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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 Jun 14. 2024

사랑이 뭐길래

새하얀 비닐봉지에 담아 내보이는 마음

  생일날 지독한 감기몸살이 찾아왔다. 아주 오랜만에 일정 없이 이틀을 꼬박 집에서만 쉬었다. 온몸이 시리고 머리가 무거워 활자를 읽기도 어려웠고 달리기는 더더욱 힘들었다. 취미가 사라져 생겨버린 일상의 공백에는 또다시 생각이 피어올랐다. 생각을 재우기 위해 몸을 열심히 재웠다. 그마저도 기침 소리에 한 시간을 채 못 갔지만 개의치 않고 몇 번이나 다시 잠에 들려 애썼다. 침대와 허리가 떨어지면 큰일이라도 날 사람처럼 굴던 때에 친구가 약이랑 음료수를 사서 집 앞에 와주었다. 하얀 비닐봉지에 담아서. 익숙한 것이 낯설어지면 깨달음을 얻게 된다고 했나. 친구에게 고마운 마음과 별개로 스스로를 돌보지 못한 마음들이 이리저리 흩어져 내내 미웠다.


  그런 사람도 있는 거다.

  그런 마음도 있는 거다.

  그런 관계도 있는 거다.

  곁을 내어주지 않는 상대를 이해해 보려 노력했던 말들이 나의 마음을 방치하는 데에 쓰이지는 않았는지. 따뜻한 마음을 비닐봉지에 담아 교환한 적이 언제였더라. 휘황찬란한 포장지가 아니라 다급하고 애틋한 마음을 담은 비닐봉지에.


  숨 가쁘게 돌아가는 세상에서 누군가를 사랑하려면 너무 많은 품이 드니까. 완벽한 타이밍을 골라 예쁜 포장지에 담은 마음만 내보여야지. 지난한 일상에 루틴 하나 추가하기는 부담이니 몇 개월에 한 번씩이라도 최선을 다해야지. 누군가와 함께하는 방법은 그게 아니더라고. 매 순간 새어나가는 따끈따끈한 마음을 비닐봉지에 담아 식기 전에 내어주는 것. 균일한 마음이 아닐지라도 기꺼이 내보일 용기를 갖는 것. 사랑의 민낯은 누구라도 얼룩져있기 마련이니.


  월요일이 되어 이비인후과에 갔다. 사실 그 병원은 토요일에도 열려있었다. 내가 나를 살뜰히 챙길 힘이 남아있었더라면 토요일 오후에 병원에 들러 약을 지어먹고 월요일 출근 전에는 어느 정도 회복했을 텐데. 어지러워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때에 스스로를 보살필 위인은 못 되더라 나는. 아플 때면 주말에 여는 병원을 찾아 꼬박 데려가주었던 부모님 밑에서 자라서 그런가. 이런 내가 무슨 대단한 사랑을 하겠다고 모든 걸 이해해 보려고 노력을 했는지. 감기 한 번이면 떨어져 나갈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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