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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 그 첫 걸음-10]

True Story

by BeWri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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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포 외근 이후 다시 프로젝트로 복귀

마포에서의 작업을 잘 마치고 다시 프로젝트를 진행하기 위해 다음 날 병원으로 출근했다. 여담이지만 마포 외근을 하기에 앞서 작년에 사용하지 못한 연차를 신청했는데 마포 일정 때문에 연차를 취소할 수밖에 없었다. 방문할 인력이 마땅히 없었기에 어쩔 수 없이 연차를 취소하고 마포로 가야만 했다. 그렇게 마포 일정을 마친 후 다음 날 아침 오픈날이 얼마남지 않은 병원으로 출근을 한 것이다.

처음 진행하는 프로젝트였기에 아는 게 거의 없었다. 삽질은 삽질대로 했고 털리기도 많이 털렸다. 꽃길만 걷고 싶은 마음은 가득했지만 현실은 진흙탕보다 더한 길이나 마찬가지였다. 사실상 독고다이나 다름 없는 환경에서 개발을 하는 일이 빈번했기에 어쩔 수 없이 버티고 버텼다. 그래도 뭐 예상외로 잘 풀리는 경우도 있었으니 개발이 아예 못할 만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오픈 날이 점점 다가오고 있는데 예상치 못한 이슈들이 계속해서 발생했다. 갑자기 검사장비가 들어오는 바람에 급하게 인터페이스 개발에 착수해야 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뜬금없는 요구사항으로 인해 작업량이 많아지는 날도 있었다. '하... 사용자는 개발자를 배려하지 않는 요구사항들만 잔뜩 늘어놓는구나...' 하는 생각으로 가득할 때도 있었지만 인내하면서 개발에 집중했다. 프로젝트는 프로젝트였다. 알 수 없는 일들, 예상치 못한 일들은 거의 날마다 있었다. 날마다 있는 경우가 있는지도 모르겠지만 당시에는 그랬다. 담당하는 사이트가 많아질수록 시도 때도 없이 전화가 왔다.


'어 이거 왜 안 되죠?'

'선생님 이거 기능이 제대로 안 되는 거 같은데
한 번 원격으로 좀 봐주실 수 있으실까요?'

'선생님, 도와주세요.'

'선생님 저희가 더 급한 거 같은데 저희 장비부터
먼저 봐주시면 안 될까요?'

심지어 내가 듣도 보도 못한 병원에서 연락이 오는 경우도 허다했다. 담당자가 이미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나한테 연락이 온 거 보면 담당자가 많이 바빠서 연락을 제대로 받지 못한 것일 수도 있다. 담당자도 아닌 내가 원격으로 봐야 한다는 게 처음에는 납득이 잘 되지 않았다. 더군다나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연락이 온다는 건 가히 헬게이트가 열리는 것과 다를 게 없었다. 쉽게 해결할 수 있는 이슈들 마저도 막상 다른 일과 겹치게 될 경우 굉장히 난이도가 높은 일이 돼버리는 경우가 많았다.




프로젝트는 프로젝트대로, 서비스 데스크는 서비스 데스크대로. 아... 멀티태스킹은 이렇게 하는 거구나 하는 걸 몸소 느낄 수 있었다. 프로젝트가 끝난 이후에도 이런 멀티태스킹은 계속되었다. 전화를 3-40통 받을 때도 있었고 많게는 7-80통 받을 때도 있었다. 하루에 말이다. 장난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엄연한 사실이다. 과연 이렇게 많은 전화를 받고도 살아남을 사람이 얼마나 될까?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은 분명히 아니었다. 이런 방식으로 2년 넘게 일했으니 돌이켜 보면 참으로 신기할 따름이다.

프로젝트는 마무리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프로젝트가 끝나고 나면 좀 쉴 수 있겠지 하는 생각을 가지면서 하루하루 최선을 다했다. 때로는 밤늦게까지 일하는 날도 있었는데 오픈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이어서 야근을 피할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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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된 오픈 날짜, 첫 프로젝트의 성공적 오픈

그러다가 갑자기 오픈일이 연기되었다는 소식을 접했다. 당시 오픈일이 3월 초에 배정되어 있었는데 갑자기 3월 말로 연기된 것이다. 생각보다 여유가 생기는 바람에 적지 않게 당황했다. 조금만 더 일찍 얘기했으면 좋았을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크게 영향을 받을 일은 없었다. 개발과 테스트는 거의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고 오픈 날만 기다리며 이슈 대비를 위한 모니터링과 대기만 하면 되는 상황이었다. 그렇게 오픈날 전까지 계속 병원에 상주하며 이런 저런 이슈들을 해결하고 사용자 피드백도 들어가면서 유종의 미를 거두고자 했다. 처음이라 알지 못했던 많은 배경지식들과 개발에 대한 노하우도 조금씩 알게 되어 예전보다 일하는 속도가 늘어났다.




마침내 오픈날이 되었다. 오픈날은 일찍 출근했다. 새벽 7시에 출근하여 저녁 6시까지 안정화를 위한 모니터링 및 대기를 했다. 다행히 큰 이슈는 발생하지 않았고 검사실 분위기도 나쁘지 않았다. 중간중간 여러 가지 이슈가 있었지만 규모가 작은 이슈들이어서 순조롭게 잘 처리할 수 있었다. 그렇게 3월이 지나갔고 4월이 되었다. 나는 4월 중순까지 병원에 머물렀고 그 이후부터는 다른 사이트로 다시 외근을 갔다. 사실상 프로젝트에서의 내 역할은 끝난 것이었다. 검사실은 안정화 단계에 접어들었고 그 외에 다른 개발 작업이 남아있기는 했지만 내 담당은 아니었기에 병원에 남아있을 이유는 없었다. 내 첫 프로젝트는 그렇게 마무리되었다.




사실 개발 이외에 다른 작업도 많았다. 예컨대 검사실 내부 PC로 원격을 접속해야 하는데 내 마음대로 원격에 접속할 수가 없었다. 전산팀에 허가를 받아야 했다. 나는 직접 전산팀 부장님에게 연락하여 원격 허용 가능 여부에 대한 내용을 전달드렸고 다행히도 원격이 가능하다고 전달받을 수 있었다. 개발 공간과 검사실 내부 모니터 간의 이동 거리가 있어서 급하게 작업해야 하는 경우 원격으로 접속하여 작업을 해야 할 때가 있다. 원격 신청은 선택이 아닌 필수였다. 그 외에 병동에 방문하여 데이터가 제대로 전송되는지 테스트도 해보고 장비와 인터페이스 간에 통신이 잘 되는지 여부도 확인하기 위해 케이블과 PC 상태도 확인해야 했다. 사실 개발만 하는 게 아니라 하드웨어적인 부분도 신경써야 했기에 쉽지 않은 작업들이 많았다.



보안시설에 방문하여 개발을 하다

4월이 지나 5월이 되었다. 갑자기 전남으로 가야한다는 연락을 받았다. 엥 전남? 함평이라는 곳이었는데 당시 난 함평이 어디에 있는 줄도 몰랐다. 전남하면 광주밖에 떠오르지 않았는데 함평을 가야하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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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평은 무안과 가까이 있다. 그리고 지도상 오른쪽에는 나주가 있다. 알고보니 함평에 군 병원이 있었다. 처음 알았다. 저런 곳에도 군 병원이 존재한다니... 일정은 1박 2일이었다. 이틀 안에 마무리해야 하는 일정이어서 살짝 빡세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더군다나 처음 접해보는 장비였기 때문에 업체에서 보내준 기술문서를 참고하면서 개발을 해야 했다. 출발 당일, 수서역으로 가서 SRT를 타고 광주송정역에 도착했다. 몇 시에 도착했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다만 택시를 타고 목적지에 도착한 기억은 분명하게 떠오른다. 이전에도 군 병원을 방문한 적이 몇 번 있었지만 그때는 개발이 아닌 유지보수 차원에서의 방문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내가 직접 개발을 하여 검사장비와 연동하는 작업까지 끝마쳐야 했다.




여유로운 마음으로 작업을 하고 싶었지만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군 병원의 전산시스템도 파악을 해야 했고 검사장비에 대한 데이터 형식, 프로토콜도 확인을 해야 했다. 진단검사장비 인터페이스는 경우에 따라 개발의 난도가 많이 다른 편인데 기본적으로 인터페이스 PC, 사용자의 사용 패턴, 전산시스템, 보안 문제 등 다양한 조건들을 고려해야 한다. 내가 지금 방문한 곳은 군 병원이었기에 보안 문제가 특히나 중요했다. USB 사용은 불가했고 CD 역시 군 병원 측에서 인가 받은 CD만 활용할 수 있었다. 파일을 옮길 수 없기 때문에 CD밖에 사용할 수 없는 폐쇄적인 환경에서의 개발은 더더욱 난이도가 올라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외부망이 닫힌 사이트 같은 경우 어느 정도 경력이 있는 사람을 보낸다. 원격이 되지 않는 환경인데다가 때로는 핫스팟도 안 되기 때문에 전적으로 개발자 개인의 역량이 중요하다. 구글링도 안 되고 참고할 수 있는 자료도 극히 적다.




첫 날은 삽질의 연속이었다. 통신은 잘 되는데 웬일인지 전산으로 데이터 전송이 되지를 않았다. 추가적으로 QC 검사 데이터까지 같이 전송되어야 하는데 역시 감감무소식이었다. 알고보니 전산에 검사장비 정보를 제대로 입력하지 않아서 발생한 문제였다. 전산에 정보가 없으니 아무리 데이터 전송을 해도 오류가 발생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QC 역시 정보를 제대로 입력하지 않았기에 데이터 오류만 발생하고 있었다. 첫 날은 테스트와 오류 내용만 확인하고 철수할 수밖에 없었다. 6시가 되면 칼퇴를 하는 군 병원 특성상 더 작업을 이어나가기는 어려웠다.




숙박할 곳을 예약한 다음 저녁을 먹었다. 혼자 먹는 저녁이라 외로웠지만 그래도 마음은 편했다. 떡갈비가 유명하다고 해서 떡갈비를 먹었다. 작업을 마친 이후에 먹는 저녁이어서 그런지 맛이 괜찮았다. 저녁을 먹고 숙소로 들어가 씻고 다시 작업을 했다. 그런데 작업 공간이 영 불편하여 근처 스터디 카페를 찾아갔다. 스터디 카페에서 개발 작업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와 좀 쉬다가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 날 아침, 9시가 되기도 전에 병원에 방문하여 작업을 했다. 다행히 전날 오류를 파악한 덕분에 모든 작업을 오전 중으로 마무리 할 수 있었다. 사실 걱정을 좀 많이 했는데 생각보다 일이 잘 풀려서 기분이 좋았다. 오전 작업이 끝나고 군 병원 내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점심을 먹고 좀 쉬다가 여유가 생겨서 검사실 선생님 분들과 커피를 마셨다. 잘 마무리해줘서 고맙다는 말과 함께 개발에 대한 이런 저런 것들을 물어보셨다.

'개발자는 돈 많이 번다고 하는데 정말이에요?' 사실 난 그 질문에 대한 답을 드리기가 어려웠다. 일은 쉽지 않았지만 당시 내가 받는 돈은 그다지 많은 액수가 아니었다. 선생님의 환상을 깨고 싶지 않은 나로서는 허허허 하는 웃음과 함께 '뭐 적지는 않죠' 하는 말만 할 수밖에 없었다.




오후까지 모니터링을 하다가 4시 반쯤에 철수하여 6시 즈음에 SRT를 타고 서울로 올라갔다. 그 날이 금요일이었다. 퇴근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마무리 못하면 다음주에 다시 내려와야 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무사히 잘 마무리하고 주말을 편안하게 보낼 수 있었다.

처음으로 진행했던 군 병원 검사장비 인터페이스 개발 작업이 끝났다. 하지만 한 달이 지나 다시 군 병원에 갔다. 이번에는 다른 군 병원이었다. 그 당시 다니던 회사는 육해공 병원의 대부분을 담당하고 있었기 때문에 군 병원 의뢰가 들어오는 일이 생각보다 많았다. 그렇게 나는 외부에 공개되지 않는 그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번에 방문한 곳은 사뭇 다른 곳들과는 달랐다. 과연 어떤 일이 기다리고 있을지...


>> 11화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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