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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닥터K Oct 29. 2018

남의 여자는 원래 다 예쁘다

내 아내의 모든 것(2012)

#1. 남의 여자라고 보면 내 여자도 충분히 매력적이다.


결혼 7년 차, 한참 손 가는 아이들의 웃음소리도 없고, 남편이 출근하고 늦은 밤까지 혼자 집을 지키는 그녀는 외로움과 허전함을 소리로 채우려고 애쓴다. 그리고 위선자가 되지 않기 위해 마음의 소리를 실시간으로 뱉는다. 그런 그녀의 소리에 질려 버린 남편 '두현'은 환멸을 느끼고 어떻게든 아내를 떼어버리고자 한다.


'정인'에 비해 속 이야기는 1도 못하는 '두현'은 “청부 외도”를 맡기고 그 과정을 지켜본다. 처음엔 잘 되기를 바라다가, 이상하게 자꾸 신경이 쓰이고, 스킨십은 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하고, 결국 그녀의 가치를 발견하면서 “청부 외도”를 취하한다. 한 여자를 사이에 두고 두 수컷의 싸움이 시작된다.


청부외도를 스토킹하는 '두현'


#2. 사람은 좋아하는 일을 하면 반짝반짝  윤이 난다.


외로웠던 '정인'은 남편의 계략에 의해 라디오 방송 게스트를 맡게 되고, 사이다 같은 시원한 독설과 사회문제에 대한 날카로운 비평에 청취자들은 환호한다. 그 인정받음으로 생기 없던 그녀의 표정에 생기가 돌고 남편만 기다리던 그녀가 원고를 쓰며 열정을 쏟는다. 아내에 대한 주변의 칭찬과 부드럽고 여성스러운 매력을 재발견하면서 '두현'은 다시 아내'정인'에게 빠져들고 절대 놓치면 안 될 소중한 존재로서 다가온다.


아내가 변한 건 카사노바와의 연애라고 보지만 나의 관점은 다르다.

'성기'는 단지 누구의 아내에서 여자 그 자체로 다시 태어나도록 조력자 역할을 했을 뿐이고, 아내 '정인'은 자신이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존재을 확인할 수 있어서 즐거웠고 남편과 열애했던 그 예뻤던 시기가 모락모락 재현되어서 기뻤던 것이다.

'정인'에게 카사노바 '성기'는 남편 '두현'의 아바타이며, 그녀는 '성기'를 보면서 지독히 사랑했던 그 시절의 '두현'을 떠올리고 있었을 것이다. 승승장구하던 남편과 달리 무료함과 상대적인 열등감을 느꼈던 그녀가 힘겨웠던 우울에서 내 일을 갖게 되고 그 일에서 인정받았으므로 반짝반짝 윤이 났던 것이다.


인간의 기본 욕구인 자아실현!

뿌연 먼지로 가득 찼던 마음이 반짝반짝 윤기를 내었고 그 모습은 치명적으로 아름답고 매력적이었던 것이다. 사랑이 두려워 도망쳤던 카사노바의 신념마저 변화시킬 정도로.

사회의 위선과 관례에 동승하지 않고 남들이 미처 보지 못했던 사회 곳곳을 매의 시선으로 관찰하고 표현하며  세상을 변화시키고자 한 욕망이 충분히 매력적이었던 것이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빛이 나기 시작하는 '정인'


#3. 카사노바의 천적, 정인


'성기'는 진심으로 사랑한 연인을 잃었기에 사랑을 농락하고 희롱하지만 사랑 불구가 되어버렸다.

각본에 철저한 베테랑 카사노바였지만 어느새 각본은 거품처럼 사라지고 계획에도 없었던 진심을 토로한다. '정인'은 그런 그의 상처를 쓰다듬어주고 진심 어린 위로를 한다. 처음으로 진심을 보여준 그는 전설적인 카사노바가 아닌 인간 「강성기」로서 그녀를 사랑하게 된다. 그렇지만 그녀의 눈동자 속에 다른 남자 -남편-가 있음을 들여다본  후, 쓸쓸히 떠난다. "매일 그대와" 노래를 부르면서.


사랑공포증 '성기', '정인'을 만나 치료되다.


#4. 자전거는 사은품으로 줘도 자전거 타는 기술까지 주지는 않는다.


7년이라는 시간 속에서 둘은 리트머스 종이처럼 서로 물들어가며 닮아간다. 남에게 아쉬운 말 못 하던 '두현'이 이제 소리친다. 속으로 삼키고 삼키던 말을 어설프게나마 뱉게 된다.


신문 사절이라고 부쳤으나 꾸준히 신문을 넣던 신문배달원이 말했다. 

"1년 구독 조건으로 사은품 자전거를 받았으니, 1년 구독할 의무가 있다". 

남편이 소리친다. "자전거가 불량품이라 위험해서 쓸 수 없다."

신문배달원이 응수한다.  

"그건 자전거 탓이 아니라, 자전거를 못 타는 기술 탓이라고. 우리는 자전거를 주는 거지 자전거 타는 기술을 주는 건 아니라고".


이 부분은 영화 속 메타포다. 다른 말로 "결혼을 한다고 결혼의 기술을 보너스로 얻는 게 아니라고"

결혼의 기술은 브레이크를 밟아야 할 때브레이크를 잘 밟고 액셀을 밟아야 할 때 엑셀을 잘 밟는 것이다.

이 둘은 민감하게 맞추지 못했기에 자전거를 방치해 두었고 결국 조금씩 녹슬어간 것이다. 겉은 멀쩡해 보이나 쓸 수 없는 흉물이 되어 버린 것이다. 둘 다 결혼의 기술이 서툴렀고 제삼자가 개입되면서 다시 서로를 볼 수 있게 되었고 소중함을 새롭게 깨닫게 되었다.

이 둘은 다시 사는 것을 선택하였고, 서로의 소중함을 깨달았으니 이제는 행복해지리라.


하지만 여기에도 조건이 있다. 둘 다 "결혼(사랑)의 기술"을 잘 익혀야 한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넘어지고 엎어지면서 생채기도 나겠지만, 포기하지 않고 기술을 익히면 베스트 드라이버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한 사람은 꾹꾹 참고, 한 사람은 고래고래 소리 지르고 한 사람은 도망치고, 한 사람은 잡으러 다니고 이 고정 역할에서 벗어나서 ‘주거니 받거니’ 역할을 교대로 하고 좀 더 진심을 다해 서로의 눈동자를 바라보며 배려하고 도와준다면 조금씩 나아질 것이다.


#5. 부부란 서로 마주 보며 어정쩡한 춤을 추는 것



표현도 없고 내 눈을 바라보지 않는 남편에게서 '정인'은 사랑받지 못하고 매력 없다는 자괴감에 빠졌었다.

"연애할 때 나는 예뻤고, 당신은 멋졌다. 아직도 내가 예쁘냐?"라고 묻는다. 그러고는 함께 마주 보며 춤추자고 제안한다. 우아한 왈츠가 아닌 <아비정전>의 주인공들처럼 어정쩡하나 유쾌한 댄스를 춘다.

완벽한 박자와 동작이 뭐 그리 중요한가! 둘이 즐겁고 좋으면 되지 않는가!

굳이 남들 사는 것과 비교할 필요도 없고, 서로 마주 보고 웃으며 즐거운 방식으로 사는 게 가장 중요하지 않는가.


#6. 아름다운 거리두기


'정인'은 말한다. '성기'가 나에 대해서 너무 잘 안다고. 그러나 그가 사용한 탄알은 모두 의뢰인 남편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던가. 남편 '두현'이 공수한 탄알을 받아서 '성기'는 큐피드 총을 난사했고 '정인'은 탄복했다.

많이 아는 만큼 사랑할 수 있다면, 잘 알지 못해서 진정한 사랑을 못한다면, '성기'는 '정인'을 사랑할 수 없고, 남편 '두현'만이 정인을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사람을 제대로 알고 싶다면 일정한 거리를 두고 제삼자의 시선으로 관찰해 보는 것이 어떨까?


남편 '두현'은 '정인'을 미행하며 아내가 다른 남자와 함께 다양한 감정과 행동을 표현하는 모습을 살펴본다.

그 과정을 통해서 가까이에서는 보이지 않았던 아내의 참모습을 발견한다.

"부분"만 보이던 것이 "전체"가 보이기 시작하고,때로는 볼록하고 때로는 오목하게 보이던 것이 거리두기를 통해 본연의 모습 그대로 -각도의 장난침 없이- 온전하게 보게 되는 것이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여행의 끝에 생각나는 그 사람이다.


여행은 우리에게 자유를 준다. 역할과 책임감에서 면죄부를 주고 그동안 자유인으로서 "나답게" 살 수 있게 해 준다. 그래서 내가 원래 아름다운 사람, 멋있는 사람임을 확인하게 해 준다.

여행을 하는 동안에 낯선 아름다움에 미혹되지만 결국에는 익숙한 것에 대한 소중함을 새롭게 깨닫게 된다.

여행을 손꼽아 기다렸고 여행이 끝나갈수록 못내 아쉽지만 결국 되돌아온 집에서 우리는 교훈을 얻는다.

"역시 내 집이 최고구나!"


'두현'과 '정인'은 각자의 여행을 하고 돌아온 것 같다.'정인'은 자신을 아름답게 봐주는 '성기'와 새로운 여행길을 걸었고, '두현'은 '정인'이 없는 빈 집을 지키면서 여행을 떠난 이가 엽서와 사진을 보내면 그 사람이 더욱 그리워지는 것처럼. 여행을 떠난 '정인'의 밝은 표정과 상기된 목소리를 들으면서 그녀를 그리워하였다. 그녀가 있어서 답답하다고 느껴졌던 집이 그녀가 없어서 허전하고 스산하게 느껴졌다.


어차피 여행의 목적은 새로운 깨달음을 통해 성숙한 사람이 되어 집으로 귀의하기 위함이 아니던가!

그렇게 위험한 여행을 떠났던 정인은 무사히 집으로 돌아왔고 소중함을 깨달은 그는 그녀를 고맙게 안았다.


그토록 도망치고 싶었던 아내인데, 그렇게 안고 싶은 <그녀>가 되었다.


#7. 정인이 내게 전해 준 메시지


순응적이고 일반적인 -하고 싶은 말 있고 반박하고 싶어도 꾹 참고 마는- 나에 비해 '정인'은 까칠하고 반항적이고 삐뚤어진 시각을 가진듯 하지만, 습관적 관례의 쳇바퀴를 도는  바짝 차리고 눈 크게 뜨고 제대로 표현하며 살라고 호소하는 듯 보였다.

사회의 관습, 관례, 매너라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서 그건 매너가 아닌 매너리즘이라고 톡 쏘아붙였다.

침묵을 싫어하는 '정인'은 항상 도마를 두드리며 믹서기와 청소기 소리를 내면서 침묵하지 않고자 했다. 침묵하는 것은 죄악이며 위선이라고 울부짖는 것 같았다. 세상의 모든 위선에 대해 대항하는 마지막 투사 같았다.


'정인'은 내 귀에 속삭인다.

더 이상 속으로 꿀꺽 삼키지 말고 이제는 속시원하게 밖으로 내뱉으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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