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면이란 지도를 펼치다
생각하는 힘을 잃어버린 대한민국. 질문하는 힘을 가진 사람들을 찾기 힘든 대한민국. 따라가는 삶이 정답으로 굳어진 현실, 의심보단 명령과 복종이 일상화가 되어버려 국력을 잃어버리고 사회적 역동성이 뚝 떨어진 한국 사회. '왜 이 곳에 태어났을까' 하는 마음속 애환 섞인 물음이 이제까지의 삶을 허무주의로 몰아가는 현재의 인생들을 바라보는 것이 참으로 고통스럽다.
예측 가능한 학교 모습이 더욱 나의 마음을 무겁게만 하고 행여나 내 자신이 질문을 못하고 대답을 못할까봐 두렵기까지 하다. 지나친 걱정일 수도 있겠지만 현재로선 떨쳐내기가 어렵다. 지난 1년의 휴학이 정말 나에게 있어 큰 도움이 되었고 그로 인해 생각하는 방법과 소통, 공부에 관하여 많은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꿈에서 깨어나기로 했다. 따라가기, 따라잡기 식의 생활이 아닌 만들고 도와주는 식의 생활을 해야 하는 이유도 알았다. 노예가 아닌 주인으로 살아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 자신이 결코 무능해서가 아니라 접근 방식과 고정관념 때문에 틀에서 벗어날 줄을 몰랐던 스스로의 고집이 만든 환상 속에 파묻혀 있었다는 점이 행동의 순서와 깊이를 바꿔 놓았다.
무기력은 당연한 게 아니다. 생각이 나지 않는다는 것 역시 당연한 게 아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서커스장의 코끼리처럼 뭔가를 학습하고 환경에 적응하는 것을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따라가기, 따라하기만 하다보니 문제인식 조차 사라진 현실에서 학생들은 스스로 자기 삶을 개척하는 방법을 잃어버렸다. 미래는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으로 바뀌고 있는 상황에서 길이 하나만 있다고 생각하는 학생들이 너무나도 많은 게 오늘날의 현실이다.
나는 어떨까? 그나마 여기서 벗어났다고 생각했지만 아직 완전히 발을 빼지는 못한 듯 싶다. 삶의 비중이 활력을 떨어뜨리는 쪽에 치우쳐 있다면 과연 그러한 삶을 살아가는 게 진정 옳은 것일까? 생각을 바닥에 떨어뜨리고 사고라는 이름을 지워버리며 살아가는 삶이 바람직한 삶일까? 1년의 기간을 통해 얻어낸 질문할 수 있는 힘과 사고의 역량을 줄어들게 하는 것이 진정 스스로 주도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일까?
난 브레인스토밍이나 마인드맵을 활용하여 내 안의 생각을 낙서하거나 펼치는 것을 좋아한다. 그렇다. 난 펼치기를 좋아한다. 막히거나 지루하거나 무기력한 느낌을 받고 싶지 않기 위해 시간날 때마다 펼치고 또 펼친다. 내가 경험과 역량이 부족하더라도 내 자신만큼은 소중하다고 느껴야 비로소 발전을 기대할 수 있으며 마음도 안정시킬 수 있다. 고작 성적이나 몇몇 사람들의 말과 시선 때문에 내가 생각한 것들과 펼치고 싶은 것들을 지워버리고 싶지 않다.
나는 내 삶에 진심을 다하고 싶다. 아무리 내가 어떤 어려움과 함정에 빠지더라도 나의 뜻을 저버리고 싶지 않다. 내 삶을 향한 의지를 지키고 싶다. 지속 가능한 의지를 꾸준하게 지키는 것이야말로 나의 목표를 이룰 수 있는 원동력이기 때문이다.
마음을 다스려야 한다. 그리고 행동해야 한다. 움직이지 않으면 희망은 꿈꿀 수 없다. 두려움을 합리적인 변명으로 활용하면 두려움으로써의 가치는 없다. 그러나 그 두려움을 잘 활용하면 최고의 성과를 낼 수 있다. 생각하는 나, 철학하는 나, 주도하는 나, 탐구하는 나, 나는 스스로 일어설 수 있는 나로 존재해야 한다. 비록 경험과 역량이 부족하여 늘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 봉착할 수 있지만 그런 과정이 있기 때문에 근면할 수 있고 삶의 활력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목표에 도달하기 위한 과정의 고통과 고독을 받아들이고 이러한 자신의 삶을 묵묵히 살아간다면 진정한 나의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무엇이 꽃길이고 무엇이 빛으로 반짝거리는 길인가? 꽃밭을 걷는다고 해서 꽃길이 아니며 빛이 만연한 길이라고 해서 밝은 길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마음의 길, 그 마음의 길이 막혀있거나 뚫려있지 않으면 어느 길을 걸어도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삶은 갈림길의 연속이다. 알 수 있는 길보다 알 수 없는 길이 훨씬 많다. 언제나 이정표가 있는 것이 아니며 매순간 길잡이가 동행하는 것도 아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나이를 먹을수록 고독한 선택을 통해 자신만의 길을 걸어가야 하는 상황을 피할 수 없다. 그게 진짜 현실이다. 이상은 누군가를 따라하는 것에서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 자기 삶을 관리하고 책임질 수 있는 위치에 도달했을 때 이상을 바라보며 나아갈 수 있다.
나는 지금 나만의 길을 걷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학교에서 받았던 교육과 기존의 가치관, 사고방식을 뛰어넘어 자신만의 뭔가를 만들고 창조할 수 있는 삶을 살아가기 위한 일상을 보내기 위해 작은 시도들을 많이 하고 있다. 과거에는 어른이 되고 자리를 잡으면 편안하게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알았기 때문에 더더욱 나만의 개성을 잃어버려서는 안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속 어딘가에 내가 열심히 무언가를 하고 있는 모습을 계속해서 그려나간다. 그 형체가 선명해질 때마다 잠자고 있던 열정과 동기부여가 깨어나 내 몸은 자연스럽게 불확실하고 알 수 없는 길로 향한다. 침묵의 박물관과도 같은 불확실한 길을 걸어갈 수밖에 없는 이유, 알 수 있는 길은 누구나 갈 수 있지만 알 수 없는 길은 누구나 갈 수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