶은 여기까지 인가보다' 라고 생각했던 내가 스스로 돈을 벌며 바쁘게 움직이는 하루를 보내고 있다. 내가 생각했을 때 나 자신만 놓고 보면 평범하기 그지 없었다. 우연히 접한 철학으로 인해 학교에서 많은 책을 읽고 세상에 대한 시야가 조금 넓어졌을 뿐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오히려 나보다 뛰어난 사람들이 더 많다는 것을 체감하며 취업도, 삶도 포기하려고 했었다. 하지만 그런 좌절과 포기도 이제는 추억이 되었다.
삶은 희극일까 아니면 비극일까? 삶의 모든 영역이 희극으로 채워졌다면 어땠을까? 과연 행복한 삶이었을까? 삶에서 비극이 없는 희극은 애시당초 존재하지도 않으며 존재할 수도 없다. 결국 희극이란 것도 비극이 있어야 희극의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굳이 내가 희극, 비극을 선택해서 느낄 수 있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삶은 매순간 새로운 가능성과 예상치 못한 상황을 경험하게 해준다. 고통이 없다면 기쁜 날도 행복한 날도 없었을 것이다.
내세울 게 없던 날들이 있었다. 조용히 숨만 쉬면서 꾸역꾸역 하루를 버티기만 했던 날들... 사람 만나는 게 꺼려졌음에도 사람을 만나고 싶어 발버둥쳤던 날들... 내세울 게 없었기에 끼니를 때우기만 하는 삶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던 날들... 지금의 나에게 있어 그 날들은 내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그렇게 보낸 시간들 역시 시행착오라고 보는 게 맞는 걸까?
지금의 나는 분명 예전과는 다르다. 뭔가를 하기 위해 끊임없이 시도한다. 무엇이 달라진 것일까? 어째서 지금은 바뀐 것일까? 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