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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성현 Feb 11. 2019

한 우물만 팠더니 나에게 생긴 일

잠자는 동안에도 돈이 들어오는 방법을 찾아내지 못한다면
당신은 죽을 때까지 일을 해야만 할 것이다.
- 워런 버핏


  돈을 노예로 삼아 일을 시켜야 나 자신이 노예로 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깨닫고, 노동과 절약을 통해 모은 나의 소중한 노예들에게 어떤 일을 시켜야 할까 고민하기 시작했을 때의 일이다.       


  “이번에 우리 노예들에게 1년 계약으로 정기예금 일 좀 시켜보려고 하는데, 괜찮은 일거리가 있을까요?”       


  은행 직원이 친절한 대답과 함께 미소를 지었다. 그것은 내가 대출을 받으러 여기에 왔을 때 본 깐깐했던 은행원의 미소와는 분명 달랐다.     


  “노예를 몇 명 정도 보내 주실 건가요?”       


  “지금 놀고 있는 여유 노예가 1억 명쯤 있습니다.”       


  “연간 2% 정도의 수익을 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내 노예 1억 원을 1년 동안 은행에 보내 놓으면 약 170만 원 정도의 돈을 벌어다 줄 거라는 얘기다. 그 1년 동안 나는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기다리기만 하면, 나의 노예들이 열심히 일을 해 한 달에 14만 원 정도의 월급을 가져다줄 것이다.  


  나는 계산을 해 보았다. 내가 경제적 자유를 얻기 위해 매월 500만 원 정도가 필요하다고 가정한다면, 도대체 앞으로 얼마나 많은 노예들을 은행에 보내 놓아야 하는 것일까?  


  이자 소득세를 제외하더라도 약 30억 원의 노예가 필요하다는 결과가 도출되었다. 경제적 자유를 달성하겠다는 목표와 가능성은 머나먼 안드로메다로 날아가고 있었다.   


  많지 않은 노예들을 쥐꼬리만 한 월급을 주는 은행에 보냈다가는 경제적 자유는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 될 것이다. 연봉 1억 원을 받는 노예 생활을 통해 년간 5천만 원을 저축한다 하더라도 30억 원의 현금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60년이 걸린다. 내 아이들에게 경제적 자유를 선물할 수는 있어도 나는 평생 돈의 노예로 살아야 한다는 얘기다. 예금과 같은 저축만으로는 경제적 자유에 이르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결론이 내려진 것이다.       


  나는 은행에서 나와 나의 노예들이 좀 더 큰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저축을 넘어선 투자의 영역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내가 은행에서 1억 원을 빌렸을 때는 매월 50만 원 정도를 이자로 내야 했는데, 은행에서 내 돈을 가져갈 때는 고작 14만 원 정도밖에 안 준다니, 억울하기 그지없는 일이었다.  


  내가 은행을 통해 매월 500만 원을 벌기 위해서는 30억 원이 필요하지만, 은행은 그 절반도 되지 않는 10억 원만 있으면 매월 500만 원을 벌 수 있는 불평등한 구조였다.       


  “내가 은행이라면 좋을 텐데...”       


  나는 무심코 내뱉은 한탄에서 문제 해결의 작은 실마리를 찾을 수 있었다. 내 노예들을 은행에서 일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은행의 주인이 되는데 투자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 본 것이다.


  나는 곧바로 OO은행 주식에 대해 알아보았다. 하지만 예금은 금리가 낮은 대신 원금을 손해 볼 가능성은 제로에 가까웠지만 주식은 기대 수익이 높은 대신 원금을 손해 볼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내 소중한 노예들을 안전한 도서관 같은 데서 일을 시키고 싶지, 피 튀기는 전쟁터로 내몰아 전사시키고 싶지는 않았다. 그때, 주식 정보 항목 중 ‘배당 수익률’이라고 적힌 부분이 나의 눈에 들어왔다.        


  ‘4.02%!‘     


  주식 배당은 주가와 관계없이 매년 지급되기 때문에 해당 주식을 팔지만 않는다면 이자처럼 고정적인 수익을 얻을 수 있을 거라는 계산이 섰다. OO은행에 정기예금을 하면 년간 2%의 수익을 얻는데, 같은 돈으로 OO은행의 주식을 사면 그 두 배인 4%를 수익으로 얻을 수 있게 된다.  


  나는 경제적 자유를 위해 필요한 목표 노예를 30억 원 에서 그 절반인 15억 원으로 줄일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추가로 주가 수익률이 년간 4% 이상만 달성된다면 15억 원은 다시 그 절반인 7억 5천만 원으로 줄어들게 될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더 높은 투자 수익을 얻을 방법을 찾아낼 수만 있다면 경제적 자유를 얻는데 필요한 시간도 더 줄일 수 있겠다는 희망이 보였다.   





  나의 미래를 풍족하게 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지 은행 직원에게 자문을 구해 보기로 했다. 그는 나에게 ‘연금보험’이라는 상품을 소개해 주었다.  


  예금을 통해 돈으로 돈을 버는 일에 있어 ‘15.4%’라는 이자 소득세는 내 살을 깎아 내는 듯 아까웠는데, ‘연금보험’이라는 녀석은 기특하게도 ‘비과세’, 즉 이자 소득세를 내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게다가 이자율 또한 정기예금보다 더 높았다.   


  최소 10년 이상을 내 소중한 노예들과 떨어져 있어야 한다는 조건이 살짝 마음에 걸리긴 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비과세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최대치인 월 190만 원을 연금보험에 가입하기 위한 서류에 서명을 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고, 치약과 쌀을 사은품으로 챙길 수 있었다.  


  그런데 은행에서 빠져나온 후, 화장실에서 뒤처리를 하지 않은 듯 뭔가 찝찝하고 싸한 느낌이 들었고, ‘연금보험’이라는 생소하기 그지없는 녀석에 대해 뒷조사를 해 보기로 했다.  


  그리고 정기예금보다 높은 금리에 비과세 혜택까지 뭐 하나 모자랄 것 같지 않던 그 녀석에 대해 자세히 알아본 후, 나의 장미 빛 미래는 사라졌고 나는 나의 금융 무식을 반성해야만 했다. 물가 상승으로 인한 화폐 가치 하락을 계산에서 빠뜨렸다는 것을 뒤늦게야 깨닫게 된 것이다.  


  아주 보통 수준인 년간 물가 상승률 2%만 적용하더라도 지금의 1억 원은 연금을 수령하게 되는 20년 후, 그 가치가 33% 정도 하락해 약 6,700만 원 정도 수준의 가치로 변하게 된다. 물론 일할 수 있을 때 얻은 수익 중 일부를 모아 일할 수 없을 때 찾아 쓰겠다는 연금보험 본연의 목적에 만족할 수 있다면 그리 나쁠 것도 없는 상품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저축’과 ‘투자’의 차이에 대해 연구하고 있던 나에게 33%의 원금 손실은 묵과할 수 없는 영역의 큰 수치였다. 나는 즉각 연금보험 상품을 해지했고, 사은품으로 받은 치약으로 이를 닦으며 ‘저축’의 한계에 대해 깊은 성찰의 시간을 가져야만 했다.


  물가 상승으로 인한 화폐 가치 하락은 년간 이자율 2%의 저축을 내 돈을 불리는 일이 아닌 썩어가게 하는 일로 만들어 버린다     


 은행이 내 돈을 지켜 내는데 더 이상 안전한 곳이 아니라는 것이 밝혀진 이상, 내 노예들이 안전하게 있을 곳을 찾는 것이 내가 해야 하는 가장 시급한 일이 되었다.        





  같은 회사에서 함께 월급쟁이로 일했던 동료를 몇 년이 흐른 후 다시 만났다. 그는 10년 전 창업을 해 이제는 10명도 넘는 직원들까지 거느린 어엿한 사장님이 되어 있었다. 나는 이제 막 경제적 자유를 얻은 초보였기에 10년의 업력을 지닌 그의 회사가 마냥 부러워 보였다. 그는 사업가가 된 자신의 성공을 자랑이라도 하듯, 한우가 듬뿍 들어가 있는 12,000원짜리 안동 국수를 점심 식사로 대접해 주었다. 엊그제 재래시장 한 편에 위치한 동네 쌀국수집에서 3,500원짜리 쌀국수 네 그릇으로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아내와 아이들까지 총 일곱 명이 배불리 먹고 내가 결제했던 금액이 14,000원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꽤 호사스러운 점심이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점심 식사를 마친 후, 우리는 차를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나는 그가 사업에 성공한 만큼 재테크에 관해서도 특별한 노하우가 있을 거라 생각해 한 수 배워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가 지금 살고 있는 곳이 서초동이라는 얘기를 들었을 때, 그가 이룬 부가 어느 정도인지 대충 가늠할 수 있었다.        


   “서초동이요? 거기 이번에 많이 올랐죠? 좋으시겠어요!”       


  하지만 부러움과 존경의 마음도 잠시 그는 긴 한숨과 함께 푸념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월세인데, 좋을 게 뭐가 있겠어요.”       


   나는 그가 노예생활을 하던 10년 전, 서울 외곽의 한 아파트 청약에 당첨되어 내 집 마련을 하게 되었다며 행복해하던 일이 떠올랐다. 자신의 소유 아파트는 누군가에게 임대를 해 주고 자신은 월세를 산다면 투자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좋은 결정이라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5억 원의 자가 소유 아파트를 월 200만 원에 임대해 수익을 만들어 내고, 자신은 월 100만 원의 오피스텔에서 산다면, 결국 매월 100만 원의 이익이 생기는 것이니 좋은 투자 전략이라 할 수 있다.      


   “그럼 예전에 샀던 그 아파트는 임대를 하고 있나 보네요?”       


   내 질문에 그의 낯빛이 더욱 어두워졌다.       


   “말도 마세요. 그것 때문에 와이프하고 엄청 싸웠다니까요. 임대를 했었죠. 3년 전까지는요. 그런데 팔아 버렸어요. 그것도 집값이 오르기 바로 직전에 말이에요.”       


   얘기는 이랬다. 아이 교육에 대한 열정이 지대했던 그의 와이프는 아이를 서초동에 있는 명문 사립 초등학교에 보내기 위해 이사하기를 원했고, 원래 소유하던 아파를 팔고 새로운 아파트를 사는 대신 비교적 안정적인 월세를 선택했다. 여기 까지만 해도 그리 나쁘지 않은 시나리오다. 왜냐하면 경제적 관점에서 보았을 때, 원래 살고 있던 아파트보다 훨씬 비싼 아파트를 무리해서 사는 것은 그리 현명하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서초동 아파트의 비싼 임대료와 아이의 사교육비를 충당하기 위해 원래 소유하고 있던 아파트를 매각하면서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구매한 지 6년이 될 때 까지도 잘 오르지 않았던 그들의 아파트는 매각한 직후인 3년 전부터 오르기 시작해 지금은 그 가격이 원래의 두 배가 되었다고 한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지금 월세로 살고 있는 아파트 역시 가격이 폭등해 월세를 더 올려 주어야 할 형편이라고 했다.  


   아이에게 투자하기 위해 아파트를 정리한 '맹모삼천지교'와도 같은 판단이 나중에는 결과적으로 더 현명한 선택이 될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지금 현재의 경제적 평가로는 낙제점에 가까운 성적표였다.       


   “안타까운 얘기네요. 그럼 다른 재테크는 어떻게 하고 있어요?”       


   그는 재테크 얘기는 관심이 없다는 듯, 무심하게 대답했다.       


   “저는 그런 거 잘 몰라요. 사업 때문에 바빠서 그런 것에 신경 쓸 겨를이 없죠. 그리고 와이프가 다 알아서 하니까... 연금보험 인가? 그런 거 많이 가입해 놓았던데요.”       


   그의 대답에 나는 적지 않은 충격에 휩싸였다. 마침 그와 만났던 그때는 내가 연금보험의 위험성을 깨닫고 계약을 해지한 바로 그다음 날이었기 때문이다.     


  ‘연금보험으로 욜로 하려다 골로 갈 수 있다.‘는 어느 재테크 관련 유튜브 영상의 자극적인 타이틀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말라.’는 포트폴리오 투자 이론은 차치하고서라도 바쁘고 귀찮다는 이유로 자산 관리에 관심을 꺼 버린 것은 걱정스러운 일이었다.            


   앞에서도 이미 밝혔듯 나는 여전히 월급쟁이의 신분을 유지하고 있으며, 사업과 투자도 병행하고 있다. 포트폴리오 투자 전략은 부동산과 주식을 함께 해야 한다거나 가치주와 성장주 혹은 서로 다른 업종의 주식 종목에 투자해야 한다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회사에 다니거나 자영업을 하면서 투자를 한다거나, 사업과 투자를 병행하는 것처럼 수입원을 다각화하는 것 역시 포트폴리오 투자와 같은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수도꼭지를 여러 개 가지고 있다면 예측하지 못했던 일로 수도꼭지 하나가 고장이 나더라도, 남아 있는 다른 수도꼭지를 통해 물을 공급받을 수 있다.     


   한 우물을 파면, 하나의 우물만 갖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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