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닥터K May 06. 2019

꿈꾸는 두 청춘의 찬란한 사랑을  그리다

라라 랜드(2016)

무지개 빛 색채의 보는 즐거움, 감미로운 음악, 색다른 전개의 신선함, 명품 연기, 감독의 놀라운 연출력의 조화로움에 절로 몰입되는 영화였다.

오랜만에 오감만족, 감성 충만 영화를 보면서 내내 설레고 먹먹하고 가슴 떨렸다. 영화를 통해 누리고자 한 모든 것들이 고스란히 잘 품고 있었그래서 영화 속 세계로 내 손을 잡아끌어서 하나가 되게 만들었다.


처음 볼 때 이 영화는 ‘슬픔’과 ‘안타까움’이었다.

두 번째 볼 때는 ‘즐거움’과 ‘밝음’이었다.

스토리를 따라간다고 미처 보지 못한 감독의섬세한 장치들을 숨은 그림처럼 찾으면서 보니 더 멋지고 풍요로웠다. 다음엔 또 다른 어떤 감성으로 다가올지 기대된다.

 

#1. 같은 음악, 설레기도 하고 안타까운 연주곡

 

재즈 피아니스트 ‘세바스찬’은 같은 곡을 연주한다. 처음에는 ‘미아’의 마음을 홀려서 둘을 연결시켜주는 새로운 시작의 곡이었고,마지막에는 그의 미련과 회한과 슬픔이 사무치는 곡이었다. “그때 ~했더라면”를 끝없이 반복하는 것 같았다.


‘처음 만났을 때 그녀를 외면하지 않았더라면...’,

‘그녀의 공연에 가서 축하를 했더라면...’,

‘그 공연이 대박 나서 집으로 돌아가지않았다면...’,

‘그녀가 파리로 떠날 때 여기에 남지 않고 달려갔더라면..’

‘그랬다면 지금 당신 옆에 있는 사람이 ’나‘일 텐데..’.

마지막 장면에서 그의 가정법이 진행될 때‘저게 진실일까? 기대하며 가슴 졸이며 보게 되었다.

그러나 현실이 아니었다. 과연 어떤 현실이 다행인 건가!


#2. 청춘남녀들은 자주, 참 쉽게 오해한다. 


남자가 청년이고 혼자일 때 그들은 꿈을 꾼다.돈키호테처럼 무모한 도전을 한다. 칠전팔기로 실패를 밥 먹듯 해도 진심으로 위로하며 어깨를 두드려주는 한 명의 친구만 있다면 실패를 안주삼아 술잔을 기우는 것만으로 다시 새 꿈을 꿀 수 있다. 그렇지만 이는 시한부라, 진심 사랑하는 여자가 생기고 그녀와 미래를 함께 하고 싶어 질 때 그 무모한 꿈들은 빛이 바래진다. 그런 자신이 서글퍼지고 불쌍해지지만 애써 합리화한다.


‘세바스찬’도 사랑하는 연인 ‘미아’와 그녀의 가족이 자신의 불안정한 현실을 수용하지 못하는 것처럼 여겨지자 혐오했었던  연주를 하기로 결심한다. 단 한 번도 연인에게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고 한 번도 물어보지 않고 그냥 확신한다. 이 길이 그녀가 원하는 유일한 길일 것이라고.


‘미아’의 “정말 이런 일 하고 싶나?”는 질문에 벌컥 화를 낸다.“이게 당신이 원한 거였잖아!”“인기 있고 유명한 연주가는 모든 뮤지션의 꿈이야.”라며 합리화한다. 그녀의 전화통화를 자기 방식으로 해석하고, "확인" 없이 "확신"했던 것이다. 


#3. 내가 빛나지 않으면 사랑도 빛날 수 없다.


전통을 지키고 자신의 클럽을 가지고 싶었던 ‘세바스찬’은 꿈을 내려놓고 자랑스러운 연인이 되기 위해 빛을 점점 잃어가고 매일 지쳐간다. 그로 인해 사랑도 점차 소원해진다.


대학도 그만두고 부푼 꿈으로 LA로 상경해서 수년간 오디션만 보는 배우 지망생 ‘미아’도 ‘세바스찬’의 격려로 직접 희곡을 쓰고 초연을 올렸으나 사람들의 악평에 자괴감이 들어 모든 걸 포기하고 집으로 되돌아간다.


초연 실패가 바로 이별 선언으로 이어진다. 자신의 꿈과 희망이 무너지니 그 가슴에는 다른 사람이 들어올 자리가 없다. 아픈 내가 꽉 차 있어서다른 이에게 내어줄 마음의 빈자리가 없고 품어줄 공간이 없기 때문이다.

스스로가 빛나지 않을 때 아름답게 사랑하기란 너무 어렵다. 


#4. 고상하지 않아서 좋다. 가끔 날 것이 좋다. 


훌륭한 상담가가 되기 위해서 수 십, 수백 개의 대화기법을 배운다. 성장하면서 - 한 번도 듣지도 보지도 못한 - 새로운 단어와 용어들을 조합하여 공식에 맞추어 연습해야 한다. 내 입에 착 달라붙어서 완전히 체화되도록.


가끔은 날 것 그대로 표현하고 싶다. 표정도 그대로 드러내고, 속상하면 속상한 대로,  열받으면 열받은 대로, 화나면 화나는 대로 생목소리로 지르고 싶다. 이런 내 모습이 당황스러울지도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를 피 끓는 인간으로서 받아 줄거라 믿는다. 가끔 제3 언어인 상담 대화법은 던져놓고 제1 원시 언어로 싸운 후 명상의 시간은 나를 더 성장시키고 우리의 관계도 성장시킨다.


영화 속 주인공들도 날것의 싸움을 했고, 휴지기를 통해 마음을 정리하는 시간을 가진다.

‘세바스찬’도 성공한 연주자는 ‘미아’가 원함이 아닌 자신의 착각이었으며진정 중요한 것은 초심을 잃지 않는 것임을 깨닫고 원래 가고자 하던 길을 걷는다.


‘세바스찬’은 ‘미아’의 강점을 발견하고 좀 더 주체적으로 살도록 격려했고, 그녀의 능력과 잠재력을 아낌없이 칭찬했다. 그녀의 생각의 결을 바꾸었고 생각에만 머물지 않고 행동하도록 조력하였다. 그녀는 그의 격려에 힘입어희곡을 썼고 극을 올렸다.   자괴감에 빠져 모든 것을 포기하려고 했던 그녀를 찾아가 새로운 기회에 도전하도록 인도하였고 그 결과, 그녀의 노력이 꽃을 피울 수 있었다.


그녀에게 그는 참 고마운 사람일 것이다. 내 꿈을 이해하고 자신의 꿈인 양 여겨주는 사람을 만나기가 얼마나 어렵고도 귀한 일인가. 이런 고마운 사람을 어찌 영원히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5. 인생도 재즈와 같다. 소통과 조화 


석양이 저무는 바닷가 하늘이 아름다운 색채들로 블렌딩 되듯이 이 영화에는 흑인과 백인, 다양한 인종들이 재즈 음악과 함께 자연스럽게 섞여 있다. 석양이 지는 바닷가에서 흑인 부부와 만나 춤을 추고, 흑인 친구가 이끄는 밴드의 일원으로서 활동하고 그가 운영하는 재즈카페 ‘셉스’에는 흑인과 백인이 자연스럽게 섞여서 재즈를 즐긴다.


감독의 의도였을까. 자연스러운 섞임이 보기에 참 좋았다. 여러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 나름의 소통법을 개발한 것이 재즈의 시작이라고 한 것처럼 평소에 선을 그었던 그 간격을 줄여주니 참 좋았다.


재즈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미아’에게 정통 재즈음악을 들려주고 기원을 알려주고 재즈의 원리를 설명한다.  

사랑하지 못하는 것은 잘 모르기 때문이라고 잘 알게 되면 사랑할 수 있다고 논박한다.


인생도 재즈와 같아서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 모든 게 처음이고 민감하며 치열하게 먼저 치고 나오고 때로는 기다리고 또 그 모든 것들이 조화가 되어야 한다. 치열하게 싸우면서 조화를 이루어 결국 듣고 보는 사람에게 감동을 줘야 하는 것, 인생도 재즈와 같지 않을까.


#6. 끝은 다 슬프다. 왜? 끝이니까


영화에서 두 연인이 만나 사랑했던 찬란한 사계가 흐르다가 갑자기 5년 후가 된다. ‘미아’는 그토록 원했던 주연배우가 되었다. 그녀 옆에는 예쁜 딸과 든든한 남편이 있다. ‘세바스찬’은 정통 재즈카페를 열었고, 90대 노인들만 찾을 거라는 친구의 예언과 달리 다양한 인종, 연령대의 사람들이 즐기는 곳이 되었다.


끝, 이별, 헤어짐 앞에서 미련이 없는 사람이 있을까. 아쉬움이 없는 사람이 있을까. 사랑하는 가족의 임종,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은 너무 슬프다.


‘왜 살아계실 때 잘하지 못했을까’,

‘왜 함께 할 때 좀 더 잘해주지 못했을까’, 

그때 그 말은 차마 하지 않았어야 했었고, 정작 해야 할 이야기는 못했다는 사실에 비통하다.


그 남겨진 페이지는 수시로 슬픈 음악이 되어 가슴을 헤집고 울린다.

이별 앞에서는 후회하지 는 자가 없다고 하는 누군가의 말처럼끝이 주는 뉘앙스는 우리를 슬프게 한다.


#7. 마지막으로 그들이 나눈 대화는 무엇이었을까? 


사랑의 끈이 계속 연결되려면 시간과 노력을 들여서 함께 하는 시간을 만들고 생각과 마음을 나누고 틈이 벌어지지 않도록 끝없이 나누어야 한다. 사소한 약속들도 새기고 실천하도록 공을 들여야 한다.그런데 “나는 여기에 남아 원하는 장소에서 꿈을 펼치고, 너는 멀리 그곳에 가서 꿈을 펼치고 우리 물 흘러가는 대로 가 보자”는 것은 그 끈을 놓아버린 것이다. 그래서 둘은 이별한다.


5년이라는 세월이 지나 갑자기 조우하여 두 사람은 눈빛으로 대화를 나눈다. 다시는 만나지 못할 것을 예감하는 찰나, 그 둘은 어떤 대화를 나누었을까?


‘미아’는 아마도 ‘축하해. 꿈을 이루었구나. 자랑스럽다. 함께 했던 그 시간 행복했고. 영원히 당신의 꿈을 응원할게 ‘라고 지 않았을까?

‘세바스찬’은 ‘당신이 꿈을 이룰 거라고 확신하고 있었어. 축하해. 당신도 행복하길 바라.’라고 답하지 않았을까?


아무도 모른다. 이루어지는 것이 더 큰 사랑인지, 거기서 마침표를 찍은 것이 더 큰 사랑인지.

우리가 아는 그들의 사계보다 5년간의 새 연인과의 사랑이 더 크고 더 아름다웠을지는 알 수 없으니.

내가 모른다고 더 소중하지 않고 가치 없다고  어찌 얘기할 수 있겠는가! 

   

끝이 있으면 더 아름답고 더 가슴 시리다. 우리는 이루어지지 않은 것에 더 큰 의미와 점수를 부여한다.

신기하게도 그 아팠고 힘들었고 외로웠던 시간들은 다 휘발되어 날아가고, 남은 것은 고마움과 더 잘해주지 못한 미련과 안타까움, 행복함이니 당연히 모든 끝난 사랑들은 다 찬란하고 아름답다.   


이 세상의 모든 끝나버린 사랑에 경의를 보내며 마침표를 찍는다.

이전 03화 거세당한 가장 '기택'을 치료한다면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