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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닥터K May 07. 2019

'통'하였느냐?

컨텍트(2017)

영화는 천천히 느리게 흘러간다. 마치 일어나는 사건의 함축된 의미에 대해 충분히 고찰할 수 있는 시간을 주려는 듯이. 뻔한 것은 과감히 생략하고 중요한 것에만 오롯이 집중하는 기법도 훌륭하다. 시간의 틀에서 벗어나 과거, 현재, 미래를 자유롭게 유영하는 플롯 또한 멋지다.


미국 정부의 요청으로 언어학자 ‘루이스’는 물리학자 ‘이안’과 팀을 이뤄 외계인들과의 대화에 나선다.

그들의 미션은 “그들이 왜 지구에 왔는지 알아내는 것”이다. 그러나 완전히 다른 언어 체계 때문에 그 과정은 결코 녹록지 않다.


#1. 과거로 되돌아갈 수 있다면 다른 길을 택하겠는가?


‘헵타포드어’를 배우면서 미래를 알게 된 ‘루이스’는 ‘이안’에게 묻는다.

“만약 당신이 미래를 모두 알게 된다면 현재를 바꾸겠냐?”


‘루이스’는 행복과 함께 어두운 그림자도 다가온다는 것을 알기에 혼돈스럽고 쉽사리 결정을 하지 못한다. 상처 받지 않기를 결정했다면 충분히 도망갈 수도 있었을 텐데 결국 똑같은 선택을 한다.

남편은 그녀가 미래를 알면서도 잘못된 선택을 했다고 화 내고 떠났지만, 상처가 싫다고 포기했다면 그들과의 행복하고 따뜻한 영혼이 충만했던 그 시간들도 '원 플러스 원'으로 동시에 사라지는 것임을 알기에 그녀는 용기 내어 슬픈 사랑을 선택하였다.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한다. 다시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그때처럼 안 그랬을 거라고.

어리석은 선택 대신에 좀 더 현명하고 멋진 선택을 할 거라고.

그렇지만 우리는 안다. 다시 되돌아간다 하더라도 지금 아는 것을 그때는 알 수 없었기에 똑같은 도돌이표를 돌 거라는.


#2. 현재를 온전히 즐기고 있는가?


우리는 모두 시간에 묶여 있다. 과거에 매여 있으며, 미래에 대해서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

그래서 일어나지 않는 미래에 대한 걱정과 불안으로, 과거에 받은 상처와 후회로부터, 지금의 소중한 순간들이휴지조각처럼 버려진다. 변화할 수 없는 것에 집착하느라 변화할 수 있는 것을 소모시키고 있다.

막연히 미래를 알게 되면 덜 불안하고 좀 더 만족스럽지 않을까 생각해 본 적이 있다. 그러나 어쩌면 앞을 모르는 것이 더 축복일 런지 모른다. 미국의 사상가 랠프 애머슨의 말처럼 “인생은 운명이 아니라 여행”이라면.


#3. 본질에 대해 고민하지 않는 사람이 가장 게으른 사람이다.


시간이 없으니 빨리 성과를 내라고 닦달하는 군인에게 ‘루이스’는 그럴수록 문자를 가르치고 의미를 이해시키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설득한다. 시간이 없다고 잘못 이해할 수 있는 것을 그냥 두는 것은 오히려 시간을 낭비하는 것이라고.


서둘러 시간을 번다 해도 제대로 하지 않으면 더 많은 시간을 들여서 고생해야 함을 잘 안다. 열심히 하는 것보다 잘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도. 그런데도 왠지 빨리 가는 사람들을 보면 그들의 보폭에 맞추어야 할 것 같고, 그 속도에 맞추지 않으면 뒤처질 것 같은 조급증과 불안감이 생기기도 한다.


인생의 내비게이션을 수시로 확인해 봐야 한다.

“지금 가고 있는 이 방향이 맞는가?”

“이 길은 내가 원래 가려고 했던 그 길인가?”

“처음에 마음먹었던 나와 지금의 나는 어떻게 다르고 어떻게 같은가?”


#4. 새로운 존재와 소통하고 잘 교류하는 방법


‘루이스’는 보호복 속에 온 몸을 꽁꽁 숨긴 채 자신의 존재를 알리려고 했으나, 헵타 포드 종족들이 혼란스러워한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곧 옷을 벗는다. 주변에서는 위험하고 감염될 수 있다고 말렸으나, 진정한 만남과 소통을 위해서는 온전히 자신을 보이며 다가서야 함을 깨달았고, 실천하였다.  온전히 자신을 보여준 결과 그들과 접촉되었고 소통할 수 있었다.


새로운 존재는 늘 불안하다. 그렇지만 잘 생각해보면 그가 나를 불안하게 한 것이 아니라, 낯선 것에 대한 혹은 예측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내 안의 두려움’으로 불안을 없애기 위해 방어하고 파괴하려는 것일 수 있다.


군인들과 몇 개국에서는 외계인은 매우 위험하며 “적”이므로 우리를 분명히 해칠 것이니 공격에 대해 방어태세를 취했고, ‘루이스’는 그들은 적이 아니니 위험하지 않으며 우리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해석하기 위해 고민하였다.


영화 속 ‘루이스’는 ‘진짜 나’와 ‘진짜 너’가 소통하는 굿 모델을 보여준다.

소통하고 싶다면, 먼저 나 자신을 보여줘야 하며, 상대에 대해 방어적이고 두려움을 가지지 말고 순수하게 궁금해야 하고, 혼자 계산하고 예측하고 간접적인 방법이 아닌 직접 질문을 해야 한다고 잘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 그래야 “진짜 우리”가 만날 수 있다.


#5. 넌 제로섬 게임(Non Zero-sum game)


이 영화는 힘들고 어려워도 모두 함께 가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협력”은 누군가가 포기하고 희생한 만큼 다른 누군가의 이익이 증가하는 “제로섬 게임”이 아니라 결국 모두에게 유익한 “넌 제로섬 게임”임을 강조한다. 나를 돕게 하고 싶다면 먼저 내 것을 상대에게 주라고 알려준다.

내 것은 꼭 쥐고 주지 않은 채 상대 것만 갖고 오려고 하는 것에서 “제로섬 게임”이 반복되는 것이니.


#6. 두 타입(Type)의 사람들 - ‘루이스미래를 볼 수 있었던 이유


한 타입(Type)의 사람들은 "그냥" 일을 한다.

다른 타입(Type)의 사람들은 일에 "완전히" 빠져든다.


사피어 워프의 가설 - “사용하는 언어가 사용자의 사고에 영향을 미친다.” 

다른 언어학자들은 단지 해석의 도구로서 언어를 사용하지만, ‘루이스’는 후자 타입이라 이 가설처럼 더 깊이 다가갈 수 있었고 새로운 사실을 발견할 수 있었다.

“헵타포드어”(비선형 문자; 시작과 끝이 없는 원형이고 시간의 흐름이 직선이 아니므로 과거, 현재, 미래를 전부 하나로 체험)에 익숙해질수록 새로운 사고방식을 통해 미래를 볼 수 있게 되었다.


일을 할 때 마지못해 발만 살짝 담그는 사람과 일과 혼연일체가 되어 힘들지만 그 힘듦을 극복하면서 자신을 성장시키는 사람들이 있다.


결국 이 세상의 ‘루이스들’이 유한한  삶의 한계를 스스로 극복하며 무한한 행복으로 끌어당기는 진정한 탐험가가 아닐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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