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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a Feb 11. 2023

발리니스의 결혼식

 발리엔 행사가 많다. 결혼식, 장례식, 명절, 보름달 등등 기념할 일이 많고 많다. 늘 지나다니면서 눈에 걸리던 저 인형들은 뭘까 궁금했는데 드디어 오늘 뭔지 알아냈다.

문 앞에 나란히 서있는 저 남녀 인형은 결혼을 알리는 장식이다. 대문 앞에 저런 장식이 있다면 그날 그 집에 결혼식이 있다는 의미다. 신들의 섬, 발리에 사는 사람들은 여러 가지 미신을 믿는다. 우리가 손없는 날을 잡아 이사를 하듯 발리 사람들도 길일을 받아 결혼한다. 그래서 결혼식이 있는 날엔 여기저기서 결혼식을 위한 인형들이 서있는 광경을 많이 볼 수 있다.


입구에 서있는 화환이다. 커다란 꽃장식이 주가 되는 한국의 화환과 달리 발리에서는 저런 이젤을 세워 결혼이나 개업을 축하하는 문구를 적고 테두리에만 꽃장식을 달아 보낸다. 새로 오픈하는 가게 앞에 세워진 이젤의 개수가 많고, 성대할수록 사장님의 인맥이 대단한 것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누가 보냈는지 찬찬히 둘러보면 가게 사장님의 살아온 이력을 대략적으로나마 유추할 수 있다. 결혼식에도 마찬가지 오늘 결혼하는 젊은 커플의 직장에서 부부의 이름을 적어 축하메시지를 보냈다.


 

결혼식이 열리는 이곳은 신랑과 가족들이 함께 살고 있는 집이다. 결혼식을 위해 집안 곳곳 예쁜 장식들이 즐비하다. 아참 축의금, 축의금은 입구에 있는 상자에 넣고 들어간다. 보편적인 금액은 모르지만 발리 사람들 평균 급여가 3jt (250,000원) 정도라고 생각하고 적정한 금액을 넣으면 된다. 봉투에 넣지 않아도 된다. 그냥 상자에 넣고 들어갈 수 있다.


결혼식은 2박 3일간 진행된다. 신랑 신부는 아침 8시부터 새벽 2시까지 손님을 맞는다. 우리는 두 번째 날 저녁에 방문했기 때문에 신랑신부 얼굴에 지친 기색이 역력하다. 20대 초반의 신랑신부는 오랜 동료이자 친구였고 신부에게는 장기연애를 하던 남자친구가 있었다. 남자친구와 헤어진 후 힘들어하던 신부를 위로하다가 사랑에 빠지게 되어 연애를 시작한 몇 개월 만에 결혼하게 된 커플이다. 사람일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말이 발리에서도 여지없이 들어맞는다.


빈땅에 조금 밀리긴 하지만 스테디셀러 맥주, 싱아라자와 결혼식 음식들
좌) 박소 우)아얌 른당


자리를 잡고 앉으니 맥주를 가져다준다. 맥주를 받치고 온 쟁반이 낯설지 않다. 가끔 발리 현지인들이 주방용품을 구매하는 가게에 가면 시골 할머니댁에 있을법한 그릇이나 쟁반을 볼 수 있다. 꽃무늬가 크고 강렬한 플라스틱 그릇들.


 앞쪽에는 발리 전통 음식들이 뷔페식으로 차려져 있다. 등나무 접시에 기름종이를 깔고 먹고 싶은 것들을 골라 담는다. 흔히 볼 수 있는 박소와 른당, 찹차이 같은 메뉴들이 있었다. 별 기대 없이 담은 박소는 발리에서 먹어본 중에 가장 국물이 맛있고 진했다. 그간 소고기로 만든 른당은 자주 먹었지만 닭고기로 만든 른당은 어쩐지 손이 잘 안 가 먹은 기억도 희미한데 이 댁이 른당 맛집이다. 아얌 른당이 어찌나 달달하고 맛있는지 한참 배부른 상태에서 갔는데도 음식을 또 가지러 갔다. 나시 짬뿌르 가게에서 흔히 보는 메뉴들이었는데 여태 발리에서 먹어본 중 최고의 가정식이었다. 이날 이후 한동안은 술 먹은 다음날 아침 이 결혼식에서 먹었던 박소를 벌컥벌컥 들이켜는 상상을 했다.


 신나게 웃고 떠들다 말고 신랑 신부가 우리를 이끈 곳은 포토부스 앞이다. 사진 찍기 좋아하는 인도네시아 사람들은 요즘 행사장에 즉석 인화가 가능한 포토존을 만들어둔다. 방문한 손님들과 함께 좋은 추억을 만들기 위해서다. 펑하고 터지는 플래시와 함께 웃음보가 터진다. 여러모로 즐거운 날이다.


 결혼식에 초대받은 손님들은 딱히 복장에 대한 통념은 없는 듯하다. 다들 가지고 있는 옷 중 단정하고 깨끗한 옷을 골라 차려입고 오는 걸로 보인다. 우리는 계획에 없던 결혼식 방문이라 입고 있는 차림 그대로 갔지만 이 차림대로 한국에서 결혼식에 갔다면 무슨 일이 벌어졌을지 상상만 해도 아찔하다. 발리사람들의 결혼식 복장은 화려하고 색이 강한 전통 복장이다. 이런 하얀 옷을 입고 가도 누구에게도 폐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신랑신부의 화려한 전통 복장을 더 돋보이게 한다. 누군가의 결혼식에 와서 이렇게 크게 웃고, 많이 먹고, 즐거워하는 경험이 처음이라 색다르고 즐거웠다.


어느덧 밤이 깊어 어둑해지고, 쉬지 않고 전통악기를 연주하던 밴드도 잠잠해졌다. 손님들이 이야기 나누는 소리만 마당에 가득하다. 잔치집의 밤 분위기라는 것은 고요하면서도 어딘가 들떠있어 잠깐 다녀가겠다고 들러놓고서는 자리를 쉽게 털고 일어날 수 없을 만큼 매력적이었다. 돌아가는 길 발리 전통 간식 (코코넛떡)까지 챙겨 들고 신랑신부와 작별인사를 했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반갑게 맞아준 신랑신부에게 다시 한번 감사의 인사를 전하며 가정의 행복과 평안을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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