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브랜드 '리즈 쿠퍼' 그리고 '버질 아블로'
패션 브랜드의 상품 그 자체보다 그것을 둘러싼 아이디어에 관한 논의를 더 즐기는 피곤한 사람도 어딘가엔 분명 존재한다. 내가 김동률 형은 아니지만, 그게 나야.
언젠가 패션 디자이너 ‘리즈 쿠퍼’는 패션은 감정의 영역에 들어있다면서 사람들이 더 나은 기분을 느끼도록 만드는 일이 패션 디자이너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패션 씬에는 이야깃거리가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리즈 쿠퍼는 한 매거진 인터뷰에서 ‘버질 아블로’에게 정말 감사한다고 전하며 그가 선물한 “너도 할 수 있어!”의 용기를 곱씹었다.
버질 아블로가 누구인가. 그는 ‘아이디어’로서의 패션으로 세계를 제패한 사람이다. 그는 인습적인 럭셔리 그리고 인터넷 키드, 힙합 키드, 보드 키드가 떠받드는 뉴 럭셔리 간의 모순을 파고든 전략가였다.
엄청 시시해 보이는, 누구라도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장난질이 난무한, 어린 시절 친구들과 엉뚱하게 상상하던 아이디어에 몇 만 달러의 가치를 부여한 패션 혁명가 말이다. 90년대와 00년대를 경험한 모든 쿨 키즈의 밑바닥 감정을 때린 천부적인 이야기꾼, 버질 아블로.
24/7 쉬지 않고 일하던 쇼트 슬리퍼 버질 아블로의 생각 공장은 스트리트와 하우스를 잇는 인식 상 최초 연결 프로그램이 되었다. 그가 그때 잘 만들어 무료 배포한 연동 프로그램은 지금도 후배들에 의해 계속 버전 업 중이다.
한편 리즈 쿠퍼는 어린 시절 Tumblr 텀블러에서 우연히 본 ‘BAPE 베이프’의 컬러풀 카모 패턴에 마음을 빼앗긴다. 곧장 그는 런던의 베이프 스토어에서 인턴으로 일하며 대체 무엇이 여기 이 상품들에 몇 천 달러만큼의 ‘가치’를 부여하는 건지를 궁금해한다.
결국 그가 해답을 찾은 곳은 소재와 이야기(역사)였다.
초년 성공의 아이콘 리즈 쿠퍼(현재 무려 25살)는 할아버지의 40년 넘은 칼하트 재킷이나 리바이스 청바지 등으로 구체화되는 미국의 빈티지 워크웨어와 군복, 바시티 재킷, 아웃도어 어패럴에 꽂혀 이미 10대 후반에 ‘기능’ 좋은 맨즈웨어 브랜드 ‘Reese Cooper’를 설립한다.
그는 매우 어린 나이에 파리패션위크에 성공적으로 데뷔했으며, 2019 CFDA/Vogue 패션 펀드의 파이널리스트에도 오른다.
LA 베이스의 패션 브랜드로서 야자수 무늬와 바이커 재킷, 스키니 진으로 대변되는 지역 패션의 전형성과 디자이너 간의 배타적인 문화를 탐탁지 않게 생각하는 그이지만, ‘기능성’ 옷을 잘 만들 수 있는 역사 있는 인프라를 갖춘 동네로서의 그곳을 긍정하며 자기 브랜드를 열심히 전개해 나간다(특히 캘리포니아 주의 대자연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그의 기능성 웨어 컬렉션은 비주얼적으로다가 참 볼 만하다).
옛적에 버질 아블로가 ‘랄프 로렌’의 플란넬 워크셔츠 위에 ‘PYREX’ 다섯 글자를 박아 세상을 놀라게 한 것처럼 그는 LA 친구들과 네트워크 모임을 가지며 이색 패션 시연을 해 스눕피를 놀라게 했다. 그건 바로 60년대부터 80년대 사이에 나온 빈티지 옷 위에 자기들만의 로고를 박아 넣으며 즐기는 놀이였다.
어차피 옛 시절의 옷을 고대로 카피하는 게 거스를 수 없는 추세인데, 그냥 옛 옷을 고대로 가져와 그 위에 로고 하나 고대로 박거나 가먼트 다잉하여 손쉽게 끝판을 깨버리는 그의 당돌하고도 멋진 제스처는 많은 생각을 부르게 하였다.
트렌드의 사이클은 돌고 돌기 때문에 자기 것을 계속 붙들고 있으면 "거 봐, 내가 뭐랬어? 뜬댔지? 근데 이거 내가 평생 하던 짓이라고!”라며 외칠 수 있는 시기가 반드시 올 거라는 생의 통찰을 전하는 나보다 8살 어린 동생에게 아주 멀리서나마 감사의 메시지를 전해본다. 땡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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