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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선동 서울의 틈

<유튜브가 불러낸 봄나들이>

by 차유진
익선동 거리

어느 유튜브 채널에서 아이를 어지간히도 홀려놨는지,

아이는 일주일 내내 “인사동 방탈출 가자”고 노래를 불러댔다.

계속 모른 척하기도 그렇고, 마침 봄옷도 새로 샀겠다—

그래, 어디 기분 한번 내볼까?


“오늘 엄마가 무려 인사동까지 방탈출 데려가 주는 거니까, 끝나고 집에 가서 영어 동영상 1개, 글쓰기 1개, 수학 10문제. OK?”

아이는 다 듣지도 않고,

고민도 없이 “콜! 콜!”을 외쳐댄다.


지하철 타는 걸 참 좋아하는 아이.

지하라 창밖 풍경이 그저 캄캄한 벽일 때가 많은데,

그게 그렇게 재밌을까…

맘 한구석이 짠해온다.


신경다양성이 있는 아이들 대부분이 가진 특성 같다.

줄 세우기, 바퀴 굴리기, 연속하는 걸 지켜보기.

드럼 세탁기 돌아가는 걸 한 시간 동안 구경하던

아이니까…


아이가 창밖에 정신 팔린 사이,

나는 조용히 말을 걸어본다.


“@@이는 방탈출에서 뭐가 제일 기대돼?”

“우리 종로 3가는 처음 가보는 거지?”

“끝나고 근처 또 다른 데 가볼까?”


대답은 건성.

아이의 시선은 그저,

반복되는 지하의 창밖에 머물러 있다.




역에 도착하자,

아이의 길 찾기 능력이 갑자기 발휘된다.

‘이럴 땐 아이의 공간 지각 능력에 감탄이 나온다.’


종로 3가 지하철역 밖으로 나오니,

와—다른 세상이 펼쳐졌다.


마치 70년대와 80년대,

90년대와 현대가 절묘하게 뒤섞인 느낌.

이발소 간판, 오래된 국밥집 거리, 악기상가의 낭만까지.

익선동 한옥카페 골목거리

그 거리는 과거와 현재가 만나,

시간이 멈춘 듯한 신비로운 공간이었다.

좁고 정겨운 골목을

정신없이 걸어가다 보니

간판에 적힌 그곳의 이름—익선동.


‘서울 산 지 17년인데, 여길 처음 와봤다니…’


외국인들이 웃으며 사진 찍고,

연인들, 가족들은 행복한 웃음을 짓고,

좁은 골목엔 멋스런 한옥 카페

식당들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었다.


이 정답고도 멋진 거리는 마치

해리포터의 호그와트 마법학교처럼

공간의 틈사이에 숨어있었다.


아이와 나는

서울의 어느 마법 공간에 잠시 이동된 걸까?




우리는 신나게 방탈출게임을 마쳤고,

익선동 골목을 누비며 골목탈출도 즐겼다.

익선동 블루베리 아이스크림

탈출(?) 중에 블루베리 아이스크림도 하나 나눠 먹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엄마 손을 꼭 붙잡고 다니던 아이는

어느새 익선동 골목을 유유히 거닐며 구경 중이었다.


그리고 그 기묘하기 짝이 없는

익선동 거리 한가운데서…

묘한 기쁨에 충만해지는 나였다.


그리 대단한 일은 없었는데

왜 이렇게 갑자기 가슴이 벅차오를까?


아마도, 햇살 좋은 봄날

사랑하는 아이와 함께 보낸 이 하루가

오래도록 우리의 추억 속에 남을 것 같다는

예감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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