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불로 사라진 천년의 기도>
며칠 동안 타오르고 있는 불은 사람도, 시간도, 기억도 모두 삼키며 재를 토해 놓았다.
천년고찰이라 불렸던 고운사의 불타버린 전각을 화면 너머로 바라보는데, 왜일까 마치 내가 알지 못하는 어떤 평온이 사라진 것 같다
한순간의 불길 앞에 수백 년이 사라지는 걸 보면서,
나는 묻고 싶어졌다.
우리는 과연, 이 비극 앞에서 무엇을 해야 할까.
전쟁도 아닌 시대, 누가 일부러 파괴한 것도 아닌데
수백 년을 품고 있던 시간들이
불 한 줄기 앞에서 아무 저항도 못 하고
사라진다는 건 무서운 일이다.
특히 고운사처럼 사람들의 기도와 발자국이 수없이 쌓인 공간이 한순간에 연기처럼 흩어졌다는 건 마치 ‘영원할 거라 믿었던 것들도 무너질 수 있다’는 걸 우리에게 정면으로보여준 것 같아 무서움이 배가 된다.
이런 감정은 그냥 ‘산불이 났다’, ‘문화재가 소실됐다’라는 뉴스 이상의 일로 남는다.
그 장소에 한 번도 가보지 않았지만,우린 마음으로 그 장소와 풍경을 오래 품고 있었던 것이다.그리고 그게 사라진 지금,우리 안의 어떤 기억되지 못한 감정들도 함께 사라져 버린 것 같아 더 슬프고, 더 아쉽다.
그곳이 고향인 사람에겐, 아닌이들보다 더한 상실감이 찾아올테고, 꼭 고향이 아니어도 그곳의 공기, 그 풍경에 위로받은 사람들에겐, 추억과 시간이 한순간에 사라져 버린 안타까운 일이다.
그리고 결이 다른...
내 마음을 오래 붙잡았던 또 다른 장면이 있었다.
산이 불타고,
하늘에선 생명을 걸고 물을 실어 나르던 그 시간—
땅에선 누군가가 아무렇지도 않게
여가를 즐기고 있는 모습.
소방 헬기 앞에 공이 날아다니는 풍경 앞에서
나는 마음 깊이 씁쓸함을 느꼈다.
그 간극이 너무나 커서,
그 태연함이 너무나 멀게 느껴져서—
속으로 그들을 비난하고 있었던 것도 같다.
그건 단지 그들만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이 사회가 가진 간극.
우리가 너무 익숙해져 버린, 각자의 세계.
하지만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쳤다.
혹시 지금 이 순간,
또 다른 누군가가 나의 뒤에서
내가 그들을 보듯, 나를 바라보고 있는 건 아닐까.
나도 어느새 그 간극의 한 편에 서 있는 건 아닐까.
그 씁쓸한 풍경 한가운데서,
틈 사이에 끼어버린 내가 있었다.
그렇게 나는 꺼지지 않은 불을 바라보며,
여러 감정을 오가고 있었다.
슬픔, 분노, 부끄러움, 그리고 다시 슬픔.
자연의 재해 앞에서 우리가 얼마나 무력한 존재인지,
또 그 무력함을 핑계로 부끄러움조차 외면하며 살아가는
우리는 과연 어디까지 무심해질 수 있는지.
모든 건 사라질 수 있고, 모든 것은 사라진다.
하지만 저런 방식이어선 안된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여전히 불이 타고 있다.
그 불길 한가운데, 누군가의 기도와 기억도 함께 타오르고 있을지 모른다.
... 그렇지만
불은 결국 꺼질 것이다.
그리고, 그 위에 남은 검은 흔적들 속에서
우리는 돌아보고 질문을 찾아야겠다.
우리가 이 비극 앞에서 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지키지 못했는지.
그리고 우리는 왜
무엇을 잃고 나서야 그 소중함을 기억하는 존재인지.
많은 것이 사라진 자리에서
나는 아직 잃지 않은 것을
붙잡고 싶은 마음으로 지금을 기록한다.
아무것도 할 수 없던 무력한 내가,
적어도 느꼈다는 사실만큼은
잃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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