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닥터K May 07. 2019

심리상담 같았던 그들의 만남

커피메이트(2017)

이런 류의 영화들이 대체로 본능에 주목하고, 만남이 곧 서로에 대한 탐닉으로 이어지는 것에 반해 이 영화는 두 남녀의 정신적 교감에 주목하며 좀 더 식물적인 관계를 그린다.

감독의 말처럼 이 영화는 “사랑 영화”가 아닌 “인간의 내면을 솔직하게 표현한” 영화였다.


#1. 만남 계약 - 계약 이후 만남이 시작되다.


무료한 일상이 싫어서 카페에서 사람 구경하는 전업주부 ‘인영’과 그곳에서 자주 마주치는 목수 ‘희수’.

어느 날 ‘희수’는 ‘인영’에게 다가와 말을 걸고, 두 사람은 ‘커피메이트’가 된다.

이 카페에서만 만나야 하고 밖에선 만나지 않으며 혹여 마주치더라도 아는 체하지 않는 관계가 되기로 한다.

전화, 문자도 안 되지만 대신 카페에선 무슨 말이든 하기로 한다. 두 사람은 소소한 일상부터 시작해,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각자의 비밀까지 얘기하는 관계가 된다.




상담 첫 회기에서 상담의 개념과 관계, 허용되는 부분과 제한사항에 대해 구체적으로 나누고 이를 수용할 수 있을 때 상담계약이 형성되고 상담 관계가 형성된다.


#2. 솔직함이 주는 카타르시스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비밀들을 털어놓으며 두 사람은 함께 하는 시간 동안 숨 막히는 현실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을 느낀다.


때로는 상대가 내 주변인과 연관되지 않을 때 우리는 더 편하게 속 깊은 비밀을 공유할 수 있다.


'희수'와 '인영'은 친해진 이후 함께 옛날 게임을 한다. 빙고게임도 하고 성냥 쌓기 게임도 한다. 특히 "쪽팔려 게임"을 할 때는 길거리에서 람보 흉내를 내고 애국가도 부른다.


늘 남의 시선에 매여 사는 ‘인영’에게 많은 사람들이 다니는 도로가에서 ‘애국가’를 부른다는 것은 상상도 못 할 일이다. 망설이는 ‘인영’에게 ‘희수’는 권한다.

“비를 피하려고 도망치다가 흠뻑 맞고 나면 개운하고 속이 후련한 것처럼 시원하니 해보면 좋겠다."

그 말에 ‘인영’은 용기를 내고 사람들 앞에서 애국가를 부르고 속 시원한 경험을 한다. 돌발행동을 하면서 ‘인영’은 자신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한다.




상담을 하다 보면 내담자의 틀을 깨기 위해 때로는 역할연기나 사이코드라마 기법과 같은 다양한 시도를 한다. 어색하고 불편하지만 그것을 해냈을 때 변화할 수 있음을 알기에.


 #3. 진실 게임 - 마치 상담자와 내담자인 듯


아내의 변화 원인을 찾던 남편은 하루에 한두 시간 카페에 와서 어떤 남자와 몇 시간 이야기하고 헤어지는 게

전부인 것을 발견한다. 그 별 것 아닌 것이 뭐길래 빛을 잃었던 아내를 밝게 웃게 만들고 반짝이게 했다는 사실에 놀라워한다.


누구나 위로가 필요하다. 나를 지지해주고 인정해 주고 “당신이 옳다” 고개 끄떡여주는 사람이 필요하다.

네가 그렇게 한 것은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라고, 네 생각이 틀린 게 아니라고 지지해 주는 사람과 시간이 필요하다.  그 별 것 아닐 것 같은 시간이 사람을 위로하고 풍요롭게 만들고 반짝이게 한다.




상담은 내담자를 반짝이게 하는 중요한 시간이다. 상담이 진행되면서 비밀을 공유하면서 내담자는 상담자를 신뢰하고 둘의 관계는 친밀해진다.    

자신의 이야기를 영혼을 다해 경청하고 존중해주는 경험은 내담자를 반짝이게 한다. 존귀한 존재로 변화되는 경험이 된다.


#4. ‘인영은 왜 자해를 해야만 했을까?


불편한 진실과 마주치는 것은 힘들다. 스물스물 올라오지만 감당하기가 힘들어 그냥 눌러놓는다.

이대로는 안 되고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은 안다. 그리고 그 과정에는 커다란 용기가 필요하다.


‘인영’도 진실과 마주하면서 삶 전체가 흔들리게 된다.

그녀에게는 열등감이 가장 큰 상처다. 이혼한 가정사도, 보이기에 급급해하는 엄마도, 어려운 경제형편과 시원찮은 학업성적도 부끄럽다. 심한 열등감을 느꼈던 ‘인영’은 상류층에 편입되길 원했고, 그렇게 됐지만 생각만큼 행복하지 않아 공허함을 느낀다. 진짜 내 삶이 아닌 걸 알지만 그 삶을 박차고 나오지 못한다.


‘희수’와의 진실게임을 통해 고통스러운 ‘인영’은 자신의 살을 뚫고 만다.



최근 몇 년간 부쩍 자해하는 청소년 사례를 많이 만났다.

"왜 그들은 자해를 했어야만 했을까?"

마음이 너무 아파서 미칠 것 같으면 우리는 살기 위해 다른 것에 집중한다. 상처를 내면 그 순간 흐르는 따뜻한 피의 온도와 상처의 통증에 온 감각이 집중하고 잠시나마 마음의 고통을 잊게 된다. 그리고 마음의 상처는 보여줄 수 없지만 외부로 드러나는 몸의 상처는 다른 사람에게 보여줌으로써 관심을 받을 수 있다.  차라리 신체의 고통에 주목하는 것이 그들의 생존법인 것이다.


껍데기의 삶을 살며 열등감에 몸서리치는 ‘인영’은 차라리 자신의 살을 찢고 치료하지 않은 채 그 통증과 상흔에 집중하는 것이 덜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5. 그래. 하고 싶으니까 한 거다.


심리학과 상담을 공부하다 보면 행동의 원인을 분석하는 습관이 생긴다. 그러나 어쩌면 그 많은 개념들이 본질을 덮을 수 있다. 그 안에 숨어버리는 핑계를 제공하기도 한다. 복잡한 사건들도 결론은 단순하다.

"하고 싶어서 한 것이고, 하기 싫어서 안 한 것이다." 어떤 것을 잃기도 하지만 어떤 것을 얻을 게 있거나, 얻을 것을 기대하기에 하는 것이다.


‘희수’에게 부족한 것이 뭐냐고 묻는 ‘인영’의 질문에 자기에게 부족한 것은 “기사도”라고 말한다.

그 이유를 설명하며 ‘희수’의 치부가 드러난다. 스물쯤 첫사랑의 여동생과 바람을 피어 여자 친구에게 상처를 준 사건이. 그 이유에 대해 뱃사공을 유혹하는 “사이렌”에 비유하며 통제 불가능한 상황이었다고 핑계를 되지만, 결국 ‘희수’는 받아들이기 힘든 진실(자기 탓, 자신의 선택의 결과)을 인정한다.


“그러고 싶어서 한 행동이었다.” 그의 소박한 인정에 속이 펑 뚫렸다.

그래. 맞다. 다 ‘어쩌고저쩌고’ 핑계다. 하고 싶어서 했고, 하기 싫어서 안 한 것이다.


#6. 여자, 결국 껍데기를 벗어던지고 알맹이로 세상 앞에 서다.


‘희수’를 통해 “참 자기”와 직면하게 되었고 “의사의 아내, 상류층 사회”는 껍데기였음을 깨닫고 진짜(인간 인영)로 살기로 선택한다. 가면을 벗고 민낯을 드러냄이 두려웠지만 용기 있게 자신을 드러내기로 작정한다.

조건이 만들어 준 부유함과 안정감을 벗어던지고 소박하지만 자신의 힘으로 삶을 개척한다. “작은 직장, 소박한 관계, 작은 집”에 몸을 담고 그 새로움에 적응한다.


#7. ‘희수인영 터닝포인트였다.


‘희수’를 미친 듯이 사랑해서 남편을 떠난 것은 아니라고 본다.

그를 통해 “진실한 자신”을 만나는 경험을 했고 어떻게 삶을 살아야 할지에 대해 가치관을 명료화하는 시간을 가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전환점 역할을 한 매개체로 본다.




상담자가 스스로 살아내야 할 내담자의 삶에 무엇이 중요한 지 볼 수 있도록,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며, 그 방향으로 한 걸음을 뗄 수 있게 용기를 주는 것처럼.

이전 06화 '통'하였느냐?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