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시(祝詩 )」를 읽고
작년 이맘때에 시 모임을 했다. 시를 낭송할 때면 울음이 그치지 않았던 기억이 난다. 이제와 류근 시인의 ‘축시’를 덤덤히 읽어낼 수 있는 걸 보니 1년 새에 꽤 많은 것들이 바뀌었나보다. 그 사이에 참 여러모로 크고 작은 변화가 있었다. 새로운 시작은 설렘을 가져다주지만, 미련이 많은 내겐 이별의 연속이기도 했다.
“지나간 날들이 당신에게 슬픔의 기록으로 남지 않게 되길 바랍니다. 고통과 자기 연민의 도구로 쓰이지 않게 되길 바랍니다.” 유쾌한 이별은 없다. 마지막 장면은 언제나 쓰기 마련이다. 달콤하게 기억된다면 둘 중 하나일거다. 각색됐거나, 변태거나. 우리의 마지막이 본인을 방어하는 데에 쓰이기보다는 우리가 사랑을 주고받은 경험을 바탕으로 다른 사람과 더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기를 바란다. 시간에 빛이 바래서 흑과 백 사이 어디쯤인지 구분하기 어렵게 되더라도, 살아가는 동안 다시는 안부를 궁금해하지 않게 되더라도. 서로를 귀하게 여겼던 시간들은 몸 속에 기억되어 마음의 근육을 키워줄 양분이 되기를.
가수 김광석의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의 가사를 류근 시인이 썼다고 한다. 그리고 김광석은 한 콘서트장에서 이렇게 덧붙인다. “사랑이 아니라고 우기고 싶겠지만 안 아프면 사랑이라고 할 수가 없겠죠? 그만큼 희생이 따르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사랑은 자아의 훼손을 동반한다. 필요 이상으로 가까워지면 다치기 마련이다. 여전히 이 말들에 부분적으로는 동의한다. 건강한 두 개인이 만나 건강한 관계를 이어나갈 여유를 갖춘 타이밍을 맞추기가 쉽지 않으니까.
사랑에 제법 많은 것을 내던지며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착각일 수 있다는 생각도 든다. 잃고싶지않은 것들은 지켜내고 허용가능한 범위의 것들만 내어주며 영리하게 사랑해온 것 같기도 하다. 노력하며 살아온만큼 가진 것도 늘어난 지금, 지켜야될 것이 많아져 아무 것도 잃고 싶지 않아 발끝만 바라보고 있는 걸 보면. 요새 부쩍 칼날 위에 서 있는 기분이 든다. 바람이 불면 휘청이고 발 밑에서는 피가 나고 있지만 공기는 시리도록 고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