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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닥터K May 07. 2019

가시고기 엄마가 남긴 것

행복목욕탕(2017)

     

신파인데도 뻔하지 않아서 좋았다. 애쓸 필요 없이 자연스럽게 울게 해주는 영화라서 좋았다.

역시 영화는 마음을 정화시키는 최고의 매체였음을 증명해 주어 좋았다.


#1. 사랑받지 못했기에 더 아낌없이 주다!

 

영화 <23 아이덴티티(2017)>의 마지막 부분에 해리장애 살인범의 대사가 나온다.

여주의 심한 외상을 감지하고 “상처를 많이 받은 너는 더 진화된 존재다.”라는 대사와 함께 살려준다.

트라우마에 함몰된 사람도 많지만 트라우마를 현재 삶의 에너지 동력으로 활용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 사람에게는 오히려 "과거의 외상"이 "현재의 자신"을 구하기도 한다.

<23 아이덴티티>의 ‘케이시’와 <행복 목욕탕>의 ‘후바타’처럼.


- 엄마 ‘후타바’는 철없는 사고뭉치 연하 남편의 아내이자, 인생 최대 위기를 겪고 있는 사춘기 딸을 둔 강인하고 책임감 강한 소신 있는 여자다.   

- 인간 ‘후바타’는 남편에게 배신당하고 어린 시절 가장 중요한 대상에게 버림받아 가슴에 피멍이 든, 평생 희생한 대가가 어이없이 시한부로 돌아온 불쌍한 여자다. 오지 않을 사람을 기다리는 슬픔과 버림받은 아픔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자신과 인연을 맺은 두 딸을 뜨거운 모성으로 품는다.


영화 끝부분에 ‘후바타’의 사랑을 받은 모든 이들이 모여 고마움을 표현하는 장면은 그녀의 희생과 사랑이 부질없는 것이 아니었음을 증명한다.      


#2. 죽음을 준비하는 그녀의 방식


생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안 후, ‘후바타’는 죽음을 준비한다. 인간 ‘후바타’로서 그동안 못 누린 쾌락과 자유를 만끽해도 될 것을 그녀는 마지막까지 엄마 ‘후바타’를 선택한다. 가족들이 자기가 빠져나간 이후의 삶에서도 각기 제 역할을 잘할 수 있도록 돕기로 결심한다.

가업을 이어나갈 수 있도록 집 나간 남편 ‘가즈히로’를 데려오고, 학교폭력 피해로 학교에서 도망가려고 하는 딸 ‘아즈미’에게 스스로의 힘으로 해결하라고 속내와 달리 무섭게 밀어붙인다. 친엄마와 조우하게 하고, 남편의 새로운 딸 ‘아유코’도 떠나간 친엄마 대신 가족들과 함께 더불어 살아갈 수 있도록 조력한다.

그렇게 그녀는 마지막까지 “가시고기 엄마”가 된다.


#3. 그래. 가장 귀한 것은 시간이다


철없던 사고뭉치 남편도 가장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하고 어설프지만 아내에게 사랑과 미안함을 표현한다.

나약하고 회피하던 딸 ‘아즈미’는 당당하게 자신의 삶을 개척해 가고 가정의 안주인으로서의 역할을 해낸다.

새로운 딸 ‘아유코’도 가족 구성원으로서 제 몫을 다하며 ‘아즈미’의 귀여운 여동생이 되어 간다.


변해가는 가족들을 보면서 ‘후바타’는 얼마나 옆에 머물고 싶었을까? “더 살고 싶다!” 몰래 숨죽이며 절규하던 그 장면은 스크린을 뚫고 나와 심장을 에이도록 먹먹하게 한다.


호흡기에 의지해서 간신히 숨을 쉬는 앙상한 엄마에게 딸 ‘아즈미’는 절대로 못 보낼 것 같은 엄마를 떠나보내는 작별인사를 한다. 엄마 마음이 아플까 봐 끝까지 우는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고 애씀을 참지 못하고 통곡한다.


‘아즈미’의 친엄마 상봉을 위해 떠난 여행에서 만난 20대 청년의 "목표 없이 시간을 허비하는 태도"를 격렬히 꾸짖은 후 작은 인생 목표를 심어 주었다. 생명 데이터가 소진되어 가는 ‘후바타’ 앞에 생명의 소중함을 깨닫지 못하고  버리는 그 모습이 얼마나 화가 치밀었을까.


‘아즈미’ 역할을 한 떠오르는 뮤즈 “스기사키 하나”는 영화를 찍고 난 후 자신의 삶이 얼마나 소중하고 귀한 지 그리고 살아있는 오늘 가족에게 사랑을 표현해야 함을 절감하게 되었다고 인터뷰하였다.

그렇다. “지금 그리고 여기” 내 옆에 있는 이에게 아낌없이 충실한 것이 쇠잔해가는 인생에 대한 가장 큰 보상이자 최선의 선택이다.


#4. 영화는 삶의 멘토, 가이드 그리고 정서조절 장치!


어떤 타이밍에 웃고 어떤 타이밍에는 울어야 하는지가 이미 결정되어 있는, 의도적으로 억지 감정을 끌어내려는 영화들을 본다. 물론 그런 영화를 통해서도 감정들이 자연스럽게 배어 나오기도 하고 다양한 정서를 터트리기도 하지만 그리 시원하지는 않다.


이 영화는 생각지 못한 반전과 배우들의 진실된 표정 그리고 설득력 있는 대사에 마음을 빼앗기고 홀렸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한 상태에서 두 빰에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린다.


누군가에게 어깨를 토닥토닥, 머리를 쓰담쓰담해주는 위로를 받고 싶다면 이 영화를 보기를 권한다.

“행복 목욕탕” 영화 제목처럼 내 영혼과 마음이 2시간 동안 따뜻한 욕탕에서 기분 좋게 몸을 담근 듯 힐링되었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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